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와칸벨리 자전거 여행이 시작 되었다. 앞으로 갈 길이 멀리 펼쳐보였다. 도로 상태가 굉장히 울퉁불퉁해서 자전거 타는 게 힘들었지만, 풍경은 정말 멋졌다. 반대편 도로인 M41 고속도로로 달리면 덜 힘들겠지만, 그래도 인생은 모험이라는 생각에 좀 힘든 길을 택했다. 자전거 여행에 있어 공평한 점은 고생한 만큼 더 멋있는 걸 볼 수 있다는 게 아닐까 싶다.
주변에 모래들도 있어서 사막풍경 비스무리한 게 보일 때도 잠깐 있었다.
아침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호스텔에서 나보다 하루 먼저 떠난 자전거 여행자들을 만났다. 이들은 전날 온천에서 놀고 이것저것 하느냐고 천천히 이동한 거 같다. 이들을 따라잡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던지라 깜짝 놀랐다.
얼떨결에 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게 되었는데 일부 구간엔 고운 모래가 쌓여 있어서 정말 힘들다.
(사진 – 케빈)
모래, 울퉁불퉁 길, 자갈길 등이 번갈아 가며 반복되었다. 나를 포함해서 총 6명이 함께 달리게 되었다.
자전거여행자 커플을 만나서 이것저것 정보 공유하고 수다 떠는데 이렇게 많은 자전거 여행자들이 길 위에 뭉쳐있는 모습은 처음 봤다.
중간중간 짧지만, 경사가 심한 미끄러운 자갈길이 나왔다.
이번엔 대형 캠핑카로 여행하는 부부여행자를 만나서 이들의 집구경도 하고 오랫동안 수다를 나눴다. 보통 이런 시간은 축구 경기 중 다른 선수가 부상을 당하거나 선수 교체할 때 막간을 이용해서 휴식을 취하는 것과 같다랄까나?
길은 험하고 힘들지만, 풍경이 멋져서 자전거 타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늘 밤 텐트 치고 잘 곳이다. 이렇게 많은 자전거 여행자 텐트들이 내 주변에 있는 건 처음이라 재밌었다. 같이 저녁을 만들고 수다를 떨고 하다 보니 혼자 다니는 것과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다음날 떠날 준비를 하는데 길옆에 도로 공사 직원(?)의 큰 기계가 길 위를 지나가고 있었다. 저 기계는 울퉁불퉁한 길을 다듬어서 매끄럽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저 기계가 지나간 뒤의 길 위에선 오히려 자전거 타는 게 더 힘들었다. 길이 부드러워지니까 자갈들 사이로 바퀴가 더 빠져들었다.
야채 등을 살 곳이 필요했던지라 동네 아이들에게 슈퍼가 어딨는지 물었더니 직접 길 안내를 해주겠다고 했다. 의외로 슈퍼는 길에서 한참 떨어져 있었다. 슈퍼 앞에는 코스모스가 펴있었다.
며칠 동안 먹을 수 있는 야채와 간단한 파스타 같은 것들을 살 수 있는 슈퍼가 나와서 우리들은 신이 났다.
이후 다시 길을 가다가 배가 고파서 한 현지인 집에서 밥을 주문하게 되었다. 보통 현지인 집은 이런 구조로 되어 있는데 카펫이 바닥에 깔렸으며 카펫으로 벽을 장식하기도 한다. 대가족이 모여 사는 집 같아 보였다.
기름에 채소와 고기를 볶은 후 육수에 밥을 넣고 끓이는 플롭이란 음식인데 중앙아시아에서 굉장히 흔한 음식이고 파미르에서는 어디서든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미리 준비해 놓은 게 없었나 보다. 밥 한번 먹으려고 무려 한 시간을 넘게 기다린 거 같다. 갓 구운 빵을 먼저 줘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플롭에 들은 고기는 양고기였다.
