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캐나다 워홀 때 처럼 또 원주민 사는 동네에 정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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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간 아웃백에서 무사히 자전거를 타고 살아남아 앨리스 스프링스 마을에 도착했다. 호주 중앙에 위치한 도시 중에 가장 크다. 그런데 동네 들어 오자마자 분위기가 좀 무서웠다. 경찰들이 많이 돌아다녔고 무엇보다 이 작은 도시에 경찰서가 엄청나게 컸다. 대형 슈퍼 가서 뭐 좀 사려고 했는데, 원주민이 오더니 술 좀 대신 사달라고 해서 못 알아듣는 척하고 황급히 떠났다. 나를 호스트해 준 친구는 이 동네에 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자전거도 도난당하고, 길에서 성희롱도 당했다고 했다. 앨리스 스프링스의 첫날은 무서웠다. 아무래도 이 동네에 잠시 정착하는 계획은 수정하는 게 좋아 보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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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나가 보니 하늘이 정말 푸르렀고 시내 중심은 평온히 보였다. 해 질 녘에 앤작힐에 올라가 봤더니 멋진 아웃백이 마을을 둘러쌓고 있었다. 만약 여기서 북쪽 다윈으로 간다면 아웃백을 다시 못 본다는 생각에 아쉬웠다. 그리고 이 언덕에서 결심했다. 앨리스 스프링스 마을에 남아 삼사 개월 정도 일을 하기로. 그 이후에 아마도 퍼스 쪽으로 가게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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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에 도착한 지 삼일쨰 되는 날 밤비가 많이 내렸다. 다음날 보니까 강에 물이 넘쳤다. 나를 호스트 해줬던 친구 말로는 앨리스 스프링스에서 강에 물이 흐르는 걸 두 번 보면 현지인 되었다는 신호라고 한다. 왜냐면 평소에는 물 한 방울 없는 건조한 강이기 때문이다. 역시 나에게는 비가 내리는 능력이 있나 보다. 온 지 이틀 만에 벌써 반 현지인이 다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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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볼 수 없는 풍경이라 사람들이 다 밖에 나와서 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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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앨리스 스프링스의 강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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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인이라는 술집에 가는데 길이 물에 잠겼다. 배수 시설에 문제가 있었나 보다. 친구에게 사진을 보내 “나 강 두 번째로 봄. 나 이제 현지인 된 거 맞지?”라고 했더니, 이런 건 안 쳐준 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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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구하는 게 은근 어려웠다. 이력서를 다 돌려봤지만, 전화가 안 왔다. 페이스북으로 이리저리 쪽지 남겼었는데, 호주 패스트푸드점에서 연락이 왔다. 옷, 잡화 등을 싸게 파는 케이마트라는 대형마트에 들러서 일하면서 입을 신발, 바지, 티셔츠를 샀다. 호주 물가가 엄청 비싼데, 케이마트가 없었으면 어떻게 생존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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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워홀 때 이런저런 일들을 했었는데 주방일 할 때가 가장 재미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주방 일을 하기로 했다. 총 네 군데 식당에서 일해봤다. 가장 힘들었던 게 냉정한 호주 노동법이다. 주 38시간을 일하라고 권고하지만, 추가 수당, 주말 수당, 야근 수당 안 줘도 상관없다. 사장 마음대로 하라는 게 호주 노동법이다.
6시간 이상 일하면 꼭 식사 시간 30분을 뺀다. 예로 들어 내가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6시간 일했는데 바빠서 점심시간을 못 가졌다. 하지만 시급은 5시간 30분만 계산한다. “호주 법에 반드시 30분을 빼야 하므로 네가 못 챙겨 먹은 건 어쩔 수가 없어.”라고 한다. 바쁠 때 30분 점심시간 챙겨 먹겠다고 하니, 바빠 죽겠는데 네 혼자만 생각한다며 이기적이라고 욕할 때가 있다.
주마다 일하는 시간도 다 달라서 주말이나 며칠 전에 저렇게 다음 주 일하는 시간을 알려준다. 무엇보다 정말 싫은 건 한가하면 바로 집에 보내버린다. 필요할 때만 쓰고, 필요 없을 때는 바로 버리는 구조다. 사장 입장에서는 돈 아끼고 얼마나 좋겠냐마는, 일하는 입장에서는 집세 내고, 생활비 내고 이런저런 계획 있는데 자꾸 이런 식으로 시간 깎아 먹으니 당황스럽다. 시급이 높으면 뭐 하나, 일하는 시간이 안정적이지 못하는데. 이런 구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투잡을 뛴다. 이런 불안정한 일을 Casual이라고 한다.
