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누아투) 남태평양에선 카바로 유명한 나라. 다들 카바만 마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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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펠러가 달린 소형 비행기를 타고 피지에서 바누아투로 향했다. 피지 여행 중 남태평양의 새로운 여러 나라를 알게 되었는데, 그중 한 곳이 바누아투였다.  때마침 국경을 연다고 해서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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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륙 직전 비행기 창문을 통해 새로운 나라를 마주할 때면 “너무 바쁜 도시네? 허허벌판인데 저기서 어떻게 자전거를 타지? 여기서 안전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 이전 나라의 문화가 익숙해졌는데 다시 새로운 문화에 적응해야 하네. 와 새로운 나라에 도착하네. ” 등등의 생각을 하며 긴장과 설렘을 동시에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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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 항공사는 자전거 수송 때문에 내게 여러 문제점을 안겨주었지만, 남태평양의 모든 섬나라를 연결해 준다는 점에선 참 좋은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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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누아투는 피지 바로 옆에 붙어 있으며 호주와도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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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누아투는 세로로 길게 많은 섬이 연결되어 있고, 수도는 포트빌라(Port Villa)라고 불린다. 본섬은 꽤 작고, 2차선 도로 하나로 이어진다. 인구는 31만 명이며 1980년에 영국과 프랑스 공동 식민지로부터 독립했다. 남태평양의 인종은 마이크로네시안, 멜라네시안, 폴리네시안으로 나뉜다. 바누아투는 인구의 98%가 멜라네시안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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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누아투에 도착해서 수도 시내를 보는데 깔끔해서 깜짝 놀랐다. 무엇보다 거리마다 서양 사람들이 자주 보여서 국경 개방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벌써 관광객이 많다고 생각했다. 피지에서보다 바누아투에서 외국인을 더 자주 보는 느낌이 들었다. 알고 보니 월급에 대한 세금이 없어서 조세 회피처로 바누아투에 외국인이 많이 살고 있었다. 피지에선 현지인 포함해 모든 외국인이 영어를 써서 말이 통했는데, 여기서는 많은 외국인이 프랑스어를 써서 불어를 쓸 줄 모르면 섞이기가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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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누아투의 수도 포트빌라 시내는 작아서 둘러보기 좋고 무엇보다 물색이 아름다운 바다 옆이라 평화로운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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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공원이 정말 깔끔하게 잘 되어 있다. 신기한 게 청소하는 사람이 매시간 있었던 것도 아닌데 쓰레기가 거의 없었다. 도심에 있는 바다 치곤 정말 깨끗하고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쓰레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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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수공예를 파는 건물이 있는데, 국경을 막 개방한지라 조용했다. 시내 관광 영상을 찍으며 바구니를 만드는 여성분과 얘기할 기회가 생겼는데, 저 바구니를 하나 만드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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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맨 끝에는 과일을 파는 시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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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마켓보다 싸서 포트빌라에 머물며 여기서 자주 과일을 사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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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여기서 코코넛 하나 사서 공원에서 먹기 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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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한 쪽은 음식을 팔 수 있게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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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파는 음식값은 의외로 쌌다. 시내 식당에서 단순한 식사 한 끼 하려면 못해도 18,000원은 기본으로 내야 했는데, 여기선 5천 원이면 사 먹을 수 있었고 양도 푸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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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뒤편에선 페탕크(Pétanque)라는 프랑스 구슬치기 게임을 즐겨 하고 있는 현지분들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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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선 이렇게 멋진 일몰도 볼 수 있다. 남태평양 여행의 큰 장점 중 하나가 바로 멋진 일몰과 일출의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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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한편에는 수중 스포츠를 진행하는 관광회사가 하나 있었는데, 카운터에 직원이 안 보였음에도 가게 문이 활짝 열려있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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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누아투가 워낙 생소한 나라라서 가기 전에 영사관에서 검색을 해보니 치안이 안정적이고 강력 범죄가 일어나지 않으며 사람들이 술을 잘 마시지 않는 걸로 나와 있었다.