밥을 먹은 후 엄청나게 힘든 오르막길을 올라야 했다. 자전거 타는 게 불가능해서 끌고 갈 정도였는데, 갑자기 현지 아이들이 몰려오더니 자전거를 막 뒤에서 밀었다. 뒤에서 그냥 무작정 밀면 균형 잡기가 힘들어서 아이들한테 자전거 밀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밀어줄 테니 돈 달라고 계속 달라붙었다. 결국, 아이들에게 고함을 질렀더니 그제야 내 주변에서 사라졌다. 나중에 정상쯤에 가서 동료들과 얘기를 하는데 동료 중 한 명이 어쩔 수 없이 아이에게 돈을 줬다고 해서, 나 소리 지른 거 못 봤냐라고 했더니 다들 박장대소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에 고북고분한 성격을 보이던 내가 꼬마 아이 상대로 평소와는 다른 성격의 모습을 보였으니 다들 신기했었나 보다.
힘겹게 오르막을 오르는데 절벽 옆 풍경은 기가 막혔다.
호록이란 도시에서 만났던 한국 여행자 일행의 동료들이 반대편에서 오고 있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드디어 길 위에서 만나게 되었다. 험한 길을 골라 가는 강한 자전거 여행자들 같아 보였다. 나중에 카톡으로 파미르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어디었느냐고 물어봤는데, 바로 우리가 만난 경로인 와칸벨리라고 했다. 나는 두산베에서 파미르로 향하는 북쪽길이 정말어려웠는데, 어느 방향으로 오느냐에 따라서 바뀌나 보다.
어쩌면 내가 와칸벨리를 덜 힘들었다고 느낀 이유가 내 옆에 든든한 동료가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한국분들은 저 멀리 멀어져갔다.
정말 힘들었던 오르막길 뒤에 다 같이 쉬면서 여유를 부리고 농담도 나누고 순간순간을 함께 즐길 수 있어 좋았다.
해지기 전에 길옆에 텐트를 치고 저녁을 해 먹었다. 이후 텐트에 들어가서 이너 텐트의 한쪽을 위로 올려 공간을 만든 뒤 1.5L 물로 샤워를 하는데 이게 무슨 무식한 짓인가 싶었다. 해발이 높아서 밤이 되자 갑자기 추워졌다. 잘못하다가 감기 걸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10분만에 후다닥 샤워를 하고 나니 깔끔히 잘 수 있어 좋았다.
오늘밤에도 별은 바람에 스치운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텐트를 열어보니 멋진 풍경이 보였다.
정말로 길 바로 옆에 텐트를 쳤다. 주변이 절벽이라 마땅히 숨을 곳이 없었다. 하기야 우리가 단체로 다니니 굳이 숨을 필요도 없다. 함께 다니면 확실히 덜 위험하다. 아침을 해 먹고 우리는 길 위에 다시 올랐다.
멋진 산길을 지나
시냇가가 나오자 우리는 물을 떠야 했다. 조그마한 구멍가게에서는 물을 팔지 않기 때문에 마시는 물을 쉽게 구할 수가 없었다. 한 번도 강물을 떠 마셔본 적이 없던 나로서는 독특한 경험이었다.
다들 필터를 이용하거나 세균을 죽이는 특별한 약 같은 걸 물에 넣었다. 나는 제이미라는 영국친구의 필터를 빌려 써봤는데, 처음 쓰는지라 신기했다. 엄지손가락보다 좀 길고 두꺼웠다. 무게는 굉장히 가벼웠는데, 단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시간이 좀 걸린다는 것이다. 대략 10분에서 15분 정도 걸린다.
필터 위아래는 병마개에 바로 연결할 수 있게 되어있다. 깨끗하지 않은 물병 위에 필터 한쪽을 끼우고 다른 한쪽에 빈 페트병을 끼운 다음에 뒤집으면 오염된 물이 빈 페트병으로 흘러 들어간다. 가격은 2~3만 원 밖에 하질 않았다.
근데 파미르 여행할 거 아니면 필터는 그다지 필요 하지 않다. 5년 넘는 세계 여행 동안 강에서 물 떠먹었던 건 파미르가 유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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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힘겨운 오르막길이 짧게 자주 나왔는데 의외로 나는 자전거를 밀지 않고 꾸역꾸역 타고 갔다. 나만의 비법이라면 앞을 안 보고 오로지 땅만 쳐다보며 엄청난 힘으로 페달을 돌리는 것이다. 재밌는 것은 맨 앞에 가는 쌤이란 친구는 가끔 자전거를 밀고 갔는데 자전거를 타고 가는 내 속력하고 비슷하게 움직였다. 또 다른 재밌는 것은 한참 타고 가다가 힘이 빠지거나 앞을 쳐다보면 갑자기 압박감에 멈춰 서게 되는데, 그다음부터 자전거 타는 게 불가능하다. 길이 미끄럽고 경사가 있기 때문에 오르막길 중간에 멈춰 서게 되면 밀고 가는 수밖에 없다.