내가 목격한 바로는 풀타임 월급제로 일하는 사람은 38시간 이상을 일해도 추가로 돈을 안 줘서 풀타임은 38시간 훨씬 넘는 시간을 일하게 하고, 캐쥬얼은 시간당 돈을 계산하니, 시간을 최대한 적게 주려고 한다. (직장마다 다름. 내가 경험해본 곳에선 이랬음.)
캐쥬얼은 엄청나게 경쟁적인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 내가 일을 잘 못 하면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성격이 느릿느릿한 편이다. 자전거도 천천히 타고 먹는 것도 천천히 먹지만, 남한테 지기 싫어할 때가 있다. 바로 이런 직장에서 말이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엄청 열심히 일했다. 그 결과 주변 다른 캐쥬얼들 보다 항상 내가 최선으로 선택받았다. 하지만 사람을 기계처럼 쓰다 버리는 호주 노동법에 적응하는 게 힘들었다.
신기한 건 많은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세금을 안 낸다는 것이다. 영어로 캐쉬잡이라고 하는데 현금으로 시급을 받는 것이다. 호주 현지인, 외국인 노동자 너나 할 것 없이 현금으로 캐쥬얼 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도 흔해서 나는 이게 합법적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서야 이게 불법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한번은 면접 보는데 사장이 캐시로 반 줄까라고 물어봤었다. 불법을 싫어하기에 그냥 페이 체크에 다 포함해서 달라고 했다. 한 친구는 캐시가 아닌 페이체크로 돈을 다 받는 나를 보며 멍청하다고 했다. 왜 모두가 대놓고 불법을 저질러도 양심에 전혀 가책이 없는 건지, 대놓고 불법으로 세금을 안 내는데 어떻게 이 나라가 돌아가는 건지, 왜 호주 정부는 이런 불법을 알면서도 안 잡는 건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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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여러모로 힘들었지만, 아웃백 생활은 즐거웠다. 호주에는 여러 앵무새가 산다. 내가 좋아하는 새 중 하나가 바로 갈라라고 불리는 저 분홍색 회색 앵무새다. 여기서 우연히 검정 빨간 앵무새를 봤다. 굉장히 보기 힘든 앵무새다.
어느 날 문득 한 가지를 깨달았다. 캐나다 워홀 때 옐로나이프(Yellowknife)라는 마을에 머물렀었다. 18,000명밖에 안 사는 소도시였지만 그 주변 지역에선 제일 큰 도시였기에 없는 게 없었다. 무엇보다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캐나다 북부였기에 겨울엔 훨씬 더 추웠지만, 오로라를 보기 위해 거기서 살기로 했었다. 여기서는 아웃백을 보기 위해 정착한 것이다.
캐나다에서 내가 살았던 주가 NT (Northwest Territories)였고 이번에 정착해서 사는 엘리스 스프링스 주 이름도 NT (Northern Territory)였다. 어떻게 호주 워홀 정착 마을이 캐나다 워홀 정착 마을과 비슷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도시 또한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바이기에 이걸 깨달은 순간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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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바로 뒤에 산악자전거 경로가 있었다. 마을 축제에 놀러 갔다가 산악자전거 무료 체험이 있어서 타봤는데 재밌었다. 거기서 만난 친구가 싱글 기어 산악자전거를 빌려줬었다. 기어가 하나밖에 없어서 기어 변경이 안 되는 자전거를 산에서 탄다는 게 신기했는데 막상 타보니 그럭저럭 탈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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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자전거 좋아한다고 하자 다른 친구가 풀 서스펜션 자전거를 빌려줬다. 전 세계를 자전거로 여행했지만 산악자전거는 정말 초보다. 여러 힘든 장애물이 나올 때마다 서서 자전거를 밀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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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 렌트로 새로 이사한 집 침대 스프링이 너무 아파서 10만 원 정도 주고 한 번 주문했는데 이것도 별로였다. (나중에 이사할 때 6만 원에 되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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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이사한 집에 개 한 마리가 있었다. 원래 안락사당할 위기에 처해있었는데 룸메가 안락사당하기 바로 전에 구해냈고 한다. 좀만 늦었어도 이 세상 개가 아니었다. 앨리스 스프링스 마을 이름을 따서 개 이름을 앨리라고 지었다고 한다.
