[12/06/10~18 (D+292) Colombia/Cali-Popayan] 끔찍한 추락 사고
Jun 20, 2012 // by // Journal(Korean) // 6 Comments끔찍한 추락 사고
깔리라는 대도시 진입 전에 보였던 재밌는 간판

깔리는 콜롬비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첫 번째는 보고타, 두 번째는 메데진이다. 차들과 오토바이가 한대 엉켜서 교통이 너무나도 복잡했다. 결국, 그 사이를 피해가다가 도로 한가운데에 넘어졌다. 뒤에 따라오던 차가 나를 밟고 지나가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다.

뚤루아(Tulua)도시에 있던 친구가 깔리에 있는 리나라는 친구를 소개해주었다. 우체국 볼일 있어서 시내 나왔다가 방문한 쇼핑몰. 콜롬비아 우체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비싼 거 같다. 다른 나라에서는 1달러 정도면 해외로 우편 배송 가능한데, 이 나라에서는 무려 4달러나 줘야 했다.

이후 리나와 함께 촐라도(Cholado)라는 과일 아이스크림(빙수)을 먹었다. 깔리는 너무 더운 도시라서 촐라도가 굉장히 인기 있다고 했다.

저녁에는 오래된 성당이 있는, 깔리의 야경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갔다.

시간이 늦었던지라 성당 문은 닫혀있었다.

깔리의 밤은 선선했던 거 같다.

콜롬비아에서 처음 먹어보는 과일이 몇 가지 되는 거 같다. 이 과일을 먹는 방법은 좀 재밌었던 거 같다. 달걀을 깨듯이 과일을 모서리에 세게 부딪치면 과일이 깨진다. 그럼 알맹이가 나오는데 숟가락으로 퍼서 씹지 않고 바로 삼킨다고 한다. 씹으면 맛이 이상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난 오히려 씹는 재미로 먹었다.

파나마에 있을 때 캐나다, 멕시코로 우편물을 보냈었는데 둘 다 감감무소식이었다. 한 달 반이 넘었는데도 무소식이라 파나마 우편서비스를 잠시 의심했었는데 캐나다에서 드디어 소식이 들려왔다. 그것은 바로 텍!스!리!턴!
아기다리 고기다리…아니지.. 아~ 기다리고~기다리던! 보너스 탈 시간이다.
2010년 7월 17일 한국을 떠나 캐나다로 갔다. 2010년 12월까지 5개월 동안 히치하이킹으로 캐나다를 횡단하느냐고 두 달 반 정도밖에 일하지 않았는데 2010년 세금환급 금액이 90만 원에 가까웠다.
2011년엔 2010년보다 체류기간도 길었고 일은 정말 열심히 했었다. 특히 워홀비자가 만료될 때 쯤에는 자전거 여행을 위해 아침 9시부터 저녁 11시까지 일주일에 7일, 쉬는 날 없이 2달 반 동안 정말 개같이 일했다. 하지만 2011년 더 열심히 일한 해의 세금환급 금액은 27만 원. 오히려 세금 더 내라고 하지 않은 게 감사하다.
2010년엔 기초생활자로 구분 되어서 세금환급금액이 컸나 보다. 이래서 복지국가에서는 일을 더 열심히 하지 않는 건가 싶기도 하다. 그냥 적당히 벌고 적당히 쓰면서 인생을 즐기는 게 좋은 듯하다. 난 경쟁상회보다는 함께하는 복지국가가 더 좋은 거 같다~!
리나의 사촌이 생일이라서 따라갔는데 약간 고급레스토랑이었다. 좀 싼 매뉴도 있었지만 캐나다 정부로부터 보너스를 받았기에 좀 비싼 메뉴를 골랐다! 콜롬비아에서 식사비로 가장 많이 지출한 날.
빵안에 치킨과 소스 야채가 들어있었다. 맛은 최고!! 진짜 마음 같아선 내일 자전거여행 일정을 위해 먹다 남은 껍데기 빵 싸달라고 하고 싶었는데 진짜 참았다규…ㅋㅋㅋ

사실 깔리에서 미국에서 올 우편물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너무 지체되어서 그냥 출발하기로 했다. 우선 천천히 이동한 후에 우편물이 깔리에 도착하면, 자전거는 어디에 맡겨두고 버스타고 깔리로 돌아와서 우편물 찾아갈 생각이다.

엄청나게 큰 트럭을 몰던 아저씨가 망고를 창문밖으로 흔들었다. 친절한 아저씨, 나 때문에 일부러 차 세우고 기다렸던 거 같다.