산 꼭대기에서 흐르던 강줄기에 점점 가까워지더니 이내 이렇게 마주치게 되었다. 정말 깨끗한 물 같아서 다들 신나하며 물을 뜨기 시작했다.
나도 열심히 물병에 물을 채워 넣었다. 오늘은 샤워 안 할 거니 적당히 떠야지.
물을 뜨고 있는데 다른 자전거 여행자 한 명이 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우릴 보자 눈물을 터트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녀가 겨우 진정하고 얘기해준 얘기는 끔찍했다.
그녀가 전날 한 현지인 집 앞에 텐트를 쳤고 저녁엔 현지인 가족들로부터 식사에도 초대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새벽 늦게 집주인 아저씨가 그녀의 텐트를 열려고 한 것이다. 다행히도 텐트지퍼를 찾는동안 그녀는 잠에서 깼고 그가 텐트를 열지 못하도록 텐트 지퍼를 꼭 붙들며 한참을 씨름을 했다고 했다. 다행히 그날 밤은 무사히 지나가고 아침에 그녀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현지인 집을 떠났다고 했다. 왜 부인에게 말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봤더니, 어차피 자기는 하루만 지나가고 말 손님이기에 그들의 가정에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다고 했다.
우리가 지금부터 함께 자전거를 탈 거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다들 그녀를 안심시켰다. 현지인 앞마당에 텐트를 자주 치는 나로서는 소름끼치게 무서운 이야기였다. 일행 중 한 명이 나랑 함께 분노하면서 이런 일은 남자인 나한테도 일어날 수 있고 여자인 너한테도 일어날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순간 솔직히 너무 무서웠다. ‘뭐 나한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아무래도 당분간은 현지인 집 앞마당에 텐트를 못 칠 거 같았다.
그녀가 함께 합류해서 우리는 7명의 파미르 멤버가 되었다. 사진에서 맨 왼쪽은 두산베에서 파미르로 가는 길에 만났던 프랑스인 케빈, 앞 왼쪽 남자는 나랑 자주 말을 나눴던 스위스 친구 프란체스코, 그리고 앞 오른쪽은 나에게 필터를 빌려주었던 영국인 제이미. 다른 친구들이 우리 둘을 시스터 같다며 놀리곤 했다. 그리고 맨 오른쪽은 이제 막 함께 달리게 된 대만 친구 야츄. 그리고 맨 위 왼쪽은 쌤, 오른쪽은 찰리.
파미르도 식후경이라고 다같이 함께 점심을 지어 먹었다.
이번에 깨달은 건데 여행하는 인원이 많으면 나름 또 그만큼의 큰 재미가 있다. 두산베에서 까르보나 가루 소스를 산 게 있었는데 이날 저녁 스위스 출신인 프란체스코와 함께 파스타를 해먹었다. 당연히 스위스 레스토랑에서 사먹는 것보다는 못하겠지만 파미르에서 먹을 수 있는 최고의 스파게티가 아니었나 싶다.
다음날 아침 케빈은 자기만의 속도로 달리고 싶다며 먼저 떠났고 다시 우리는 6명의 멤버가 되었다.
여전히 길은 힘들었다. 중간중간 모랫길이 나와서 자전거를 끌어야 했다. 이 사진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진으로 남았다. 힘겨운 모랫길을 끝내고 맨 앞에 가는 쌤, 사진 맨 왼쪽에서 앞을 바라보는 프란체스코, 모래 위에서 힘겹게 자전거를 밀고 있는 파란색 옷 제이미, 모래에 바퀴가 빠져 잘 움직이질 않는 자전거를 붙들고 있는 야츄, 그리고 제이미와 야츄 사이에 보이는 찰리.
우리는 힘겨운 길을 함께 헤쳐나갔다.
