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 펜데믹 이후 2년만에 다른 나라로 이동 | 마법의 치료약 불라 | 머리에 새싹이 피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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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팬데믹이 서서히 진정되기 시작했다. 호주에서 2년간 발이 묶였었는데,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새로운 나라로 여행 가는 거라 설레였다. 국제공항이 있는 난디에 착륙 후 이민국을 지나 짐을 찾으러 갔는데 자전거 상자가 두 동강 나 있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라 당황했는데, 다행히 망가지거나 분실된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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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는 남태평양에 위치해 있다. 여기로 자전거 여행을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호주, 뉴질랜드에서 피지까지 3~4시간 거리 직행 비행기가 있어 대부분 관광객은 호주, 뉴질랜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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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저가 저렴한 호텔에 짐을 풀고 밤새 한숨을 못 잤던지라 누워서 낮잠을 청했다. 몸이 간지러워서 방에 모기가 있나 살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도대체 왜 간지러운 거지 하며 침대를 봤는데, 빈대가 있었다!!! 침대 전체를 살펴봤지만 더 이상 빈대는 나오지 않았다.

아프리카, 호주, 동남아 등에서 물렸던 빈대랑은 완벽히 달렸다. 물리자마자 바로 알아차리게 되었고, 미친 듯이 가렵지도 않았다. 피지 현지인들이 굉장히 친절하다고 느꼈는데, 여기선 빈대조차 너그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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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에서 첫날이 서서히 저물어졌다. 드디어 길고 길었던 펜데믹의 어둠에서 벗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피지에서의 일몰은 정말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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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피지 돈이다. 참고로 한국 돈 천 원이 피지 돈으로 1.7달러 정도 한다. 피지에는 정말로 놀라운 점이 있는데, $7 지폐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슈퍼마켓 등에 물어보니 다들 $7 지폐가 없다고 했다. 피지 여행하면서 목표 하나가 생겼다. $7 지폐를 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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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자전거 가게가 없다고 들었던지라 호텔에 자전거 상자 보관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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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헌책방을 알아내서 갔는데, 내가 좋아하지 않는 범죄 스릴러 장르의 책이 대부분이었다. 한참을 찾다가, 수단 여성이 유럽에서 모델 활동을 하는 이야기를 담은 책을 발견하게 되어서 그걸 갖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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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를 돌아보는데 힌두사원이 보였다. 피지 인구 비율은 피지계 54%, 인도계 38% 정도 된다. 피지는 인종적으로 복잡해 쿠테타가 몇 번 일어났다. 사실 이 갈등의 씨앗은 영국으로부터 시작된다. 영국이 피지를 식민지로 삼았을 당시, 현지인들이 영국에 협조하지 않아 영국이 인도인을 데려왔다. 각자 다른 문화에서 자란 사람들이 갑자기 합쳐졌기에 상호간의 이해 부족 등으로 갈등의 뿌리가 심어지게 되었다. 현재 정치 상황은 전에 비해 안정적이다.