산악자전거가 정말 사고 싶었는데 마을이 작다 보니 내 키에 맞는 자전거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새것은 너무 비쌌다. 그러다가 페이스북 중고 사이트에서 $300 (25만 원)에 파는 자전거를 봤다. 풀 서스펜션이다!! 8년 전쯤에 나온 자전거인데 당시에는 180만 원이 넘는 자전거였다. 요즘 산악자전거는 바퀴가 27.5인치 혹은 29인치인데 내가 중고로 산 자전거는 26인치라 좀 아쉬웠지만, 그것 빼고는 완벽했다. 자전거 두 대를 나란히 놓으니까 그게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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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뒤 마당에 노는 땅이 있어서 룸메와 함께 정원을 만들어 보려고 했다. 각종 채소 등을 심을 계획이었다. 근데 호주 물가가 비싸서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이런 건지 모르겠는데, 철물점에서 이것저것 사다 보니 그냥 사 먹는 게 훨씬 쌀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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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호주 겨울이었기에 밤에는 꽤 추웠다. 그래서 혹시 몰라서 침대 샀을 때 딸려온 비닐을 밤에 덮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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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마운트길렌이 있어서 올라가 봤는데 풍경이 멋져서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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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100km 멀리 떨어진 곳에 바람 쐬러 룸메와 다녀왔다. 오만의 오아시스를 떠올리게 하는 그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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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25,000명밖에 안 사는 작은 도시지만, 이런저런 행사가 많았다. 아무래도 호주 중앙에서 가장 큰 도시이고 각 지역을 연결해주는 주요 도시라서 구경거리가 많았던 거 같다. 유명한 행사 중 하나가 바로 Finke Desert Race이다. 아웃백에서 오토바이 등을 시합하는 건데 호주에서는 가장 큰 경기이다. 마을 시내에서 각종 묘기를 보여주는 특별 행사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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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를 친구랑 함께 구경을 하러 가게 되어서 전날 미리 텐트를 치고 맥주를 마시며 아웃백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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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본격적인 경주를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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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오토바이에 박수도 쳐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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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마무리는 이곳에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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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 경주가 있다고 해서 기대를 하고 입장료를 내서 들어가 봤는데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사람들 소풍 즐기로 나오는 그런 장소였다. 낙타 중 몇 마리는 뛰는둥 마는둥 하는 그런 애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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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서 낙타를 호주로 들여왔는데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야생 낙타를 보유한 국가가 되었다. 아마츄어 경기라기 보단 사람들 재밌게 해주러 나온 경기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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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팀들은 이 마을에 연고도 없는데 와서 럭비 경기를 했다. 앨리스 스프링스에 살면 이런저런 행사로 심심할 틈이 없었다. 마른 강에서 보트 경기하는 행사도 있었는데 당시 일하고 있어서 구경을 못했다. 사람들이 보트 모양 위에서 재미있는 옷을 차려 입고 경주를 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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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경기표 있다며 초대해줬다. 럭비 두 번 이상 보면 현지인 이런 건 없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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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를 가려면 꼭 이 기찻길을 건너야 하는데, 한 번 걸리면 오래 기다려야 한다. 점프인이란 술집에 화요일마다 자주 가는데 이상하게 그때마다 자꾸 이 기차 시간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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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아무나 무대 위에 올라와서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함께 치거나 하는 그런 Jam을 화요일마다 진행했다. 친구 만나러 화요일에 자주 갔었다. 은근 맥주가 비쌌던 곳이지만 그냥 이런저런 친구들 만나기엔 좋은 장소였다. 참고로 마을에 술집이 별로 없다. 그러다 보니 맨날 똑같은 곳에만 같다. 화요일에는 점프인, 다른 날에는 몬티, 에필로그. 이 세 술집에서만 친구들을 만났고 갈 때마다 비슷한 얼굴이 계속 보였다. 