힘겨운 오르막 뒤에 점심시간을 가졌다. 주변에 상점이 없어서 각자 샀던 비상식량으로 점심을 만들었다. 지도를 보니 점심 식수 이후부터 본격적인 힘든 오르막길을 올라야 했다. 그동안 Wakhan Valley를 달렸는데, 점심식사 후부터는 Wakhan Corridor를 달려야 한다. 둘이 다른점이 있다면 Wakhan Valley는 계곡 사이에 있는 길이며 Wakhan Corridor는 산 중간에 나있는 길이다. Wakhan Corridor에서 제일 높은 지점이 해발 4,313 m인데 오늘 안에 올라갈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섰다.
밥을 먹고 힘겨운 오르막과 싸워야 했다. 너무 힘들어서 밀기까지 해야 했는데, 어느순간 눈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오르막이 끝나고 휴식시간을 가졌다. 대만출신인 야츄는 태어나서 한 번도 눈내리는 걸 본적이 없다며 눈물을 흘렸는데, 그런 소중한 시간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다들 행복해 했다.
휴식시간에 찍은 영상
아무래도 오늘 4,313 m를 넘기는 힘들 거 같아서 호수 주변에 텐트를 치기로 했다.
텐트를 치는데 눈이 계속 내렸다. 날이 너무 추웠던 관계로 요리는 각자 알아서 해먹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스토브가 제대로 작동이 안 되어서 반만 익은 파스타와 채소를 먹어야 했다. 너무 고산지대라서 그랬는지 왜 그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또한, 머리에 두통도 왔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해발이 높아서 그런건지 알 길이 없었다.
다음날 일어나보니 텐트는 눈으로 덮여 있었다. 이날이 9월 1일이었는데, 고산지대라 그런지 날씨가 정말 추웠다.
주변은 온통 눈으로 덮였고 구름이 잔뜩 끼어서 자전거 탈 때 손가락과 발가락에 큰 무리가 왔다.
며칠 전만해도 더워 죽을 거 같았는데 갑자기 한겨울을 맞이해야 해서 손가락과 발가락이 얼 거 같아 다들 고생을 했다. 나 또한 제대로 된 장갑이 없어서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풍경이 멋있어서 중간중간 서서 사진을 찍고 싶었다. 특히나 해발 4,313m 부근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다들 죽자사자 쉬지 않고 달리기만 했다.
(야추가 찍어준 사진)
난 오르막에서 정말 속도가 느려 매번 뒤에서 꼴찌를 달리곤 한다. 하지만 내리막에선 거의 1등으로 달린다. 속도를 즐기는지라 브레이크를 잘 안 잡는데, 다들 무섭지 않냐고 뭘 그렇게 빨리 내려가냐고 물었다. 어차피 주변에 낭떠러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울퉁불퉁한 길을 빨리 달리면 은근 더 재밌다. 자전거가 고장나지 않을까 살짝 걱정되는 마음은 있었다.
풍경이 정말 멋있었는데 다들 쉬지않고 달리기만 했다. 나중에 밑에 내려가서 도대체 왜 단 한 번도 쉬지않고 달리느냐고 물었더니, 손가락 발가락이 너무 시려워서 얼른 고산지대에서 내려가고 싶어 그랬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프란체스카도 나처럼 사진찍는 걸 좋아해서 둘이서 중간 중간 서서 서로의 사진을 찍어줬다.
어느덧 Wakhan Corridor의 끝을 향해 다가갔다. 저 멀리 포장도로인 M41을 보니 비포장도로에서 떠냐아 한다는 게 아쉽게 느껴졌다.
지난 며칠간 와칸 밸리에서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주변이 산이라서 날씨가 급하게 변하곤 했다. 앞에서는 이렇게 파란 하늘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반대편엔 이렇게 비바람을 동반한 구름이 가득했다.
울퉁불퉁하고 모래 가득한 와칸벨리에서 달리다가 이렇게 포장도로에서 달리려니 자전거 타는 게 너무 지루하지 않냐고 팀원들에게 농담을 건넸다.
오늘 우리가 하룻밤 머물곳은 작은 마을 알리출이었다. (Alichor)
동네에는 냇가가 흘렀고 산으로 뒤덮인 멋진 풍경이 보였다.
내리막이었던지라 먼저 도착해서 팀원들을 기다렸다. 이후 어디서 잠잘지 주변을 탐색하기로 했다.
태어나서 처음 본 야크. 고산지대에서 사는 동물인데 소에 털가죽 잔뜩 씌운 모습이다.