공원에 있는 관광회사 카운터를 직원이 지키지 않아도 가게가 계속 열려있는 걸 보면서 나라 전체가 안전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뒤엔 큰 반전이 있었다. 내 경험상 바누아투는 치안이 좋지 않은 나라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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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누아투 좋은 점이 식당, 카페, 술집 등이 항상 물가 옆에 있고 모래 해변이 있어 휴양지 느낌을 물씬 준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현지인들이 술을 절제하지 못하고 너무 마신다는 거다. 낮에는 평화로웠던 공원이 밤이 되면 술에 취해 정신 못 차리는 젊은 사람들의 거리로 변해 쉽게 갈 수 없는 곳이 된다. 바누아투 수도에 지낼 때 숙소가 술집과 조금 떨어져 있음에도, 새벽 2~3시만 되면 사람들이 지르는 소리에 꼭 깨곤 했다. 우는 소리인지, 웃는 소리인지, 도와달라고 비명을 지르는건지 끔찍하게 고함을 질러 혹시 사건이 일어난 건가 싶어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고민이 될 때도 있었다.

한 번은 외국인 친구 집에서 진행하는 명상 모임에 초대되어 갔는데, 끝나고 나가려고 보니 한 친구의 나이키 신발이 사라졌고 또 다른 친구의 아이폰도 사라졌다. 20명 정도 되는 모임이라 사람들이 계속 왔다 갔다 했는데, 설마 그걸 훔쳐 갔겠냐고 잘 찾아보라고 했지만, 두 번 다시 찾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훔쳐 간 게 100% 확실했던 건, 핸드폰 주인이 전화를 걸자 아이폰을 훔쳐 간 사람이 비밀번호 알려 달라고 대놓고 물어봤다고 한다.

실제로 여기에 살았던 외국인 친구의 집에 3~4년 전에 좀도둑이 자주 들었다고 했다. 방범창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툭하면 집에 들어와 물건을 훔쳐 갔다는 것이다. 이 말은 즉 코로나 전에도 이미 좀도둑이 많았다는 것이다.

나 또한 세계 여행 중 처음으로 소매치기를 당했다. 술집에서  친구들이랑 있는데 갑자기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뒤를 보니, 현지인이 내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빼간 것이다. 뭐하냐는 짓이냐며 핸드폰 돌려달라고 하자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폰을 돌려주고는 사라졌다. 당시 술을 마시지 않았기에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는데, 만약 술에 취했다면 도둑맞았을 거 같다. 실제로 다른 외국인 친구는 이전에 술집에서 핸드폰 도둑맞은 적이 실제로 있다고 했다.

한국 외교부가 ‘바누아투 사람은 술을 거의 마시지 않고 범죄도 별로 없어 안전하다’고 하는 정보는 몇 년도 기준에서 작성한 건지 정말 궁금하다. 참고로 나무위키에 바누아투를 검색하면 “나라 자체의 치안이 거의 완벽한 수준이다”이다라고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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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누아투 독립 기념일은 특별했다. 현지인들은 알록달록한 옷을 맞춰 입고 가족들끼리 나와 축제를 즐겼다. 그 모습이 너무 좋아 보여서 사진 찍어도 되냐고 허락받고 보니 남자애가 울고 있었다. 엄마가 그만 화 풀라며 달래 보여도 뭔가 서러운 게 있었던 모양인지 계속 뒤 돌아 울고 있어 사진 찍는데 살짝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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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가 진행 중인 운동장엔 여러 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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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진기를 보자, 사진 찍어 달라며 포즈를 취해준 현지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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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나도 함께 사진을 찍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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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누아투는 피지와 마찬가지로 서양인들이 들어온 뒤로 대부분 기독교인이 되었다. 당시 행사장엔 찬양가를 계속 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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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가 31만 명밖에 안 되는데, 신기하게도 큰 철물점이 여럿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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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에서 삼각대 손잡이 부분을 잃어버려 철물점에 가서 대체로 사용할 나사를 찾으려 해봤지만, 삼각대 손잡이가 특이해서 시중에 나온 제품 중에선 맞는 게 없었다. 감사하게도 직원이 창고에서 오래된 부품 중에서 그나마 맞는 부품을 찾아줘 직접 다듬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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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대 손잡이 대신할 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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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랜 시간을 들여서 삼각대 손잡이 나사를 만들어 준 고마운 현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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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에서 빈대에 여러 차례 물렸었다. 바누아투에서는, 꽤 깨끗한 사무실 의자에 앉았다가 물렸다. 다른 대륙의 빈대와 달리 물리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어, 남태평양의 반대는 모기와 같다. 가려운 수준 부어오르는 수준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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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나라들 국경이 닫혀 있어서 다음 나라로 이동할 곳이 없어 바누아투 수도에 꽤 오래 머물렀었다. 이후, 주변 국가 국경이 곧 개방된다는 소식이 들려 자전거로 바누아투를 돌기로 했다. 배고파서 슈퍼 옆 테이크웨어 음식점이 보이기에 자전거를 세우고 음식을 고르는데, 가격이 너무 싸서 놀랐다. 수도에 있는 식당 음식은 18,000원부터 시작하는데, 수도를 벗어나자, 음식값이 3,000원밖에 안 했다. 시장 음식보다도 훨씬 쌌다.