가끔 락바, Bojangles라는 술집도 갔지만, 어쨌든 매번 세 술집만 돌아다니며 친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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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인은 호스텔도 함께 운영했는데, 거기에 이상한 자전거로 여행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서 뒤에 가서 보니 자전거가 희한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 자전거의 주인은 만나질 못해서 자세한 질문할 기회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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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스프링스에서 정말 즐겼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산악자전거다. 아웃백 트레일이 정말 독특해서 자전거 타는 풍경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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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앞바퀴에서 펑크가 자주 났다. 튜브를 바꾸려고 보니 이미 두꺼운 고무 커버가 끼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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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임을 넣어줬는데도 바람이 빠진적이 있었다. 그래서 갖고 있던 모든 슬라임을 다 넣어버렸다. 이후에는 펑크로 고생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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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지형에 돌이 많다. 그러다 보니 넘어지면 바로 돌에 부딪힌다. 한 번은 무릎을 정말 심하게 부딪친 적이 있었다. 어찌나 심하게 부딪혔는지 한동안 일어나질 못했었다. 이후에도 여러 번 꽤 심하게 넘어졌지만, 다행히 뼈가 부러지는 부상은 없었다. 보험이 없어서 조심히 타다 보니 실력이 별로 늘질 않는 거 같았다. 무엇보다 산악자전거는 혼자서 배우기엔 한계가 있는 거 같다.

 

 

산악자전거 타면서 새로 산 Gopro8으로 찍어봤는데 고프로 기능 Hypersmooth를 이용한 뒤 유튜브에 올리면 갑자기 화질 떨어지는 문제점이 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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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에서 우연히 한 번 하게 되었는데 재밌어서 기회가 되면 가끔 암벽등반을 한다. YMCA에 실내 암벽등반 장소가 있었다. 매번 신발과 하니스를 빌렸는데 돈이 은근 많이 나가서, 신발과 하니스를 10만 원 정도 주고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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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작다 보니 모임이 잘 되어 있었다. 암벽등반 모임을 주도하는 친구네 집 차고에 볼더링이 설치되어 있어서 가끔 이 친구네 차고에 가서 놀았다. 난 개인적으로 볼더링보다는 암벽등반이 더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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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야외 암벽 등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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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백 등반은 다른 산 등반보다 훨씬 어려웠다. 돌들이 흙처럼 부드러웠고 잡을 곳이 별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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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한 번씩 가면 좋았다. 실내 암벽등반이든 야외암벽등반이든 갈 때마다 실력이 느는 게 확 보였다. 처음 갔을 때는 전혀 하지 못했던 것을 두 번 세 번째 때 가면 꼭 성공해서 실력이 느는 게 눈에 보이니 성취감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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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메이트가 일이 너무 힘들어서 일주일간 휴가를 가기로 했다. 그 친구가 집에 없는 동안 대신 밥 주며 앨리를 돌봤다. 앨리 산책 시키다가 만난 현지 꼬마 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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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그 친구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자기네 나라로 돌아간다고 했다. 호주에서 대학교를 나와 전문직에 종사하던 친구였으나 일하는 시간이 정말 너무나도 많아서 어쩔 땐 점심도 못 먹고 일할 때가 있었다.
그 친구가 나가면 나도 이 집에서 이사를 가야 했다. 집 나가기 전 부동산에서 검사 온다고 해서 잡초를 일일이 손으로 빼며 도와줬다. 열심히 키웠던 야채들은 다 엎어야 했다. 나중에 언젠가 마당 있는 집에 이사가면 꼭 채소며 꽃이며 이런저런 식물들을 키워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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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벽등반 같이 하던 친구가 자기네 집에 방이 빈다고 해서 그 친구네 집에 이사 가게 되었다. 그 친구는 slackline이란 걸 즐겨 했다. 참고로 그 친구네에도 강아지가 두 마리가 있었지만, 앨리만큼 친절하지 않아 앨리가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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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랙라인이란 나무에 끈을 이어서 그 위에 올라 걷는 거였다. 처음 해보는 슬랙라인인데, 7발자국 넘게 움직였다. 이 친구 말로는 처음부터 이렇게 많이 걸은 건 처음본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이거 한국이 원조 아닌가? 이 친구에게 부채 들고 줄 위에서 춤을 추는 한국의 전통 줄타기 영상을 보여줬다. 내 피에는 한국 전통 줄타기 피가 흐른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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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일하던 곳에서 근무 시간이 너무 고무줄이고 일하는 환경도 정말 별로였다. 돈 열심히 모아서 호주에서 엄마랑 여행하는 게 목표였기에 다른 일을 알아보기로 했다.