말레이시아에서 봤던 것과 비슷했다. 영국이 말레이시아를 식민지로 삼았을 당시, 현지인이 비협조적이자 중국인을 데려왔었다. 경제 관념 등의 차이로 인해 중국계는 중산층으로 올라가며 원주민과 큰 생활 수준 격차가 벌어지는데 피지 또한 비슷해보였다. 피지에서 내가 머물렀던 호텔의 직원들은 대부분이 원주민이었고, 손님들은 대부분 인도계였다. 꽤 비싼 휴양지 손님들은 대부분이 코카서인(백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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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디 시내에 있는 과일 야채 시장을 구경했는데, 현지인들이 끊임없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펜데믹 당시 호주에서 우울감, 상실감, 깊은 외로움에 빠져있었는데, 피지로 넘어와 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니 마치 정신 치료 상담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내 마음속 깊이 퍼져있던 어두운 안개 속에 이들의 웃음은 하나의 빛이 되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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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디의 복잡한 시내를 벗어나니 조용한 도로가 이어져 그럭저럭 자전거를 탈 만했다. 작은 섬나라 사람은 느긋하다는데, 막상 피지에 와보니 알 거 같다. 여기선 서두를 필요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 피지에선 하루에 20~30km만 달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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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옆에 있던 현지인 집에 하룻밤 텐트 쳐도 되냐고 물어보자, 바로 승낙해 주었다. 심지어 저녁 식사에도 초대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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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 계신 분이 어제 텐트 치게 허락해 주신 분이다. 이분은 피지 원주민이신데, 인도계 남성분과 결혼해 아이들, 시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다. 남편은 건강 문제 때문에 뉴질랜드에 가 있었다. 이들이 운영하는데 기념품 가게는 코로나 때문에 문을 잠시 닫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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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에서의 자전거 여행은 의외로 단순했다. 그냥 큰길을 따라 돌면 된다. 가끔 큰길 옆에 시골길이 이어지면, 거기로 들어가 느긋하게 자전거를 탔다. 길 위 현지인들은 항상 “불라(안녕하세요.)” 인사를 해주어서 오랜만에 여행하는 맛이 났고, 환대받는 기분이 들어 정말 좋았다. 당시 나에게 있어 “불라”는 마음을 치료하는 마법의 주문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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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의 숙소 가격은 호주보다 비슷하거나 비쌌다. 멀리 떨어진 섬이다 보니, 물가가 비쌀 수밖에 없는 거 같다. 어쨌든 내가 낸 돈에 비해 시설은 별로라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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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옆에 작은 섬이 보여서 산책하러 나갔는데, 시설이 꽤 큰 리조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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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바퀴 둘러보는데 세탁실이 보였다. 엄청나게 싸여 있는 세탁실. 24시간 돌아갈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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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에선 회의하는 직원들이 보였다. 다들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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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 집들은 대부분 간단하게 지어져 있는데, 이들의 집들을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마당을 엄청나게 잘 꾸민다는 것이다. 잔디는 깔끔하게 깎여 있고 각종 화분으로 가득 차 있어, 평화로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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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잡은 숙소는 요리할 수 있는 곳이었다. 주변 구멍가게 들러 오일을 사서 야채들을 튀기는데, 너무 오래 걸리고 맛도 이상했다. 자세히 보니 피부에 바르는 오일이었다. “먹지 마세요. 피부에 양보하세요~”라는 문구를 쓰기에 안성맞춤인 제품이다. 이건 나중에 만난 현지인에게 넘겼다. 참고로 이 숙소는 새로 지은 건물 같았는데 눕자마자 빈대에게 물렸다. 다행히 한 마리 잡은 후에는 더 이상 물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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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 있을 당시 머리 뒤편에 원형탈모가 있었는데, 머리 위쪽에도 탈모가 있었나 보다. 거울을 보는데 머리 위에 새싹이 나고 있었다. 내 삶에 다시 새싹이 돋아나는 걸까? 호주에서 느꼈던 우울감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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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항상 화창했고, 바다 풍경도 멋졌다. 오랜만에 다양한 감정을 평상시처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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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 집에 하룻밤 텐트 요청을 했는데, 실내에서 자라며 안으로 초대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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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형제가 함께 살고 있는 집이었다. 사진 속에 보이는 것은 피지 전통 형식의 지붕 아래 부모님 묘를 모시고 있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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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얼마 못 가 슈퍼에서 물을 사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한 여성분이 오더니 아침밥 먹으러 자기네 집에 오라고 했다. 부담되어서, 이미 아침밥 먹었다며 마음만 감사히 받겠다며 거절했다.

이후, 또 다른 여성분이 걸어왔는데 우리 집에 차 마시고 가라고 초대해 줬다. 차는 부담 없이 마실 수 있을 거 같아서 따라갔는데, 이후 영화 같은 일들이 펼쳐질 거란 건 상상도 못 했다. 아무 장비도 없이 높은 야자수에 올라가 코코넛을 따고, 동시에 그의 친척은 문어를 손으로 잡아 끌어 올리고, 아이들은 몰려 다니며 조개를 모아 낚시 미끼 준비하는 등, 내가 상상 속에서나 꿨던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실제로도 일어나서 내 여행 중 가장 하이라이트였던 순간이다. (영상은 블로그 맨 밑에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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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영화 같았던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이 삼일 더 머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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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나를 초대해 준 여성분께서 번을 만들고 있었는데, 그녀의 아들과 딸은 코코넛에 불을 지피고, 코코넛 껍질을 갈아 준비하고 있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최고로 맛있었던 번이었다. 일요일마다 이렇게 번을 만들어 다 같이 나눠 먹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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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점심때는 가장 큰 형제 집에 친척들이 다 같이 모여 식사한다고 한다. 신기한 점은 피지에선 누워서 밥을 먹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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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 중 한 분이 집 뒤 묘를 정리하신다고 해서 따라가게 되었다. 사진 속에 보이는 분홍색 옷을 입은 여자아이는 나를 초대해 준 집의 막내딸이었다. 그녀를 보니 내 어릴 적 모습이 생각났다. 집 안의 막내딸은 하녀가 되거나 공주가 되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내가 어렸을 적 했던 말이 그녀를 보니 생각났다. “내가 무슨 도토리밥이야. 왜 다들 나만 시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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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천을 두르고 먼지도 털어냈다. 묘를 관리하는 방법은 달라도, 묘를 관리할 때 느끼는 마음은 다 같은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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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내려와 해가 질 무렵 가족 중 한 분이 개에게 밥을 챙겨주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수줍게 웃으며 “우리는 남은 음식을 개에게 줘요. 이런 거 처음 보죠?”라고 물었다. 나도 수줍게 웃으며 “우리 한국 시골에서도 개에게 남은 음식을 줘서 처음 보는 거 아니에요.”

