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즈번에서 한 달간 머문 곳에서 만난 이상하고 괴상하고 끔찍하지만, 꼭 이해해야만 했던 룸메이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사진 속에 그 룸메이트가 있는데 잘 보이는지 모르겠다.
이제 좀 내 룸메이트가 잘 보이나? 이름은 토비다. (스파이더맨 주인공 배우 이름 토비맥과이어)
토비 같은 룸메는 처음이었기에 끔찍하고 소름돋았다. (경고 : 이후 가까이 찍은 사진이 있음)
시간 되면 빗자루로 토비를 내쫓을 계획이었다.
뒤에서 보나
앞에서 보나 끔찍하다. 그런데 일주일 정도 지나 보니 어느 순간 토비에 익숙해졌다. 그래서 토비를 정식 룸메이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토비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나 주기로 했다. 사실 사과의 의미이기도 하다.
토비가 공간을 너무 크게 차지했다. 무엇보다 왼쪽 베란다로 갈 수 없게 막아놔서, 어쩔 수 없이 토비의 왼쪽 집을 부쉈다. 아마도 그것때문에 토비가 날 싫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왼쪽에 사는 룸메에게는 Gin이라는 술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줬고, 토비에게는 벌을 선물하려 한다.
토비 내 사과를 받아줘
던져주자마자 갑자기 막 달려와서 놀라서 뒤로 자빠질 뻔했다. 아무리 봐도 봐도 징그러운 룸메다.
토비는 신기하게 생겼다. 머리 부분이 하얀색이고 뒷부분이 노란갈색이다 .다리는 또 어찌나 긴지. 모델하다 왔나. 내가 선물로 준 선물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미안해 벌아.ㅠㅠ)
토비는 엉덩이에서 이상한 실을 내뿜는다.
그 실로 내 선물을 감았다.
그리고는 즙을 쪽쪽 빨아먹는다. 토비는 눈이 8개가 있는데 사실은 시력이 굉장히 나빠서 왜 8개나 있는지 모르겠다. 이전에 호주에서 텐트 쳤을 때 화장실 갔다가 돌아 오는 길에 해드렌턴으로 땅을 비추자 토비 친구들의 눈에 의해 땅이 반짝반짝 빛났던 게 생각난다. 아름다우면서도 굉장히 끔찍했던 밤이었다.
토비가 굉장히 느릿느릿 먹길래 방에 들어갔다가 30분?뒤쯤 나와보니 내가 준 선물을 이미 다 처리하고선 기념으로 위에다 걸어 놨다.
자기가 먹은 음식은 바닥에 못 떨어트리는 걸까? 아니면 저렇게 걸어두면 어떤 유익한 점이 있는 걸까?
이후 내 옆방 룸메와 토비에 대해서 얘기해봤다. 토비를 내쫓는 게 어떻냐는 그녀의 질문에, 함께 공존하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감사하게도 그녀가 내 제안을 받아줬다. 공식적으로 토비는 우리의 룸메이트가 되었다.
날이 좋은 날 토비를 가까이 보기로 했다.
그러다가 알게 되었다. 토비는 신체적으로 장애가 있다는 것을. 발이 총 8개여야 하는데 7개만 있다. 그러고 보면 참 대단한 거 같다. 토비는 병원 같은 곳에서 치료도 못 받고 혼자서 생존해야 하는데, 발 하나 없이도 이렇게 크게 성장해서 자기만의 집도 갖고 있는 걸 보니 말이다.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 감동 받았다.
바람이 많이 불던 어느 날 베란다로 나가보니, 토비야 이게 웬일이니!!!!!!! 대박일세!!!!!!!!!!! 로또 당첨보다 더 기뻤을 토비!!
바쁜 토비 이거 다 잡아서 먹어야지
운수 좋은 날
한 두 시간 뒤에 다시 나아가 보니 그새 그 많은 먹이를 다 해치웠다.
자세히 보면 바람에 토비가 자주 흔들렸다. 어지러움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토비. 가끔씩 바람이 세게 불 때가 있다. 그런데 이날은 정말 바람이 평소보다 더 거셌다. 밖에 나가 보니 토비의 집이 엉망 진창이 되었다.
토비의 집 절반이 거의 다 무너졌고 위로 말려 올려졌다. 토비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다음날 밖에 나가 확인해보니 토비의 집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로 복구가 되어 있었다. 7개의 다리를 가진 대단한 토비!
어느순간 깨달았다. 토비에게 내가 따로 간식을 안 줘도 된 다는 것을. 다리 7개로도 생존했는데, 내가 따로 챙겨줄 필요가 없다. 그는 스스로 혼자서 생존하는 방법을 안다.