게스트하우스가 몇 있었는데 우리는 그중 하나에 머물기로 했다. 주변에 시냇물이 있었는데, 집주인 부인이 물을 길어서 직접 난로에 데워 샤워할 물을 양동이에 담아주었다. 시멘트로 간단히 지은 샤워 건물이 있었는데, 아프리카에서 얼마 안 되는 양동이로 자주 샤워하고 텐트에서 1.5L 물로 가끔 샤워했기에 양동이 물로 샤워하는 건 전혀 문제가 안 되었다. 오히려 뜨거운 물로 샤워할 수 있어 정말 감사하게 생각했다.
샤워하고 나와서 상쾌한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는데 시냇물에 야크 똥들이 있는 걸 보고 원효스님이 생각났다. 원효스님은 어두운 동굴에서 목이 말라 주변을 더듬거리다가 그릇에 담겨진 물을 발견하고는 시원하게 잘 마셨다고 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보니 해골에 담겨져 있는 물이었다는 걸 알게 된 원효스님은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라는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했다.
내가 깔끔하게 샤워했던 물이 알고 보니 야크 똥이 담겨진 시냇물이었다는 걸 알게 된 후 내가 얻은 깨달음은 “모르는 게 약이다.”였다. 괜히 주변산책을 해서 똥을 발견할게 뭐람. 난로에 뎁힌 물이니 뭐 별일 없지 않을까란 위안을 해봤다.
야추, 제이미, 프란체스크, 나는 요트에서 자기로 하고 다른 사람들은 건물 안 에서 자기로 했다. 유목민 현지 요트에서 잘 수 있게 되어서 좋은 경험이었다.
다른 팀 동료들을 만나기 전에 차로 여행하는 네덜란드 커플을 만났었는데 그들을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내 옆 왼쪽이 로데릭(Roderick), 그 오른쪽은 그의 여자친구 마를린(Marleen)이 있다. 이들의 여행속도는 자전거로 여행하는 우리들과 같았다.
이날이 9월 1일이었는데 내 여행 5주년 되는 날이었다. 로데릭과 마를린이 내 여행 5주년을 축하해주기 위해 그들의 캠핑카에서 케이크를 만들어주었는데 형언할 수 없는 감동적인 맛이었다. 요 며칠 생존하기 위해 먹었던 음식과는 달리 달콤함 그 자체였다. 내 인생에서 가장 달콤한 케익이 아니었나 싶다.
이후 게스트하우스에서 차려준 저녁으로 식사를 해결했다.
저녁엔 로데릭이 들고 다니는 카드로 게임을 했는데 처음해보는 게임이라 조금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게임을 할수록 규칙을 알게 되어 재밌었다. 나름 심리게임이었던지라 내 카드를 상대방에게 들키면 안 되어서 좋은 패를 들고 있었을 때 심장이 두근거려서 감당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지냈던 곳이 해발 3,991m였던지라 조금만 무리해도 숨이 찼는데, 좋은 패를 들고 있다는 걸 숨기려니 심장박동 수가 높아져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이 게임을 하면서 얻은 교훈은 눈치게임은 해발 낮은 곳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마터면 심장마비 올 뻔했네.
원래 하루만 머물다 가려고 했는데 날이 좋지 않아서 하루 더 머물기로 했다. 다음 도시 무르갑으로 가려면 다시 한 번 높은 지대를 넘어야 하기에 날씨 흐린 날 갔다가 비라도 맞고 고생하면 목표 도시까지 한번에 못 갈 거 같아서 하루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우리에게 따뜻한 물을 데워줬던 분이 다음 날 아침엔 우리의 아침밥을 위해 야크 젖을 짜고 있었다.
물론 아기 야크가 먹을 우유도 남겨놨다. 이 야크가 정말 웃긴 게 돼지 멱따는 것처럼 이상한 소리를 낸다.
요트에서 함께 자는 친구들에게 “니네 야크 우는 소리 들어봤냐? 얘는 돼지보다 더 이상한 소리는 낸다. 그러니까 만약 새벽에 막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 그건 내 코 고는 소리가 아니라 야크 멱따는 소리라는 걸 명심하도록 해라!”라고 일러주었다.