사람 사는 모습은 어떻게 보면 비슷해 보이고, 우리가 겪었던 일부 모습이기도 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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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풍경이 멋있었던 곳이었다. 친절한 가족을 만나서 더욱더 멋졌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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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근처 도미토리가 있는 리조트로 옮겼는데,  식당의 모든 음식은 비쌌고 주변에 슈퍼는 전혀 없었다. 나는 그중에 가장 저렴한 수프를 자주 사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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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머물렀던 집에 막내아들이 생일이라고 해서 과일과 그의 생일 선물로 축구공, 장난감 트럭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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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길 버스 잡는 건 너무 어려웠다. 길 중간에 내려야 했기에, 정확한 목적지를 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현지인 도움을 받아 버스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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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저녁으로는 Lovo가 준비되어 있었다. 땅을 파고 돌을 넣어 불로 달군 뒤, 나뭇잎에 싼 음식을 얹어 묻고 익히는 피지 전통 조리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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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족이 다 같이 모여서 막내아들의 10번째 생일을 축하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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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리조트에서 나의 우울증이 되살아났다. 뉴질랜드 직원이 풀어 놓은 검정 개에 공격당했을 때 호주인인 리조트 주인이 뜯어말렸는데, 다음날 그 개는 여전히 목줄 없이 리조트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개에게 물린 공포감, 사람을 공격한 적이 몇 번이나 있는 개를 풀어 놓는 개 주인과 호텔 주인, 내겐 화난 표정으로 대답하고 코카서인에겐 상냥하게 대답하던 젊은 현지 남자 직원, 같은 피부색하고만 친하게 지내는 호주, 뉴질랜드 게스트들을 보니 다시 깊은 어둠 속에  빠져드는 기분이 들었다. 같은 방에 지냈던 네덜란드 게스트와는 친구처럼 친하게 얘기할 수 있었지만, 리조트 전체 분위기는 내 정신 건강에 해롭다는 생각이 들어서 떠나기로 결심했다. 다음날 아무도 마주치고 싶지 않아 해가 뜨기 전 푸르른 빛이 보이던 새벽에 바로 짐 싸서 나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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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자전거 위에 올라 길에서 만난 현지인들과 “불라” 인사를 나누니 한결 마음이 편해지며, 그 리조트를 빠져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좋은 천국이라도 그곳이 나에게 맞지 않는다면, 거기를 떠나는 결단력도 필요한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호주에 있을 당시엔 국경이 다 막혀서 갈 수 있는 곳이 없었지만, 여기서 만큼은 자유롭게 떠날 수 있어 좋았다.

길옆에 음식을 직접 만들어 파는 현지인이 있었는데, 가격도 싸고 과일 주스도 신선해서 좋았다. 피지에는 길 개들이 정말 많았다. 가끔 길 개들과 음식을 나눠 먹곤 했지만, 가망 없어 보이는 개들이 너무 많아 방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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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들어가 하룻밤 텐트 쳐도 되냐고 물으니 그러라고 했다. 피지에선 100% 확률로 항상 너그럽게 허락해 준다. 나중엔 실내에서 자라고 초대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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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날 저녁 그렇게 고대하던 피지 전통 카바 음료에 초대받게 되었다. 카바는 뿌리를 말려 갈아 마시는 음료인데, 이걸 마시면 노곤해진다고 한다. 하지만 난 별다른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은근히 미숫가루랑 비슷한 맛이 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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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의 수도 수바로 가는 길 풍경은 참 아름답고 고요했다. 하지만 현실은 밤잠을 설쳐 피곤했다. 사실 피지에 온 뒤로 밤에 제대로 잠을 못 자는 날이 많아졌다. 길 개들이 너무 많다 보니 밤새 개들이 짖어 댄다. 피지엔 사람보다 개가 더 많은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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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바는 비가 많이 내린다고 했는데, 내가 막상 도착했을 땐 맑은 하늘이 자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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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바에서 외국인 커플 집에 며칠 머물며  “윙스팬”이란 보드게임을 알게 되었는데, 새나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꼭 사야 하는 보드게임이다!! 새의 서식지, 알 개수, 먹는 음식 등을 바탕으로 게임을 진행하는데 동물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정말 딱 맞는 보드게임이었다.