콜롬비이아의 독특한 버스인 듯 하다. 나도 우편물 찾으로 깔리 갈 때 이런 버스 타고 가는 건가 궁금했었다. 이날은 콜롬비아 친구 덕분에 싼딴데르라는 마을에서 하룻밤 편하게 쉴 수 있었다.

오늘은 정말 힘든 날이 될 거 같다. 싼딴데르가 해발 1000m인데 다음도시 삐엔다모가 해발 2000m에 있다. 50km이내에 해발 천미터를 자전거로 올라야 한다.

중간에 가다가 신기한 복장을 한 원주민이 보였다.

이 식물은 땅이 아닌 나무에 뿌리를 내렸다. 예전에 고등학교 때 즐겨 쓰던 문구가 갑자기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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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은 절대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누구도 이 사랑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당신에게만 뿌리를 박고 살 수 있는
한 그루 나무니까요
-국화꽃향기-

오늘 하루종일 오르막을 올라야 해서 너무 힘들었다. 중간에 자전거에 앉아서 쉬기도 했고, 자전거 세워두고 한쪽에 앉아 쉬기도 했다. 삐엔다모라는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너무 힘들어서 잠시 노란턱에 발을 올려서 쉬려고 했는데 아뿔싸 몸의 균형을 잃고 옆에 하수구 같은 곳에 몸이 쏠렸다. 순간 뭐라도 붙잡으려고 했고 그러다가 자전거를 붙잡은 거 같다. 결국 자전거까지 딸려서 함께 떨어졌다.

정말 신기했던 것은 떨어지는 그 순간이 평소에 느끼는 시간과는 전혀 달랐다. 영화속의 한장면 처럼 떨어지는 순간만큼은 너무나도 선명했고 굉장히 길게 느껴졌다. 왜 드라마에서 사람이 차에 치일 때 멍하니 달려오는 차를 바라보나 싶었는데, 감독은 사건이 일어나는 총 시간을 그린 게 아닌 당사자가 그 순간에 느끼는 시간을 표현해낸 거 같다. 조금 오버해서 말하자면 떨어지는 순간 내 영혼이 내 몸을 빠져나가서 나를 지켜본게 아닐까 싶을정도로 너무 이상하게 길고 선명했다. 하수구의 깊이는 내 키보다 깊었던 거 같다.

상태는 최악이었다. 떨어지면서 머리가 벽에 부딪쳤고 자전거가 딸려오는 바람에 몸이 자전거에 깔렸다. 그림으로 설명하자면 머리가 벽에 45도로 기울어졌고 다리는 자전거 바퀴에 깔려서 움직일 수 없었다. 처음엔 정말 있는 힘껏 소리쳤다. 그때 당시 정확히 마을 진입 전 이었고 앞에 집 몇 채도 보았기 때문에 바로 구조될 줄 알았다. 하지만 미친듯이 소리를 질러봐도 아무도 오지않았다. 5분이 지났을까? 주변상황을 보니 자전거가 완전이 하수구에 잠겼었다. 바깥에서 전혀 내가 여기 있는 걸 모를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 혼자 힘으로 빠져나가보려고 했으나 자전거와 자전거에 달려있던 짐의 무게는 상상할 수가 없을 정도로 무거웠다. 8000km를 넘게 이동한 자전거가 그 순간만큼은 단 1cm도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도 45도 각도로 벽에 끼었고 몸도 접혀있던 상태에 다리는 자전거에 눌려서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오히려 힘을 쓰려고 하면 자전거에 다리가 더 짓눌리는 거 같았다. 결국 서러움에 목놓아 펑펑 울었다. 하지만 운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좀 늦어지면 밤이 찾아 올 거 같아서 또다시 짐승 처럼 소리쳤다. 다행히도 지나가던 사람이 나를 구조해줬다.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게 그 무거운 자전거가 어떻게 함께 딸려내려왔는지, 1m 70이 넘는 깊은 곳에 균형잃고 떨어졌는데 어떻게 피 한 방울 안 흘렸는지 의문이다. 오른쪽 다리가 심하게 멍이 들었고 자전거를 타기엔 통증이 있었다. 자전거에 짓눌려서 멍이 든건지 아니면 떨어진 충격에 멍이 든건지 알 수 없다. 오른쪽 발이 끼었었는지 왼쪽발이 끼었었는지 기억도 안난다. 왼쪽발과 등에도 여러군데 멍이 들었다.

안장도 뜯어졌다. 그래도 천만다행인 것이 헬멧이 내 목숨을 살린 거 같다. 헬멧이 없었다면 피를 잔뜩 흘렸을 것이고, 소리지를 힘도 없이 의식을 잃어 그 하수구에서 오랫동안 있었을 거 같단 생각이 든다.