운 좋게도 두 곳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침 7시 30분부터 오후 5시, 오후 5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했다. 토요일 일요일에도 일했다. 주 7일을 주방에서 계속 서서 일하려니 죽는 줄 알았다. 결국 두 달을 못 채우고 힘들어서 그만뒀지만 돈을 꽤 모았다.
총 4곳의 다른 주방에서 일했는데 깨달은 게 더럽다는 거다. 비싼 호텔이든 싸구려 패스트푸드 점이든 더럽기는 마찬가지다. 바퀴벌레가 정말 많은 곳도 있다. 오히려 눈에 보이는 길거리 음식이 더 깨끗할 거 같단 생각도 들었다. 채식주의자들은 채식주의 식당이 아니면 칼,도마, 쉐프들 손을 통해서 고기가 다 섞였다고 보면 된다. 참고로 돼지 지방 기름으로 음식을 튀기는 곳도 있으니 채식주의자들은 잘 알아보고 먹어야 한다.
식당에서 일하며 여기에 차마 적지 못할 충격적인 더러운 일들을 여러 목격했다. 밖에서 먹을 때는 아무리 비싼 식당일지라도 위생은 포기하고 먹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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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일한 곳은 엄청 큰 체인 호텔이었다. 분명히 주5일 38시간 준다고 했다. 그런데 이전에 일하던 사람이 돌아왔다면서 주 4일로 바꾸는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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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쉐프한테 가서 따졌더니 주 5일로 결국 돌려놨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호주에서는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본다. 가서 꼭 따지고 내 의견을 말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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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일했던 곳. 비록 주방보조였지만 쉐프옷 입었고 다른 직원들이 쉐프라고 불러줬다. 아무래도 손님들 앞에서 요리를 해야했기에 쉐프라고 불러줬는데 은근 쉐프라고 불러주니 전문직에서 일하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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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쁠 때는 정말 미치도록 바빴다. 저 종이들을 Docket이라고 불렀는데, 이렇게 쌓이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팬은 두 개인데 도대체 나보러 이걸 어떻게 다 해내라는 건지. Docket이 쌓이면 스트레스가 미친듯이 쌓인다. 저러면 분명 고객이 와서 도대체 내가 주문한 건 언제 나오냐고 따지러 온다. 주방에서 일하면 스트레스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쌓일 수 있다. 실제로 주방에서 일하는 일부 사람들은 마약, 술 중독에 빠진다. 이런 어두운 환경 때문에 좋아하는 요리를 그만두는 쉐프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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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 비자가 만료되기 한 달 전쯤 되자 엄마랑 여행할 돈과 몇 달 치 여행할 돈이 쌓이게 되어서 죽자 살자 일할 필요가 없어 일 하나 있는 것으로 만족했다.