여기 머물렀을 때 외국인 호스트가 해준 말이 가끔 생각났다. “서양인이 피지에 처음 왔을 때 옷을 걸치지 않은 원주민을 보며 야만인이라고 손가락질했고, 지금에 와서는 옷을 둘둘 감싼다며 야만인이라고 손가락질을 해”

실제로 피지 원주민은 서양인들이 들어온 후로 대부분 기독교로 개종했고 여자들은 특히 옷을 가려 입어야 했다. 무엇보다 시골 마을에 들어갈 때는 Sulu라는 천으로 다리를 감싸야 한다. 피지에 처음 왔을 땐 난 그들의 전통을 존중한다는 마음으로 술루를 샀는데, 그 외국인의 이야기를 들으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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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 언어를 배우고 싶어서 USP 대학(University of the South Pacific) 서점을 둘러봤는데 마땅한 교재가 없었다. 하지만 동식물 관련 흥미로운 책이 꽤 많았다. 남태평양 관련 에세이 책을 사고 대학교를 둘러보다가 팔로워를 만나게 되었다. 당시 유튜브에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올렸는데, 나를 알아보는 피지 현지인이 가끔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7 얘기를 하니 갑자기 지갑에서 $7 지폐를 꺼내며 내게 선물해 줬다. 계속 거절했지만, 내게 꼭 주고 싶다며 건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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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빵집에서 자기네들이 학창 시절 즐겨 먹던 간식이 있다며 소개해 줬다. 안에 크림이 들은 빵인데, 엄청 달달하고 맛있어서 이후에 자주 사 먹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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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P 대학도 구경시켜 줬다. 사실 피지의 USP는 남태평양에서 가장 중요한 큰 대학교이며 USP의 본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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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 대학교에 다니고 있던 나우루 출신의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나우루는 인구 12,000명이 지내는 미크로네시아계의 나라이다. 이 친구가 꽤 인상 깊었던 점은 영국에 가서 전 세계 대학생들과 함께 토론을 벌이며 나우루의 비만 퇴치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점이다. 이외에도 피지에서 솔로몬제도, 사모아 등 여러 남태평양 출신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을 알아갈수록 여러 남태평양 나라들을 꼭 가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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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에 와서 처음으로 남태평양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다. 남태평양엔 미크로네시아(키가 상대적으로 작음), 폴리네시아(아시아인처럼 생김), 멜라네시아(아프리카와 비슷한 피부색, 어릴 땐 머리가 금발임) 크게 세 가지로 인종이 나뉘게 된다. 피지는 멜라네시아 폴리네시아가 섞여서 살고 있다.

싱가포르가 아시아의 허브라면, 피지는 남태평양의 허브다. 남태평양으로 오가는 많은 비행기가 피지에서 환승한다. 남태평양의 많은 학생이 피지 USP에 공부하러 가기도 한다. 남태평양에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피지에 많은 지도자가 오기도 했다. 중국 주석, 인도 총리, 호주 총리, 뉴질랜드 총리 등도 피지에서 카바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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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피지 현지 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한인 종교 단체 Grace Road Church(은혜로교회)였다. 그레이스는 2016년 피지는 신이 내려준 약속의 땅이라는 믿음으로 400명의 신도들을 이끌고 도착했다. 당시 태풍으로 나라 전체가 엄청난 피해를 입었는데, 그레이스가 태풍 피해를 도우며 서서히 현지 사회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자전거 타고 지나가다가 그들의 큰 농장 Grace Farm을 보기도 했다. 시가 총액 1위를 기록한 적이 있는 세계 최대 석유업체  Mobil 주유소가 피지 전체에 퍼져있는데 그 옆에는 항상 Grace 계열의 식당이나 슈퍼가 들어가 있다. 피지에서 한인 종교 단체 그레이스가 맡고 있는 사업이 꽤 많다.

True Mart (대형 슈퍼마켓), True Value (철물점), Bata (신발 판매점), Grace Beauty (뷰티 클리닉), Grace Dentist (치과)
Grace Kitchen (식당), Noodle Story(식당), Fierce Chicken (식당), Awesome Grill (식당)
I Sushi (스시 식당), Sunny Pizza (피자집) Pure Green (푸드 코트)
Snowy House(카페, 디저트), Patisserie Pacific (카페, 디저트)

중산층을 대상으로 하는 다른 대형 슈퍼마켓에도 그레이스 농장 상품들이 판매된다. 그레이스가 운영하는 곳은 깔끔해서 외국인들이나 중산층이 자주 애용한다. 가격도 외국인들이 이용하기엔 그렇게 비싸지 않다.

여행 초반 에어컨 잘 나오고 깔끔한 화장실 있는 식당이 있어서 이게 웬 떡이냐 싶어 이용했는데 그레이스 식당이었다. 리조트에서 만난 외국인이 그레이스에 대해 알려주게 되어 검색을 해보니 내 철학과는 맞지 않는 곳이란 생각이 들어 이후 이용하지 않았다.

(법적 문제가 있을 수 있기에, 댓글에 그레이스 관련해서 달지 말아주세요.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검색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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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5천 원 주고 중고로 산 내가 제일 아끼는 캔버스 신발의 밑창이 낡아서 비만 오면 자꾸 물이 들어갔다. 수선집에 맡겨 봤으나, 물은 계속 들어왔다. 너무 낡았나 보다. 이후 자전거 방수 가방도 다른 수리점에 맡겨서 찢긴 부분들을 수선했는데 의외로 잘 되어서 다행이었다.