바누아투 수도는 외국인들의 거대한 버블에 갇힌 느낌이 든다. 세금을 없애거나, 낮추면 외국인들의 세상이 되어 집 렌트 값 및 모든 물가가 상상 초월로 올라간다. 오일을 갖고 있는 부유한 나라가 아니면, 이런 세금 정책은 대부분 현지인에게 독으로 돌아오는 거 같다. 하지만 바누아투 같은 작은 섬나라가 선택할 경제 정책은 별로 없는 거 같다.

참고로 바누아투는 투자를 받은 후 여권을 발행해주는 곳으로 유명하다. 2020년 바누아투 정부 수익의 30~40%가 여권을 발급해 얻은 거라고 한다. 여권 만드는데 비용은 1억 6천 만원정도 되며 실제로 바누아투에 거주하지 않아도 되고 신청기간은 1~2개월이면 된다고 한다. EU는 바누아투가 제대로 심사하지 않고 무엇보다 인터폴 리스트에 올라온 사람에게도 여권을 줬다며, 2015년 이후 생성된 여권은 비자를 받고 들어와야 한다는 새로운 규정을 만들었다. (2015년 기준의 이유는 2015년에 유럽과 무비자 협정을 맺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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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에 앉아 점심을 먹는데 바게트를 손으로 들고 가는 현지인을 보니, 프랑스 사람들이 생각났다. 프랑스에서도 사람들이 바게트를 봉지에 담지 않고 손으로 그냥 들고 다녔다.

비록 바누아투는 영국과 프랑스의 공동 식민지 체제를 겪었지만, 프랑스의 영향이 훨씬 강하게 남아있다. 수도에는 Au bon marche라는 큰 슈퍼마켓이 여럿 있는데, 많은 프랑스 식품이 들어와 있다. 영국의 식민지 영향으로 왼쪽에서 운전했던 피지와는 달리, 여기선 프랑스의 영향이 커서 오른쪽으로 운전한다.

