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펜데믹 때문에 호주에 발이 묶이다..이대로 내 꿈은 포기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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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에서 카이트 서핑하다 오른쪽 어깨가 좀 다쳤는데, 공항에서 수속하는데 어깨가 아파서 애먹었다. (다행히 일주일 뒤에 검정 손 받침을 하는 건 필요 없게 되었고 한 달 반 뒤쯤 완전 나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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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아웃백에서 만난 분이 당시 전화번호를 주면서 시드니에서 머물 곳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했었다. 엄마 만나기 전에 이분들 댁에서 머무르게 되었고, 엄마랑 여행하는 동안엔 내 자전거와 짐들을 맡아주었다. 호주 도착한 날이 크리스마스였는데 가족 파티에 초대해줘서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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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엄마와 함께 보내게 되어 좋았다. 여행 루트는 내가 이미 가본 곳인 시드니, 멜버른이다. 호주가 너무 땅덩이가 커서 여러 곳을 다니는 게 힘들 거 같아 각 도시에 오래 머무는 일정으로 잡았다. 여행 준비할 때 호주 산불 얘기가 나오고 있었는데, 하필 이때가 최악이어서 일정을 잘 못 잡았나 싶었다. 다행히 시드니 시내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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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를 타고 멜버른으로 가는데 연기 구름 때문에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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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호주 산불은 매년 난다. 호주 전체에 나는 게 아니라 주로 동부 남부에 불이 난다. 무엇보다 산불이 나야지 씨가 뿌려지는 토종 식물들이 있다. 하지만 이번 산불은 너무 심했다. 엄마가 12월 말 1월 초는 정신없으니 3월이나 4월 사이에 여행하는 게 어땠냐고 물어봤었는데, 혹시 미루다가 나중에 일 생겨서 못 갈까 봐 지금 하자고 했는데, 산불이 너무 심해서 여행 일정을 짠 나로서는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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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그레이트 오션 로드 날씨는 최고였다. 엄마를 위해 한인 관광회사를 선택했는데 깜짝 놀란 게 아무도 Dslr을 안 들고 있는 거였다. 호주까지 왔는데 그냥 다들 핸드폰으로 사진 찍다니? 시대가 변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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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안 되는 짧은 여행을 마치고 엄마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는 시드니로 돌아가기로 했다. 시드니 돌아가기 전 멜버른에서 머물렀던 친구네 집에서 며칠밤 지냈다. 오랜만에 친구들도 보고 반가웠다. 날씨 때문에 비행기가 다음날로 미뤄져서 멜버른에 다시 돌아와 하룻밤 더 묵고 갔다. (한 달 뒤 많은 비가 내려서 모든 산불이 다 꺼졌다. )
문득 생각해보니 엄마랑 단 둘이 지내다 보니 올해 새해부터 술을 안 마셨다. 문득 술을 끊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어 올해부터 금주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신기한 게 술이 그립지가 않았다. 밖에서 친구들 만날 때면 항상 마시던 술, 가끔씩 혼자서 맥주 한 두 캔씩하며 즐겼던 술이 어떻게 갑자기 생각 안 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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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 돌아와 짐과 자전거를 찾았다. 1월 중순였는데, 밀린 여행기와 영상을 올리고 피지로 갈 계획이었다.
여행기를 작성하는 이유 중 하나가 다른 사람과 공유이지만, 정말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내가 좋아하는 명언과 함께 설명해야 쉬울 거 같다.
‘생각하지 않고 읽는 것은 씹지 않고 식사하는 것과 같다.’ -에드먼드 버크.
여행기를 작성해야 생각이 정리된다. 무엇보다 여행기 작성 과정 중에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내 여행의 목적 중 하나는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기에 여행기를 꼭 작성하려고 하는데, 여행기가 밀리니까 여행이 제대로 안 되는 기분이 들었다. ADD 때문에, 밀린 여행기가 너무 많아서 압박감 때문에, 미루기가 너무 일상화되어서 등 여행기를 작성하는 게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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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초반 3년간은 1달에 글을 3~4개 올릴 정도로 부지런했는데 한 번 밀리니 답이 안 나온다. 예전부터 항상 여행기를 꼭 다 올리고 싶었는데 5년 가까이 단 한 번도 그걸 실행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꼭 여행기를 다 올리고 피지 가서 신나게 놀고 싶었다. 좀 비싼 돈을 주고 시드니에서 숙소를 구했는데, 집은 너무 편해서 결국 도서관엘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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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를 열심히 올리고 있었는데 뉴스에서 코로나바이러스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돼지열병, 에볼라, 등등 이런 뉴스를 많이 봤지만, 한 번도 내 삶에 영향을 준 적이 없기에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1월 23일 중국 우한이 봉쇄조치가 된다는 걸 보고 충격을 먹었다. 이후부터 여행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계속 뉴스만 지켜봤다. 매일같이 중국에 확진자가 몇 명있나만 보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한국이 세계 2위 코로나 확진자 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전세계에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인종혐오 범죄가 심해지는 걸 보고 피지 가는 게 망설여졌다. 그렇게 뭉그적거리며 갈팡징팡 할 때 갑자기 호주 슈퍼에서 휴지를 찾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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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군데 다녀도 못 찾았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코로나 사망자가 호주에 발생해서 사람들에 사재기를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필 나 이때 휴지 떨어져서 사무실용품 파는 가게 들러서 손 닦는 휴지라도 샀다. 이거 정말 아프다… 하.. 누구를 미워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인 게 엄마와 여행을 미루지 않고 1월에 했다는 것이다. 신의 한 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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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8일 찍은 사진.. 여전히 사람들은 오고 가고 있었다. 이날 한 유럽 관광객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곧 일본, 동남아 관광 후 집에 돌아간다고 했다. 비행기 막히면 어쩌냐고 하니 괜찮을 거라고 한다. 신기한 게 손소독제는 엄청 큰 걸 미리 준비했다. 사진 찍자마자 내게 소독제를 권했고 그 친구도 바로 소독제로 손을 비볐다.