한 피지 원주민이 얘기해준 얘기가 있었는데 피지는 기독교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땅이어서 이스라엘이 피지의 뒤를 봐주고 있고 피지는 이스라엘 군대에 지원한다고 한다. 인터넷에 검색해 봐도 이것에 대한 얘기는 없지만, 실제로 이스라엘에서 군대 생활을 한 피지 사람을 여럿 만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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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바에 이 주일 정도 더 머물고 싶어서 숙소를 찾았는데, 몸이 근지러워서 살펴보니 빈대가 있었다. 이전에는 한 마리 잡으면 더 이상 나오질 않았는데, 여기서는 5~6마리 잡아도 계속 나왔다. 건물 주인에게 얘기하니 임시방편으로 다른 방에서 하룻밤 머무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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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침대 메트리스, 커버, 베개 등을 싹 다 바꿔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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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빈대는 하루에 한두 마리씩 꼭 나와서 나를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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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대륙의 빈대는 물리면 2~3일 후에나 알아차릴 수 있고, 밤낮없이 긁어야 할 정도로 가렵다. 하지만 피지 빈대는 모기에 물린것과 증상이 비슷해 물리자 마자 알아차리게 되고, 붓는 범위도 비슷하며, 물린 순간엔 엄청 가렵지만 시간 지나면 가라앉는다.

그리고 나는 이 빈대들과 함께 격리 생활을 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코로나에 걸려버린 것이다. 여행을 위해 호주에서 3차 예방접종까지 하였는데, 바로 한 달 뒤에, 코로나에 걸렸다. 피가래, 콧물, 코막힘, 두통, 근육통 몸살로 일주일 넘게 빈대와 함께 앓아누웠다. 무엇보다 기침이 너무 심하게 나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혼자 머무를 수 있는 숙소에서 아팠기에 천만다행이었다. 무엇보다 수바에서 알게 된 한국인 친구 써머가 문자로 괜찮냐고 계속 챙겨주고 약과 먹을 것도 갖다줘서 정말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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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달러가 너무 갖고 싶다고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는데, 피지 현지인이 중앙은행에 가보라고 했다. 태어나서 중앙은행은 처음 가봤는데, $7을 원하는 만큼 살 수 있었다. 또한 지폐 역사도 살펴볼 수 있어 좋았다. 주변 지인이나 도움을 주신 분께 드리기 위해 14장을 구매했다. (한국 돈 5만 원가량)

피지는 7인제 럭비에 강한데, 올림픽 우승 기념으로 $7지폐를 만들었다. 세계에서 $7지폐를 보유한 나라는 피지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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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 인구가 92만 명이나 되는데, 남녀노소 불문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별로 없다. 나라 전체가 산악지형은 아닌데 왜 다들 자전거를 안 타는지 잘 모르겠다. 수바에서 우연히 자전거 가게를 하나 찾게 되었는데, 자전거 부품 외에도 다양한 것들을 팔고 있었다. 다행히 내가 필요로 하는 부품을 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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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바를 떠나니 비가 자주 내리기 시작했다. 비를 피해 잠시 길옆에서 쉬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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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멈추기를 기다리다가 우연히 자전거를 탄 소녀가 보였다. 정말 반가웠다. 두 바퀴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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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으로 먹은 음식인데, 정말 맛있었다. 참고로 피지의 주식은 달로(Dalo)와 카사바(Cassava)라는 고구마와 비슷한 뿌리 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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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섬에 넘어가기 전 현지인 집에 하룻밤 텐트를 칠 수 있게 되었다. 피지에서는 부족마다 쓰는 언어가 다르지만, 영어가 공용으로 쓰이기 때문에 영어로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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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신기한 일출을 보게 되었다. 피지는 일몰과 일출이 가장 멋진 나라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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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의 옛 수도 레부카(Levuka)로 넘어가는 길은 조용하고 한산했다. 날이 꽤 더워서 그늘에서 휴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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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부카로 가는 페리는 큰 트럭과 차들을 실을 수 있을 만큼 꽤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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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에서 보는 레부카 섬은 모아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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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을 한 바퀴 돌아 도착했는데 여기선 비가 내리고 있었다. 현지인의 허락을 받고 텐트를 친 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섬의 다양한 정보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섬에는 큰 참치 공장이 있는데, 이 섬의 큰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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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본격적으로 섬을 한 바퀴 돌려 하는데 엄청나게 심한 경사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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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상태가 거칠다 보니, 내리막길에 앞바퀴 짐받이가 망가지며 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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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에서 피가 나고 다리와 팔이 꽤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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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브레이크가 마모되어 잘 잡히지 않았다. 육각 렌치로 조여주면 되는데, 문제는 육각 렌치가 사라졌다. 어디다 흘린 건지, 누가 가져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항구로 돌아가기엔 이미 멀리 와버렸다. 경사가 너무 심했던지라, 자전거에 내려서 천천히 밑으로 끌고 가는 게 불가능했다. 신발 밑창이 달아서 자전거를 끌고 가려고 하면 오히려 더 미끄러졌다. 주변엔 차가 다니질 않아서 혼자서 직접 꼭 가야만 했다.