세계 다양한 나라를 여행하며 느낀 것은 한 번 식민 지배를 하면, 그 나라가 독립하더라도 계속해서 그 나라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수입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식민 지배를 당했던 많은 나라들은 독립 이후에도 식민지배를 했던 나라를 동경하고, 그 나라 언어를 다른 나라 언어보다 더 열심히 배우며, 그 나라로 유학을 가고, 그 나라의 물품을 다른 나라 물품보다 더 신뢰하여 주 고객층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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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를 벗어나자, 포장도로는 굉장히 잘 되어 있었고, 차량도 별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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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옆에 매우 아름다운 해변이 있어서 휴식을 취했다. 이후 다시 길로 나가려는데, 갑자기 현지인이 멈춰 세우더니 입장료를 내라며 표지판이 있다며 저걸 보라고 했다. 실제로 보니 표지판이 있었지만, 입장료 가격은 지워져 있었다. 아무리 봐도 수상해 보여서 무시하고 나가려는데 현지인이 워낙 강하게 나왔다. 지나가는 현지인 차량을 세워서 도움을 청하니, 그 현지인도 여기 원래 입장료 있다라고 하기에 다들 한패인 거 같아 그 둘이 얘기하는 틈을 타 빨리 자전거를 타고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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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안 가 또 다른 해변이 나왔다. 4~5명의 젊은 여자 현지인들이 차에 타고 있어 물어보니 원래 바누아투에는 각 해변에 입장료가 있다고 한다. 즉, 그 현지인이 맞았고 내가 틀렸던 것이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문화였기에, 나도 모르게 실수를 저질러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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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건너는데 물색이 정말 예뻐 보이는 곳이 보였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멋진 자연환경은 여전히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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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중간 시골 마을도 자주 나왔다. 도시에선 현지인들과 별로 인사를 주고받지 않았는데, 시골에선 다들 정겹게 인사를 해줘 좋았다.

나중에 한 시골 마을을 지나가는데 이상한 사람이 보였다. 비틀비틀하는 거 보니 술에 취한 거 같아서 거리를 두고 지나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날 엄청나게 쫓아왔다. 다행히 주변에 동네 사람들이 많았고 이 광경이 재밌어 보였는지 다들 웃었고 나 또한 그냥 웃고 넘겨버렸지만, 솔직히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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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질 무렵 한 마을에 멈춰 길옆에 집이 보이길래 텐트를 쳐도 되냐고 현지인들에게 물어봤다. 현지인들은 술에 취한 사람들 때문에 길옆에 텐트 치면 위험할 수 있으니, 자기들을 따라오라고 했는데, 그 순간 옆에,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사람이 섹스하고 싶다고 뒤에서 중얼거렸다.

현지 남성들과 꼬마들을 따라 들어간 곳은 마을에서 가장 좋아 보이는 집이었고 무엇보다 펜스가 처져 있어 마음이 조금 놓였다. 하지만 새벽 2~3시 밤늦은 시간에 저 멀리 들리는 술집 음악 소리와 술에 취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긴장되어 깊은 잠을 이룰 수 없어 악몽을 꾸기까지 했다.

내게 이 집을 안내해 준 현지인은 자기는 술 안 마신다고 카바만 마신다고 했는데, 어째서 많은 현지인이 전통 음료인 카바 말고 술독에 빠진 건지 알 수가 없다. 카바는 남태평양에서 후추 같은 식물의 뿌리를 말려 갈아 마시는 현지 전통 음료수로 마시면 나른해지는 효과가 있다. 바누아투 카바는 옆 나라 피지가 인정해 줄 만큼 품질이 좋다. 바누아투 현지인이 술 말고, 현지 음료인 카바만 마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중앙아시아에서 술에 취한 사람은 몇 번 보긴 했지만, 이렇게 자주 술에 취한 사람들에 의해 위협적을 느낀 건 바누아투가 처음이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한국도 바누아투처럼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이 길거리에 많지 않나 싶다.

바누아투 정부는 현지인의 술 문제를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거 같다. 예를 들어 국경일 날에는 슈퍼에서 술 판매를 금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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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리조트가 코로나로 인해 문을 닫아 식당이나 슈퍼를 찾기 힘들었다. 여기서 점심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문을 닫아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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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닫은 리조트 앞에는 멋진 해변이 펼쳐져 있었다.

이후 다시 길 위에 올랐는데 섬의 중간에 다다르자, 차량이 거의 없었다. 사람도 차량도 하나 안 다녔던 한적한 길을 가는데, 자전거를 타는 한 현지 남성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자꾸 나를 따라 오는 느낌이 들어서, 아무렇지 않은 척 자전거를 미친 듯이 빠르게 달렸다. 그런데 그 사람도 미친 듯한 속도로 날 따라잡아서 너무 무서워 심장 박동수가 미친 듯이 올라갔다. 다행히 다음 마을이 나타나서, 속도를 줄여 자전거를 멈추고 아무렇지 않은 척 “너 진짜 잘 달린다”라며 얘기하고 미소를 지었다.