비가 억수로 많이 오던 날
토비는 거센 비바람 속에서도 생존했다. 내 옆방 룸메에게 한 번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토비는 친구도 없고 가족도 없어. 하는 일도 없이 밤낮으로 한 곳에만 거꾸로 매달려 있는다.”
그리곤 내 방으로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이거 마치 내 얘기같잖아. 도서관에서 프로그래밍 공부하는 일 말고는 밖에 나가지도 않고, 가족도 친구도 없이, 호주에 발이 묶인 나.
생각해보면 이런생명체도 참 없다. 친구도, 가족도 없이, 한 곳에만 계속 매달려 독고다이 삶.
어느덧 룸렌트 계약했던 한 달이 지났다. 이제 토비와 작별인사를 할 시간이 왔다.
내 다음으로 들어 올 사람은 1년을 계약하고 들어온다고 한다. 아마도 그 친구들은 토비를 안 좋아 할 거 같단 생각이 든다. 토비가 좋은 곳에 잘 정착하길 바란다. 7개의 발을 가진 멋진 토비야 안녕.
사실 토비에게 가족이 있는 거 같다. 건물 복도인데 잘 보면 여기에 토비와 비슷하게 생긴 친구가 있다.
토비보다는 몸이 훨씬 작지만, 훨씬 큰 집을 갖고 있다. 아무리 봐도 토비의 자식인게 틀림없다. 혼자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토비에게도 가족이 있나보다. 안심하고 떠나도 될 거 같다.
번외편
동물들은 각자 자기 영역이 있다는 것을 과학시간 및 다큐멘터리에서 배웠지만, 실제로 그걸 처음으로 겪어본 곳이 뉴질랜드이다. 한 캠핑장소에 3일간 텐트를 쳤다. (당시 폴대를 잃어버려서 끈으로만 대충 지었다.)
핸드폰 3g 및 전기 안 들어오는 곳이라 3일동안 할일이 전혀 없다. 그러다 보니 주변을 자세히 보게 되었는데, 이 새가 똑같은 나뭇 가지 위에 자주 앉았다. 그리고 그때 처음 알았다. 새들은 똑같은 나뭇가지에 계속 앉는다는 것을. 그걸 바로 영역 동물이라 말하나 보다.
이후 또 한 번 영역동물이란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곳이 선샤인 코스트인다. 브리즈번으로 돌아 가기 전에 이삼주 정도 산속 집에 머물렀었다. 마당에 앉아서 보면 왔던 동물이 또 오고 또 온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쿠카부라 (Kookaburra)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허물어 버리는 나무 가지들이 알고보니 동물들이 매일 찾아와 앉는 곳일 수 있다.
호주 터키새인데, 이 새만큼은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었다. 토비와 마찬가지로 장애를 갖고 있다. 발가락이 없어 절뚝 걷는다. 함께 다니는 다른 터키 새도 한 마리 있다. 마당에 앉아 있으면 터키새와 쿠카바라, 호주 까치 등을 자주 반복해서 보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최고의 애완동물은 야생동물인 거 같다. 밥을 따로 안 줘도 되지, 밖에 오래 나가 있어도 걱정 안 되지, 돈도 안 들지, 이보다 참 쉬울 수가 없다. 유일하게 책임져야 할 부분은 그들이 살아가는 환경 그대로를 놔두는 것이다.
영상으로 이 글을 마무리 지어보려 한다. 유튜브에서 우연히 보게 된 영상이다. 동화속에서만 보게 될 ‘함께사는 숲속 동물’이 카메라에 그대로 담겨져있다. 강가에 놓여져 있는 나무에 여러 마리 동물들이 지나간다.
함께 살아가는 지구. 서로의 영역을 배려하며 함께 살아가자~
ㅋㅋ 글 정말 재밌게 봤어요. 토비가 다음 룸메이트와도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네요!
저도 바라는 바입니다.ㅎㅎ
안녕하세요. NYC에 사는 Software Engineer, Ricky 라고 해요. Samsung SDS America에 다니고 있어요. 자전거 여행을 준비하기 위해 자료를 모으는 중에 작가님을 알게 되었어요. 자전거 여행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를 배우고 싶고, 공부하시는 Programming에 도움이 되 드릴 수 도 있을거 같아서요. 혹시 google meet으로 통화 괜찮으시다면 아래 Email로 연락 부탁드릴께요. 고맙습니다.
안녕하세요. 댓글을 지금 봤습니다. 이메일로 연락드린 후 글에 적힌 이메일은 개인사생활 보호를 위해 삭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의 시작은 징그러운 거미였는데, 끝은 일곱다리 씩씩한 토비로 끝나는 군요ㅎ 뜬금없이 감명받아 댓글 남기고 갑니다. 여전히 진행 중인 긴 여정이 즐겁고 행복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