야크 우유는 일반 우유와 마찬가지로 따끈하고 달짝지근했다. 야크 안에는 쌀 죽 같은 게 있었고, 빵과 쿠기, 차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해결했다.
할일 없던 친구들은 주변에 하이킹을 갔다. 나는 체력을 아낄 겸 주변에서 쉬기로 했다.
이란에서 처음으로 그림을 그렸을 때 깨달은 게 사진보다 그림이 더 강한 기억을 심어준다는 거였다. 초딩 1학년 수준의 그림이면 어떠랴 어차피 내가 만족하려고 그리는 건데.
점심으로 먹은 고기는 감자가 섞인 야크 고기였다. 사실 게스트하우스 시설은 굉장히 열악했는데, 발전기를 통해 전기를 공급했고, 수돗물이 없어서 시냇물에서 물을 얻어야 했으며, 밖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해야했다. 이런 황무지에서 따뜻하게 잠잘 수 있는 것에 감사했지만 핸드폰 및 배터리 뱅크가 다 달았는데 충전을 하지 못하는 건 답답했다. 그나마 카메라와 고프로엔 배터리가 조금 남아 있었다.
이날 종일 카드게임을 하며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어제와 달리 날씨가 정말 화창했다. 모두들 어제 하루 쉬길 잘했다며 신의 한 수였다고 서로를 칭찬했다.
간밤의 추위가 따뜻한 햇살에 녹기 시작했다.
시골마을 알리출을 뒤로하고 다시 길 위에 오를 때가 되었다.
집 주인은 이웃나라인 키르기스탄 사람이었는데, 이 주변엔 키르기스탄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에는 전날 온 자전거들로 꽉 차서 총 9명이서 아침에 같이 달리게 되었다.
날씨가 화창해서 날아갈 거 같았다.
가끔 가방끈이 느슨하면 이렇게 짐이 한쪽으로 쏠리는데 이럴 때 물건을 잃어버리기 딱 좋다. 그래서 가방 뒤쪽에는 잠바 같은 걸 놓으면 안 되는데 앞 가방이 꽉 차서 그냥 잠시 뒤에 묶어 놓곤 한다.
와칸 벨리와는 달리 시야가 정말 확 트였다. 같이 달리는 친구에게 와칸벨리와 지금 풍경 중에 어느게 더 좋냐고 하자 대부분 시야가 탁 트인 지금 풍경이 더 좋다고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계곡 사이 풍경인 와칸 벨리가 더 멋있었다. 사진으로 보면 당연히 지금 풍경이 더 멋져보이지만 난 이상하게 와칸밸리 풍경이 더 기억에 남는다.
이 주변 생선이 그렇게 맛있다고 들었는데, 이곳에 있는 물고기들을 직접 양식하는 건지 아니면 자연산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곳에 사는 유목민의 주식 중 하나는 생선일거란 건 분명해보였다.
허허벌판에 사는 유목민들..
오늘은 약간의 평지가 이어졌는데 오히려 다른 자전거 여행자들이랑 거리 차이가 더 벌어졌다. 사진 앞길에 보이는 미세한 점 두 개가 바로 다른 자전거 여행자였다. 그동안 와칸 벨리에서 함께 자전거 탈 때 자주 뒤에 늦쳐지긴 했다. 하지만 오르막이라서 시야가 확 트이지 않아서 압박감이 덜 했던 거 같다. 또한, 여러 명이서 함께 달리는 게 재밌었기에 그런 압박감들을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거리 차는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나를 기다릴 생각을 하니 죄책감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즐거운 여행을 왜 죄책감을 느끼며 미안해하며 보내야 하나란 생각이 들었다.
점심시간이 되어서 친구들이 요리를 준비하려고 할 때 그들에게 그동안 함께 달려서 즐거웠고 지금부터는 혼자 달리겠다고 하고선 다음 도시에서 보자고 하고 나만의 길을 갔다.
혼자 달리기 시작하자 아침에 들었던 죄책감과 압박감에서 자유로워져 엄청 신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걸 나도 모르게 되찾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자유”였다. 누군가에 끌려다니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여행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매우 신이 나서 점심도 안 먹고 미친 듯이 달리기만 했다.
힘든 오르막 구간은 다 지났던지라 다음 소도시 무르갑에 별문제 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무르갑에 도착하기 전에 체크포인트에서 여권을 보여줘야 했다.