이 미친 경사를 브레이크 없이 내려간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고, 여기서 다치지 않은 건 내 인생 가장 큰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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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기 직전 한 마을에 도착해서 텐트 쳐도 되냐고 허락받은 후, 혹시 집에 육각 렌츠가 있냐고 물었는데 신기하게도 갖고 있다고 했다. 덕분에브레이크를 조정할 수 있었다. 이후 안에 들어와서 자라고 초대해 주셨는데, 따뜻한 물이 나오는 현대식 집이었다.

저녁때 집 주인분이 돌아왔는데, 내 짐받이를 보더니 직접 고쳐주겠다고 했다. 슈퍼 하나 없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이었는데 각종 장비를 다 갖고 있었다. 트럭 버스 운전을 하는 분이었는데 종일 일하느냐 피곤하셨을 텐데, 바로 짐받이 수리에 들어갔다. 꽤 오래 걸린 작업이라 감사하다며 돈을 건네 드렸지만 계속 받지 않겠다고 하셨다. 이걸 다른 곳에서 수리 했으면 훨씬 비쌌을 거라며 꼭 받아달라 하고 건네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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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섬의 길은 비포장도로라 트럭 버스로 다녀야 한다. 이른 아침 집 주인분은 손님들을 태우기 위해 나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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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자전거를 끌기 시작했다. 자갈이 많다 보니 가끔 미끄러져 헛발질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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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이 작아서 하루만에 쉽게 돌 줄 알았는데 난이도 최상급의 여행길이었다. 브레이크를 꽉 쪼였음에도 비포장도로에 경사가 심하게 져 자전거가 미끄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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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수많은 언덕을 지나 다시 평지로 들어섰다. 레부카로 돌아가기 전 리조트가 하나 있어, 여기서 하룻밤 머무르려고 했는데 예약이 꽉 찼다고 했다. 우연히 리조트 주인분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원래 주인은 영국분이셨는데 현지인과 결혼해서 아들을 낳게 되었고, 그 아들이 이 사업을 이어받게 되었다.

팬데믹 동안 사업이 정말 어려웠고 무엇보다 코로나가 한창 퍼질 때는 식료품을 나르는 배 외에는 다른 배가 들어올 수가 없었다. 아내와 아들이 수바에 배 타고 나갔을 때 락다운이 걸려 가족과 격리되기까지 했다. 손님이 없어도 유지 보수를 해야 하기에 돈이 계속 나갔고, 그 유지 보수를 하는 직원들의 월급도 계속 나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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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정말 무너질 거 같이 암담했을 때, 정부에서 레부카에 도로포장 사업을 진행한다는 뉴스를 듣게 되었다고 한다. 공사 직원들이 머무르는 숙소는 사장님 리조트가 선택되었다. 덕분에 사장님 리조트는 6개월 넘게 예약이 꽉 차게 되었고 직원들의 월급 문제, 유지 보수 비용을 다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팬데믹 기간 삶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힘든 시간을 보냈고 그런 얘기를 주변에 솔직하게 한다. 이유는 내 얘기를 진실하게 먼저 하면 상대방도 그들의 사연을 내게 들려주고, 그렇게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버텨낼 힘을 얻기 때문이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아직 이 지구에서 숨 쉬고 있다면, 우리 모두 팬데믹 전쟁의 생존자라고 힘든 시간 잘 버텨 냈다고 수고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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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섬에 사는 인구가 대략 5천 명 정도밖에 안 되는데 철물점에 육각 렌츠를 비롯해 각종 물건을 팔고 있었다. 원래 자전거용으로 나온 작은 육각 렌츠를 쓰는데, 사진 속에 보이는 큰 육각 렌츠가 훨씬 편해서 이후 계속 들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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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 수도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 써머가 주말을 맞아 레부카에 놀러웠다. 실제론 나보다 어리지만, 외국에서 만나면 뭐 다 친구지 않나 싶다. ㅎ 나 코로나 걸렸을 때 잘 챙겨줬던 친구라 정말 고맙기도 하고, 말을 재밌게 하는 친구라 만나면 쉴 새 없이 웃게 된다. 우리가 지내게 될 숙소는 요가수업을 하는 곳이라 조용하고 한적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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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머와 같은 배를 타고 나왔는데, 써머는 수도로 돌아가고 나는 다른 배를 갈아타기 위해 밤늦게까지 기다렸다. 이번에 탄 배는 피지에서 두 번째로 큰 섬 바누아레부(Vanua Levu)로 향했다. 밤 배라 다들 이부자리를 피고 잠을 잤기에, 나도 침낭을 꺼내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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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사부(Savusavu)라는 곳에 도착했는데 여기엔 외국 식료품점도 있었고, 요트와 현대식 주택도 꽤 많이 보였다. 알고 보니 이곳은 갑부들이 모여 사는 동네라고 한다.  난디나 수바는 복잡하고 자연 풍경도 그렇게 멋지지 않기에, 조용하게 지내고 싶은 중장년층 갑부들은 여기로 온다고 한다. 팬데믹 동안 병원 시설이 걱정되어 많은 외국인들이 여기를 떠나서 마을의 경제가 한동안 어려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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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는 작았지만, 괜찮은 카페와 식당이 꽤 있었다. 풍경 좋은 카페에서 밥 먹는데 물고기들이 플라스틱 껍데기를 먹었다 뱉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어 이거 뭐지? 아 먹을 수 없네? 그냥 가야 되겠다. 어? 이거 뭐지? 먹을 건가? 아 먹을 수 없네.” 이 짓을 3초마다 반복하는 거 같다. 아니면 원래 물고기는 플라스틱 껍데기를 즐겨 먹는 건가?