한참을 숨을 고른 후에 다시 자전거를 타는데 그 남자는 계속 내 옆을 달렸고, 또 다른 여자아이도 내 옆을 달렸다. 막상 얘기를 나눠보니 15살밖에 안 된 10대였다. 재미 삼아 날 따라온 거겠지만, 개미 하나 지나 다지 않는 한적한 거리에서 나를 쫓아오면 나는 정말 무서워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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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배가 고팠는데 다행히 길거리에서 무언가를 파는 현지인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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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은 카사바로 만든 음식인데, 한국의 떡처럼 쫄깃해서 맛있었다. 튀긴 생선은 당일 잡은 거라 신선해서 맛도 좋았다. 주변에 슈퍼가 없었던지라 물을 살 수 없어 코코넛을 4개나 사 먹으며 한참 휴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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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이 돗자리를 깔아줘 지붕 아래서 정말 편하게 쉴 수 있었고, 떠나기 전 다 같이 사진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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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다시 도로로 나와 자전거를 타고 가던 중 동굴이 있다는 관광 표지판이 보여서 샛길로 들어가 보니 동굴은 마을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솔직히 혼자 동굴에 들어가는 게 무서워서 빠르게 불빛으로 확인하고 바로 나왔다. 코로나 전엔 관광객들이 와서 카약을 타고 가이드와 함께 동굴로 들어갔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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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누아투 공용어를 비슬라마어라고 하는데, 영어에서 유래되었기에 대충 보면 뜻을 알아차릴 수 있다.

No Kilim Mama Totel->No Killing Mom Tur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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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이 작다 보니 벌써 섬의 절반을 넘었다. 짐 없이 로드 자전거를 타면 섬 전체를 하루 만에 달릴 수 있는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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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어두워지려고 할 때쯤 길 옆 현지인 집에 텐트 쳐도 되냐고 물었는데 정색하며 거절했다. 이 시골 마을 들어올 때 술 취한 젊은 사람들을 이미 봤기 때문에 길 옆에 위치한 그 집에 머무르면 위험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거절 받은 게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후 길옆에 있던 현지 여성이 저기서 텐트 못 쳐주게 하냐며 안타까워했다. 자기가 아는 종교인 집이 있다며 거기에 가서 물어보자고 해서 같이 얘기하며 길을 걸었다.  그곳에 도착해 현지 여성이 나 대신 물어봐 줬는데, 다음날 기도하러 사람들이 오기에 공간을 내줄 수가 없다고 했다.

현지 여성은 미안해하며 그러지 말고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고 했다. 자기 집이 산 위에 있어 좀 걸어가야 한다며 미안해했지만, 난 오히려 길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훨씬 좋고 이렇게 머물 장소를 제공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계속 감사 인사를 드렸다. 산속 길이 가팔라서 여성분이 뒤에서 내 자전거를 밀어줘야 할 때가 있어 죄송하다며 사과했지만, 여성분은 길이 가팔라 미안하다며 오히려 내게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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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저녁 식사에 초대해 주었다. 아들이 당일 잡은 박쥐라고 했다. 일부 바누아투 시골 분들은 박쥐를 먹는다는 걸 알고 있었고, 대접해 주는 음식이기에 감사하게 먹었다.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인데, 내가 먹은 건 비둘기 고기라고 한다. 언어 장벽 때문에 서로 오해를 한 게 아닐까 싶다. 어쨌든 현지 가족이 굉장히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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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모여 사는 곳이었고 시멘트로 간단히 지은 건물도 있었지만, 화장실은 없었다. 전날 저녁 현지 여성분이 물 양동이를 주면서 바로 옆 숲에서 씻으면 된다고 했다. 큰 천 술루를 두르고 하는데  누가 볼까 봐 걱정되어 제대로 씻지 못하고 갈아입을 옷도 물에 젖었다. 어쨌든 낮에 흘린 땀은 대충 씻어 낼 수 있어 좋았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출근한다고 하셔서 여성분과 함께 길을 나섰다. 결혼 전에는 다른 섬에서 선생님 일을 했고, 애들이 다 큰 후에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남긴 뒤 나는 다시 길 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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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근처로 다다르자, 길의 경사는 심했고 도로포장 상태도 꽤 나빴다. 특히나 마지막 구간은 경사가 너무 심해서 자전거로 갈 수 있는 건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브레이크를 꽉 잡으니 밀리지 않고 내려올 수 있었다. 참고로 그 구간은 경사가 너무 심해서 교통사고가 자주 발생한다고 한다. 거기는 차를 타고 지나가기에도 무서운 구간이다. (사진 속 오르막은 다른 언덕임)