북미 및 유럽 여행을 할 때 단 한 번도 교통표지판에 저렇게 스티커로 도배 된적을 본적이 없었다. 경찰이 봤다면 분명 딱지를 끊을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파미르 교통표지판은 스티커 및 낙서로 자주 훼손됐다. 몇천년전에 만들어 진 이집트 유적지에 갔을 때 1800년도에 유럽인들이 낙서한 것들을 발견했었다. 우리 모두 대단한 모험가 콜럼버스가로 기억되고 싶어서 저렇게 하는 거란 걸 이해한다. 하지만 꼭 저렇게까지 남의 나라의 공공재산을 훼손하면서 자랑을 하고 싶나란 생각이 들었다. 일부 표지판은 여행자들로 인해 너무 훼손되어서 새로운 표지판으로 갈아 놓기까지 했다.
사실 파미르를 지나면서 이런 거친 땅을 지나가는 내가 대단한 모험가일까란 생각이 들었다. 난 온갖 비싼 장비로 무장을 하고 이곳을 단지 이 삼 주 만에 지나 가버린다. 하지만 이곳에 사는 유목민들은 전기도 없이 최소한의 주어진 것들로 이 거친 자연속에서 생존해 간다. 그들을 보면 내 여행은 단지 사치라고 밖에 안 느껴졌다. 머나먼 여행을 왔으니 온갖 폼을 잡으며 사진을 남기긴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그들의 거친 삶 앞에 내 여행은 하나의 작은 몸짓밖에 안 되지 않나 싶었다. 정말 대단한 사람은 콜럼버스도 아니요, 온갖 무장을 하며 지나가는 나 같은 관광객도 아닌, 이런 거친 땅에서 수백 년 넘게 삶의 터전을 이어온 현지인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무르갑은 동쪽 도시 중에 가장 큰 도시이지만 시설이 굉장히 열악한 곳이다. 호스텔에 일찍 도착해서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는데 아침까지 함께 달렸던 일행들이 도착했다. 다시 보니 반가워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뒤늦게 잠바를 길에 떨어트린 걸 발견했다. 맨 뒤에 묶어 뒀던 잠바가 비스듬히 기울어진 가방 때문에 떨어졌나 보다.
부디 지나가는 차 바퀴에 망가지지 말고 현지인이 주워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유럽 스포츠매장인 데카트론에서 7만원짜리 주고산 잠바인데 가격대비 성능이 우수한 제품이다. 이너 자켓과 바람막이 자켓 두 개로 이뤄진 잠바였는데 파미르를 지나는 내겐 꼭 필요한 물품이었다. 현지에서 저런 좋은 제품의 잠바를 과연 살 수 있을까란 걱정에 마음이 무거웠다.
다른 일행들은 하루 쉰 뒤에 다시 자전거를 탄다고 했다. 나는 바로 다음 날 다시 자전거 여행을 하기로 했다. 무르갑에 제대로 된 슈퍼는 없었지만, 이렇게 컨테이너로 이뤄진 가게들이 큰 장을 구성하고 있었다. 이른 시간이라 열려 있던 슈퍼가 없어서 걱정했었다.
이리저리 둘러 보다가 다행히도 문 연 곳을 발견해서 2~3일 치 먹을 식량을 잔뜩 사고 본격적인 혼자만의 자전거 여행을 시작했다. 길에서 만난 여러 명의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 여행을 해서 정말 즐거웠다. 하지만 이제는 이 거친 땅을 홀로 달려보려 한다.
여행기가 늦으면 조금 걱정이 되네요.
길위에서 언제나 건강하길.
좋은사람들 많이 만나길…
항상 응원합니다.
덕분에 편히 앉아서 세계 곳곳을 구경하고, 사람들을 만날수 있어서 감사해요.
혼자서만 여행하시다가 여러 자전거여행자를 만나 같이 여행하시는걸보니 저가 마음이 푸근합니다.
성폭행 당할뻔한 여자여행자의 마음 씀씀이에 배울점이 많네요.
얼마나 무섭고 원망스러울건데도 자기는 여행자고 부부는 한평생 살사람이라고 하신 말씀.
뭔가 머리를 한방 맞은 기분입니다.
다시 혼자가 되셨는데 떡국 비슷한거라도 한그릇 잡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