새로 이사한 집은 바로 아웃백 뒤였다. 이전 집과 달리 초록색 잔디는 없었지만 자연 그대로인 아웃백이 있어 좋았고 그 아웃백을 보며 수영을 할 수 있는 곳이 좋았다. 새벽 5시에 일을 나갔다가 오후 2시에 집에 오면 아직도 하루가 많이 남은 거 같아서 좋았다. 여름이 다가와서 날이 더워졌기에 일에서 돌아오자마자 수영장에 풍덩 빠져 열을 식힌 뒤 나와서 맥주 마시며 과자 먹으면 아웃백 바라보면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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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앤작 힐에 올라가서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곤 한다. 원래 앨리스 스프링스에 3개월 정도 머무를 예정이었는데, 아웃백이 좋아서 워홀 마지막 날까지 머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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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캐나다 NT, 호주 NT에 빠지게 된 걸까? 아마도 위대한 자연 때문에 그랬던 거 같다. 내 워홀 삶은 캐나다나 호주나 비슷했다.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캐나다 워홀 당시에는 한국을 막 떠나왔던지라 영어를 진짜로 못했다. 하지만 캐네디언들이 자주 파티 등에 초대해줬다. 하지만 호주에는 그런 게 별로 없었다. 호주 친구는 별로 못 사귀고 유럽, 아시아인 친구들만 주로 사귀었다. 호주 친구한테 이야기 해봤더니, 자기도 여기 처음에 이사오고 친구 사귀는 게 어려웠다고 한다. 아무래도 호주에서는 친구 사귀는데 시간이 걸리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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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도 못하는 나를 매번 초대해준 캐나다가 그리워 캐나다 맥주를 마셔봤다. 참 재밌는 게 한 번쯤은 살아보고 싶은 나라가, 내가 첫 번째로 방문한 캐나다라는 것이다. 만약 내가 호주를 제일 처음 방문했다면 나는 호주에서 살고 싶어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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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가장 특별한 것을 고르라고 하면 아웃백이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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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 번 비가 종일 내린 적이 있었다. 이러다가 나 진짜로 강에 물 흐르는 거 두 번이나 보는 거 아냐라며 기대를 가득 품었다. 주변에선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이런 비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했는데 정말로 다음날 강은 여전히 말랐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비가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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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길 중간에 고장 나자, 경찰이 밀어주는 모습이 꽤 웃겨서 사진을 찍어봤다. 호주에선 자전거 탈 때 반드시 헬멧을 착용해야 한다. 안 그러면 벌금이 $400달러가 넘는다. 하지만 앨리스 스프링스에서는 누구도 헬멧을 신경 쓰지 않는다. 헬멧 쓴 사람이 보이면 관광객일 확률이 높다. 경찰이 할 일이 매우 많다 보니 이런 사소한 거에는 신경을 안(못?) 쓰는 거 같다. 한 가지 재밌는 것은 도시에서 얼굴에 파리 들러붙지 말라고 쓰는 망을 쓴 사람 또한 관광객일 확률이 높다.
이 마을에 특별한 게 있다면 술을 파는 가게(Liquor Store-호프집이 아니라 술만 파는 가게) 앞에 경찰이 항상 두 명이상 상주하며 신분증을 무작위로 확인한다. 또한 술을 살 때 무조건 신분증을 스캔해야 한다. 술도 일정 이상은 못 사는 걸로 알고 있다. 술파는 시간도 다른 도시에 비해 짧고 제한되어 있으며, 대형마켓 옆 Liquor Store는 일요일에 아얘 문을 닫는다.
여러 억압을 받은 캐나다 원주민들도 여기 원주민들처럼 여러 문제를 앉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점이 있다면 캐나다 원주민들은 길거리에서 폭력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호주 원주민들은 여러 폭력적인 문제들을 많이 만들었다. 앨리스 스프링스에서는 자동차 창문들이 많이도 깨진다. 심지어 은행 유리도 깨트린 적도 있다. 좀도둑도 많다. 10대 애들이 밤늦게까지 길거리를 서성거린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자전거 타고 집에 돌아가다가 10대 애들한테 둘러싸여서 팔에 음료수 던진 거 맞으며 괴롭힘 당할뻔한 적이 있는데, 그때 뒤에 지나가는 차가 있어서 그 차 앞으로 뛰어들었다. 그 차가 상황을 파악해서 그런지 몰라도 경적 울리지 않고 그냥 내 뒤에서 에스코트해 주듯이 함께 이동했다. 아이들도 나를 괴롭히는 걸 포기했다.