사람들이 무심코 버린 쓰레기를 물고기들은 3초마다 먹으려고 하고 있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저 물고기는 결국 우리가 잡아먹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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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의 노을은 언제나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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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 집에 하룻밤 허락을 받고 텐트를 쳤다. 피지에서의 여행은 균형이 잘 맞았다. 현지인 집에서 지내며 그들의 문화를 배우기도 하고, 나만의 시간이 필요할 땐 숙소를 잡아 유튜브 영상 편집을 하며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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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섬의 주요 도로는 산을 가로질러 간다. 포장 상태는 좋았지만 경사진 도로가 꽤 나와 힘들었다. 중간에 마을 하나가 나와서 점심을 사 먹었다. 피지에서는 닭, 감자, 카레를 랩에 싸서 싸게 판다. 처음 먹어봤는데 맛이 좋았다. 다만 다음날 화장실을 들락날락해야 했다.

원래 피지에서는 20~30km만 자전거를 타는데 이날은 거의 100km를 넘게 달렸다. 페리 시간에 꼭 맞춰 가야 했기에 밤늦게까지 달리게 되었다. 마을 하나도 없는 깜깜한 곳도 나왔고 차도 전혀 안 지나다녀서 무서웠다.  중간에 마을이 나올 때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손전등 없이 길 위를 걸어가서 그들을 치지 않기 위해 조심히 가야 했다.

그러다가 남성 두 명이 길 한 가운데 있는 걸 보게 되어 옆으로 지나가려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며 쫓아오려 했다. 빛 하나 없는 차들도 안 다니는 곳에서 낯선 남성을 마주치는 건 너무 무서웠기에, 미친 듯이 속력을 내어 달렸다.  다른 한 남성은 왜 지나가는 사람 겁을 주냐는 식으로 말리는 거 같았다.  술 취해서 그냥 말 걸었던 걸까 싶었지만, 나는 그 순간 공포에 빠져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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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 근처에 오자 차들이 계속 지나가게 되어 마음이 놓였다. 주요섬으로 돌아오는 페리는 럭비 경기를 보고 돌아가는 사람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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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가 새벽 4시 어둠 속에 도착했는데 주변에 아무 시설도 없었고 바닷바람도 너무 세게 불어 텐트를 칠 수도 없었다. 페리 직원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날이 밝을 때까지 페리 안에 있어도 되냐고 물어봤다. 직원은 선장님에게 물어보더니 괜찮다며 일등석 에어컨이 잘 오는 곳으로 안내해 줬다. 덕분에 침낭을 펴고 한숨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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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피곤했던지라 주변에 숙소를 잡고 하룻밤 머물렀는데, 피지의 석양은 나를 실망하게 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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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 사탕수수밭이 꽤 보였는데 사탕수수 주스를 파는 곳이 없어 아쉬웠다. 난디로 들어가는 길에 차량은 너무 많고 길은 좁아서 위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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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를 떠나기 전 써머와 함께 Yasawa섬 지역에 휴가를 가기로 했다. 관광객 전용 스피드 보트를 타고 갔다. 야사와엔 많은 섬이 있는데, 거기에 리조트도 들어서 있다. 스피드 보트가 중간에 서면 섬에서 작은 보트를 끌고 와 관광객들을 내려주고 새로운 관광객들 태우고 각자의 섬으로 돌아간다. 전 세계 6개 대륙을 여행지만 이런 식으로 여행한 건 처음이라 정말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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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게 된 섬은 Mantaray Island였다. 여기 또한 리조트가 하나뿐이라서 정말 조용하고 아늑했다. 휴양지라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싶었다. 생애 처음 겪는 휴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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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우리 방은 바로 바다 앞이라 써머와 함께 손뼉 치며 좋아했다. 그리고 다음 날 우리는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밤에 파도 소리가 정말 크게 들렸다. 썰물과 밀물 시간이 바뀌었다면 참 좋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섬 이름이 Mantaray Island라고 불린 이유는 이 섬에 실제로 가오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섬에는 가오리와 함께 스노클링하는 프로그램이 있어 그걸 신청했었는데, 가오리 지역으로 이동하는 배 안에서 내가 써머에게 잘 못 된 정보를 말해버렸다. 가오리 꼬리에 독침이 있는데 그거 맞으면 죽는다며 조심하라고 했다. 투어 끝나고 안 사실인데 독침 있는 가오리는 Stingray라고 불리며 우리가 본 가오리는 Mantaray였다. 숙소에 들어와서 써머에게 사과를 하는데 상황이 너무 웃겼던지라 둘 다 미친 듯이 웃게 되었다.