시내 식당들은 다 비쌌기에 시내 들어가기 전 현지 식당에 들러서 밥을 사 먹었다. 그런데 10대? 20대로 보이는 여러 명의 남자가 술에 취한 건지 약에 취한 건지 해롱해롱 되며 식당을 들락날락해 무서웠다. 제정신으로 보이지 않던 한 남자는 창문에서 계속 내게 뭐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무시하며 밥만 먹었다. 밥 다 먹고 나갈 때 보니 어떤 현지인이 그들에게 돈을 주는 거 같았는데, 정확히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난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그들을 무시하고 자전거로 재빨리 그곳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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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누아투 본섬 한 바퀴 여행을 마치고 기념으로 사진 한 장 찍었다. 이후에 본섬보다 훨씬 크지만, 사람은 훨씬 적은 북쪽 섬에 가서도 자전거를 타고 싶었다. 하지만, 바누아투에 사는 한 유럽 여성이 아들과 함께 숲에 텐트를 치다가 현지 남성에게 공격받아 겨우 도망쳐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낯선 곳에서 자전거 여행을 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북쪽 섬은 워낙 멀리 떨어진 섬이라 술 문제가 없을 수도 있고 서로서로 아니 더욱더 안전할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가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모험보다 더 중요한 건 내 안전이기에 지나치게 걱정하면서 자전거를 타고 싶지 않아 북쪽 섬에 가는 걸 포기했다.

참고로 바누아투에 놀러 와 휴양지에만 머무른다면 안전하고 재밌게 지내다 갈 수 있다고 90~99% 장담한다. 그러니 바누아투에 놀러 가기로 결심했다면 내가 한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길 바란다. 실제로 바누아투에 오래 산 외국인 중엔 바누아투가 정말 좋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바누아투에 있으며 산전수전 다 겪은 케이스이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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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주변 국가 국경이 열리길 기다리며 바누아투에 2개월 가까이 지냈다. 팬데믹 이후 호주에서 생긴 우울증으로 바누아투에서도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어떻게든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어서 바누아투에서 처음으로 크로스핏(CrossFit)이란 운동도 해봤다. 원래 헬스장 안 좋아하는데, 크로스핏은 단체로 하는 운동이고 무엇보다 내 한계를 넘으려는 운동이라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 정말 좋았다. 또한 서핑도 몇 번 나갔다.

체스 두는 걸 좋아해서 같이 체스 둘 사람을 찾다가 알게 된 친구가 사진 속 인물. 바누아투에 체스 협회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한다.

바누아투에 유명한 프랑스 식당이 있는데, 거기서 박쥐 고기를 판다고 들었다. 프랑스 쉐프 주인분께서 흔쾌히 촬영을 허락해 주셨고, 이 친구가 비디오 촬영을 도와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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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식으로 박쥐 고기를 요리했다고는 하지만, 냄새가 너무 강했다. 세계여행하며 온갖 종류의 고기를 먹어봤지만, 이건 정말 상상 초월로 냄새가 심하다. 현지인이 먹는 방식으로 먹으면 고기 냄새가 기절초풍할 정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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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남기는 걸 안 좋아하고, 요리하는 과정을 보니 엄청나게 오래 걸려 쉐프님에게 감사의 표현을 남기고 싶어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프랑스 쉐프님은 그걸 다 먹냐며 껄껄 웃으셨다. 이후 집에 돌아와 잠을 자려는데 계속 박쥐 고기 냄새가 속에서 올라왔다. 심지어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도 계속 박쥐 고기 냄새가 올라왔다. 두리안도 맛있게 먹는 나지만, 이건 정말 다시는 먹고 싶지 않은 엄청나게 냄새가 강한 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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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에서 만났던 한국인 친구 써머를 바누아투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 내가 피지에서 코로나 걸렸을 때, 매일 괜찮냐고 문자로 챙겨주고, 음식과 약도 갖다줬던 친구다. 피지에서 일정이 맞아 섬 구경도 같이하기도 했었다.