다음날 경찰서 갔는데 신고를 받아준다고 했다. 멜버른에서 괴롭힘당했을 때는 경찰서에서 안 받아줬는데, 여기서는 받아준다고 하니 신기했다. 13살?14살짜리 애들 신고하면 뭐가 달라싶었다. 밤에 시내 순찰좀 잘해달라고 부탁하고 나왔다. 단순 비교하자면 멜버른에서 젊은 코카서인(백인) 남성들에게 괴롭힘을 더 당해서 거기가 더 내겐 위험했다. 호주가 땅이 거칠어서 그런지 일부 젊은 사람들은 좀 거칠었다. 앨리스 스프링스에서 여러 안 좋은 사건소식들을 들었지만 난 별 큰 문제를 겪지 않아서 여기서 지내는 날들을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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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ice For Walker. 원주민이 경찰에 살해당해서 사람들이 경찰서 앞에서 항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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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들이 Black Lives Matter라며 인스타며 페이스북에 포스팅 올렸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Justice For Walker에도 동참했는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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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 전에 필요한 것들을 샀다. 핸드폰, 고프로, 속도계 등등. (고프로 4를 몇달 전 잃어버려서 새로 나온 모델 고프로 8로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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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한 영국 작가로부터 어린이 책에 내 이야기를 넣고 싶다며 연락을 줬다. 스카이프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이메일로 여러 번 원고를 수정 끝에 내 이야기가 포함되었다. 책 이름은 Fantastic Female Adventurers: Truly amazing tales of women exploring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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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불 주고 산 자전거를 450불에 팔아서 150불이나 벌었다고 좋아했다. 하지만 곧 그 돈은 세금으로 다 빠져나갔다. 우버이츠 할 때 2700불가량 벌었는데, 그에 대한 세금 $450달러를 갑자기 내라고 하니 생돈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만 팔천 불 이하로 (천 오백만 원 이하) 돈을 벌면 세금을 면제해주는데 워홀러들은 세금면제 혜택이 없다. 캐나다에서는 워홀이어도 세금 면제해 줬는데 캐나다야 네가 그립구나. ㅠㅠ 원래 호주도 면제해줬는데 2017년부터 법이 바뀌어서 워홀러들은 세금면제에서 제외했다.
호주 세컨드 비자(워홀 비자 1년 더 연장) 받으려면 농장에서 3개월 일해야 하는데, (써드 비자는 6개월) 농장에서는 시급제보다는 능력제로 돈을 준다. 예를 들어 딸기 한 바구니당 얼마 이렇게 쳐주는데, 최저시급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부가 워홀러들 노동권을 보호해주지 않는 다는 걸 여러 면에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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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도 샀었는데 이것도 떠나기 전에 되팔았다. 혼자 배우려니 어려워서 앱 결제해서 해봤지만, 여전히 어려웠다. 기타 사는 건 여행에 있어서 두 번째이다. 언젠가는 기필코 제대로 칠 수 있기를! 암벽등반 신발과 하니스도 팔려고 했는데 같이 암벽등반 하는 친구가 뉴질랜드 가면 암벽등반 할 수 있는 곳 있다고 해서 뉴질랜드에 들고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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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가게에서 상자를 얻어서 뒤에 어찌어찌 묶어서 집에까지 왔다.

 

떠나기 전에 마을을 기억해두고 싶어서 길거리를 고프로에 담아봤다. 날이 더워서 그런지 길에 사람이 평소보다 별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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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앤작힐에서 앨리스프링스를 바라봤다. 처음에 계획했던 3개월과 달리 6개월 전부를 여기서 보냈다.
호주에서의 1년간의 여행은 이렇게 끝나갔다. 비자가 만료되는 관계로 뉴질랜드로 우선 가서 한 달간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뉴질랜드 북섬 남섬을 이미 다 여행했기에 대충 시간을 보내다가 호주에 다시 돌아와서 엄마랑 함께 새해에 호주 여행을 하려고 한다.
앨리스 스프링스는 내게 여러 기억을 만들어 줬다. 캐나다에서 옐로우나이프가 최고의 도시였듯이, 내게 호주에서 최고의 도시는 앨리스 스프링스였다. 내 마음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아웃백을 뒤로하고 뉴질랜드로 가기 위해 비행기 위에 오른다.

 

Alice Springs Australia_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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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 경로
호주에서 지낸 총 일수 = 365 일
호주에서 자전거로 이동한 총 거리 = 8,713km
호주에서 총지출 = US$13,718.97
(USD$1=$1.38 A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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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omments
  1. Thanks you very much
    You inspire me to travel the world

  2. 자전거는 이동수단일뿐 다 같이 서로가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나누고 하는게 여행이 주는 백약이 아닐까 싶네요. 물론 여행자는 잘 먹어야 하고 건강과 안전을 잘 지켜내야겠죠? 건승을 기원합니다.

    • 그죠, 마치 강을 이어주는 다리의 용도처럼 자전거도 사람을 이어주는 수단으로 잘 쓰이고 있다고 생각해요. 응원 감사합니다..^^

  3. 변함없이 잘 봤습니다

    참 대단하시구나라고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좀전에 배달영상 봤는데 이전 이야기였네요…

    항상 무탈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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