직원이 웃으며 내게 한 말이 생각난다. “우리가 미쳤다고 독침 쏴서 사람 죽이는 그런 투어를 진행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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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스쿠버 다이빙을 했는데, 거기서도 가오리를 볼 수 있었다.  물에 사는 거대한 공룡 새를 보는 느낌이라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투어로 남게 되었다.

혼자였다면 이런 휴양지 갈 생각을 못했을 텐데, 친구가 생겨 덕분이 이런 재밌는 여행도 할 수 있어 좋았다. 다음을 기약하며 써머는 비행기를 타고 수도로 돌아가고 나는 난디로 돌아가 피지를 떠날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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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상자를 맡겨 뒀던 호텔에 갔는데, 창고에는 내 상자가 보이질 않았다. 여러 직원에게 물어봤는데 그중 한 명이 건물 밖에 있는 내 상자를 찾아내 줬다. 상자에는 곰팡이가 무럭무럭 자라 있었다. 밖에서 그 많은 비를 맞았는데도 이 정도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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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머와 야사와 여행하는 동안 내 자전거와 짐을 보관해 준 호주 피지 가족! 이후에 돌아와서도 그들의 집에서 지내며 여러 도움을 받았다. 사진 속 남성분은 피지 사람인데 뉴질랜드에 살며 항공사 승무원으로 일했다. 같은 항공사 직원인 호주 사람과 결혼해 아들 두 명을 기르고 있었는데, 팬데믹이 발생하고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이후 가족 전체가 피지로 역이민을 와, 꼭 해보고 싶었던 땅콩잼 공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각종 슈퍼마켓에 납품했는데 품질을 인정받아 5성급 호텔에도 납품하며 힘든 팬데믹 시절을 이겨냈다고 한다.

피지 여행을 하며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인생 책 한 권씩을 갖고 있지만, 대부분은 그 책을 출판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에 출판되지 않은 그 책들을 읽기 위해 세계 여행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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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체크인하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온라인으로 이미 오버사이즈 체크인 가방 하나를 결제했는데, 자전거 상자가 너무 크다며 안 된다고 했다. 자전거만큼은 절대 포기할 수 없기에 카운터에서 긴 얘기가 오갔고, 결국은 허락 받아 비행기에 태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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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여러 나라가 국경을 봉쇄해, 갈 수 있는 나라가 많지 않았다. 다행히 바로 옆 나라 바누아투(Vanuatu)의 국경 개방 소식이 들려 거기로 가기로 했다. 솔직히 말하면 바누아투라는 나라의 이름은 피지에서 처음 들어보게 되었다. 전혀 몰랐던 나라를 여행하는 건 처음이지만, 남태평양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 큰 기대를 안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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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 여행 영상 모음===

피지에 처음 도착해 호텔 운전기사와 얘기 나누기

 

 

피지에서의 첫날 브이로그

 

피지 현지인들이 다니는 슈퍼마켓

 

난디 시내 구경

 

피지에서 처음으로 현지인 집에 허락받고 텐트 치기

 

피지 시장 구경하기

 

피지 작은 마을을 지나 자전거 타기

 

세계 여행의 하이라트였던 피지 가족 만나기

 

피지 전통방식으로 번 만들기

 

아이들과 함께 파파야 따러 가기

 

 

막내아들 생일 선물 사러 가기

 

처음으로 카바에 초대 받는 날

 

피지 수도 수바로 가기

 

수바에서 카바 바 체험하기

 

일출이 멋졌던 시골 마을에서 브이로그

 

레부카 내리막에서 죽을뻔한 고비를 넘기기

 

피지 카바 공장

 

선착장에서 만난 현지인의 말 한마디에 이런저런 생각에 빠졌던 브이로그

 

피지에서의 마지막 일정들을 담은 브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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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
  1. 여행기 잘 읽고 있습니다.

    건강하게 여행하시기 바라며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작은 금액이지만 후원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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