무지개는 저 멀리 보였지만 내 마음속은 아직도 그 하수구에 갇혀있는 거 같았다. 영화와는 달리 구조 된 후에 희열은 단 1g도 존재하지 않았다. 내 몸도 구조되고 자전거도 구조되었지만, 마음만큼은 구조되지 못했나보다. 어쩌면 트라우마라는 것은, 사고후유증이라는 것은 다른 것은 다 구조되고 마음만 구조되지 못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닌가 싶다. 구조된 후에 정말 펑펑 울고 싶었지만, 낯선이 앞에서 눈물은 쏙 들어간거 같다. 누군가가 당장이라도 내 어깨를 토닥여 준다면 나는 밤새도록 울 수 있을 거 같았다.

아픈 몸을 이끌고 조금 더 자전거 타고 갔다. 사실 그 추락사고가 난 주변에서 최대한 멀리 벗어나고 싶었다. 가능한 한 빨리 추락사고의 기억만큼은 어떻게든 지우고 싶었다. 다행히 이날도 현지인 도움 덕분에 텐트를 칠 수 있었다. 꼬마손님이 텐트에 찾아온 날.

저녁 식사에도 초대받았다.

빠뜨리씨아는 녹색을 참 좋아한다고 했다. 그래서 주방기구며 뭐며 온통 다 녹색이었다.

맛있는 저녁 시간. 그래도 이렇게 함께 할 수 있는 이가 있음에 감사한다.

다음날 아침 몸은 누구에게 뚜드려 맞은 것처럼 온몸이 뻐근했다. 감사하게도 아침 식사에도 초대를 받았다.

간밤에 지친 영혼 달랬던 곳. 나의 유일한 집

역시 자전거를 타기엔 오른쪽 다리가 무리인 거 같다. 특히 오른쪽 무릎이 너무 아팠다. 다음 도시까지는 20km. 역시 오르막내리막이었다. 히치하이킹을 하기엔 짧아서 그냥 자전거를 천천히 타고 가기로 했다. 중간에 자전거 애호가 아저씨가 요플레 과일을 사주셨다.

어제 자전거에 깔려서 어두컴컴한 곳에 갇혔던지라, 자전거 타는 게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았다. 사실 자전거 타는 것 자체가 겁이 나고, 자전거를 세워두고 쉴 땐 자전거가 날 다시 덮칠까봐 일부러 자전거랑 좀 떨어져서 앉게 되었다. 나에게 요플레 과일을 사주셨던 아저씨에게 들은 정보에 의하면 오늘 자전거 국제 경기가 열린다고 했다. 그래서 기타 치면서 시간달래며 기다렸다.

곧 있어 경찰차 및 자전거 관련 차량들이 줄지어 지나갔다.

드디어 프로 선수들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뒤 따라오던 차량은 뭔지 궁금하다. 감독 및 코치 차량인 거 같기도 한데, 왜 그렇게 많은 자전거들이 자동차 위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예비용 자전거인가?

가끔 사람들이 나보러 운동선수냐고 물어본다. 운동선수는커녕 집에 자전거도 한대 없었다. 진짜 자전거 운동선수들은 차원이 다르다.

사실 길가에 많은 사람이 나와있었는데, 덕분에 나 또한 박수갈채를 받으며 지나갔다. 그러고 보면 운동선수란 직업도 꽤 괜찮은 거 같다. 난 자전거여행할 때 항상 외롭게 다니는데 이 사람들은 항상 박수갈채 받으면서 다니지 않는가? 뭐 각자 나름대로 힘든 점은 있겠지만, 잠시나마 좀 부러웠다.
좀 길을 헤매다가 콜롬비아 친구에게 소개받은 또 다른 콜롬비아 친구의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나저나 택배가 얼른 도착해야 뭘 하든 할텐데…
어쨌든 오른쪽 무릎과 다리가 좋지 않아서 며칠 좀 쉬어야 할 거 같다.
영화 127시간처럼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어두침침한 곳에 갇혀 자전거에 몸이 깔려 움직이지 못한 경험은 역시 내 인생에 가장 끔찍한 시간이었던 거 같다.
그나저나 이만한 게 다행인 거 같다.
특히 헬멧. 헬멧이 내 목숨을 살린 거 같다.
차를 탈 때는 안전벨트를 꼭 매고, 자전거를 탈 때는 헬멧을 꼭 쓰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은 거 같다.
사건사고는 순간인 거 같다. 습관이 그 순간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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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낙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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