써머는 피지 UN 기구에서 3년 넘게 일했는데, 좀 더 도움이 되는 곳에 일하고 싶다며 아프가니스탄에 지원했다. 당시 탈레반으로 정권이 넘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아프가니스탄에 지원하는 써머가 걱정되어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자기가 하는 일에 진심이었기에, 잘 되길 응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몇 달 뒤 써머는 아프가니스탄 합격 통지를 받아냈다. 써머가 남태평양을 떠나기 전에 바누아투 섬 여행을 했기에, 덕분에 나는 써머를 다시 볼 수 있었다. 실제로 만나면 정말 재밌는 친군데, 일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도 따라 올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다. 학창시절 경제적으로 가정형편이 어려웠음에도 열심히 공부해 원하는 대학에 가는 등, 쉽게 포기하지 않는 성격이라 여러모로 써머에게 배울 점이 많았다. 써머가 어디서 지내든 항상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람과, 원하는 목표까지 다다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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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누아투에는 많은 세일 보트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바누아투는 남태평양 요트 여행자들이 꼭 멈춰가는 곳이라고 한다. 바람이 부는 방향이 일정해 세일 보트로 여행 다니는 루트가 정해져 있다고 한다. 또한 태풍 시즌을 피해 다니다 보니, 여행 경로와 시기가 대부분 비슷해 한 번 만난 여행자를 다음 목적지에서 다시 만나기도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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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빨간 보트를 소유한 커플을 알게 되어 그들의 보트를 구경하기도 했다. 자동화가 잘 되어 있어서 바다 한가운데에선 직접 운전할 필요가 없다. 다만 항구에 도착하면 주변 배나 장애물이 많아 직접 조종해야 했다. 중미에서 남미로 넘어갈 때 세일 보트 여행자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 이번에 또 만나게 되어 좋았다. 무엇보다 이번엔 직접 운전도 해볼 수 있어 정말 재밌는 경험이었다.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세일 보트 사보고 싶단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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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바라본 바누아투의 아름다운 모습.

바누아투에서 드디어 기쁜 소식이 들렸다. 남태평양의 또 다른 나라 통가가 문을 연다는 것이다. 통가라는 이름은 전에 들어봐서 알고 있었지만, 1년 전 화산폭발이 너무나도 크게 일어났기에 가기가 망설여졌다. 인터넷 뉴스를 찾아봐도 최신 정보를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구글 지도에서 통가 숙소를 알아내 메시지를 보내봤더니, 모든 게 정상화되었다며 와도 된다고 했다. 다만 코로나 타격으로 인해 관광 서비스가 제한적일 수 있으니 그 점 미리 알아두라고 했다.

통가에 가려면 코로나 신속 검사를 병원에서 받아야 했는데, 바누아투에서 검사비는 무료였다. 피지를 경유해 통가에 가야 해서 피지에서 하룻밤 머물렀다. 다음 날 피지 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하려는데 코로나 검사 결과는 24시간 이내에 한 것만 받는다고 했다. 급하게 택시를 타고 주변 병원으로 가서 코로나 검사를 다시 받고 돌아왔다. 여전히 세계 여행은 코로나 영향으로 인해 쉽지 않았다.

사실 통가를 여행할 거라곤 생각도 안 해봤는데, 이렇게 막상 가게 되니 엄청나게 설레고 기대가 된다. 정말로 화산폭발 영향이 없는 걸까 걱정도 되긴 했지만, 설레는 마음이 훨씬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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