각 나라 국경들이 실시간으로 막히는 걸 보고 겁이 나기 시작했다. 피지 가는 건 포기하기로 하고 대만에 서둘러 가려고 했다. 3월 17일 화요일날 자전거 상자를 구하고 바로 다음 날인 3월 18일날 떠나려고 했는데 자전거 상자를 못 구했다. 그래서 주말에 가려고 비행기 표를 계속 보며 시내에 나와 있었는데, 대만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국경이 막혔다는 것이다.
숙소에 돌아가서 보니 곧 있어 뉴스 기사가 떴다. 정말 국경이 막혔다. 대만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 국경들이 갑자기 다 막히기 시작했다. 갑자기 호주에 발이 묶였다는 생각에 눈물이 미친 듯이 나오고 두통이 심하게 났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물가 비싼 나라에서 일도 없이 어떻게 생존하나 걱정이 들었다. 더 깊이 생각해보니 발이 묶인 게 아니라 내 꿈을 포기해야 한다는 현실에 괴로웠다. 여행 초반 전세계 6개 대륙 여행하면, 꼭 북한을 통해서 한국에 가겠다고 했는데, 그 거 하나 믿고 열심히 달렸는데, 어떻게 시도도 못 해보고 꿈을 포기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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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호주 사재기는 극에 달했다. (2월에 시작한 사재기는 2~3달간 지속 되었다가 점점 나아지기 시작했다 . 6월 이후부터 문제 없이 물품들을 구매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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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는 한국에 못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로 인해 발생되는 인종차별 뉴스 때문에 겁이 났다. 실제로 호주에 있으며 여러 괴롭힘을 당했던 기억들이 생각나서 더 겁이 났던 거 같다. 그래서 한인타운으로 이동 후 한인쉐어집에 방을 렌트했다. 그 집은 코로나 만큼이나 암울했다. 처음엔 그래도 좀 같이 어울려 놀았으나 같이 지낼 수록 스트레스가 생겼다.집 자체도 춥고 어둡고, 집 전체를 렌트하는 한인이 처음부터 내게 거짓말을 했다. 무엇보다 역문화 쇼크(Reverse culture shock)가 날 힘들게 했다. 한국을 2010년 떠났고 이후 한 번도 돌아가 본 적이 없다. 한국 사람들만 여럿 있는 집에 머문 게 5년? 6년? 만이었기에 적응하는 게 정말 힘들었다. 그 집 사람들이 서로에 대한 배려가 없다 보니 더욱더 심했던 거 같다. 실제 연구에 역문화쇼크는 문화쇼크보다 훨씬 더 많은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최대한 오랫동안 생존하기 위해 내가 좋아하던 그릭 요거트, 치즈, 품질 좋은 호밀빵 등을 포기하고 최대한 돈을 절약하려고 노력했다. 여전히 휴지 구하는 건 어려웠다. 초콜렛으로 엉덩이를 닦으란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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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되니 코로나는 중국, 이탈리아,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호주 또한 봉쇄령에 들어갔다. 밀집 대상들만 닫고, 레스토랑은 주문 배달만 받았다. 호주 NSW주 정부는 운동, 병원, 직장, 공공기관 업무, 장보기 외에는 돌아다니지 말라며, 5인 이상 모임 금지라고 하는데 5명 이상이나 되는 인간들이 축구하는 게 보여 너무나도 화가 났다. 경찰에 신고하고 싶었지만.. 얽히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가 신고해주길 바랬지만..어느 누구도 신고하질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화나는 일들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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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시내에서 겨우 구한 휴지가 다 떨어져 나갔는데 여전히 대형마트에는 휴지가 없었다. 진짜 사재기 때문에 너무 짜증나 미쳐버릴 거 같았다. 안 그래도 우울한데 슈퍼에 빈 선반들 볼 때마다 내가 지금 최악의 상황에 살고 있구나라는 걸 자각하게 되어서 스트레스가 배로 생긴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이게 얼마나 괴로운지 모른다. 이거 당하면 인간이 이렇게 추하게 살아야 하나란 자괴감에 빠져든다.
한 팔로워가 자기가 슈퍼마켓에서 일한다며, 직원들은 휴지 미리 살 수 있다고 나 대신 휴지를 사줬다. 손소독제도 못 사고 있었는데, 자기 여분용 있다며 하나 나눠줬다. 펜데믹 이후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휴지 구했을 때라고 하면 믿어지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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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 산책하러나갔지만, 집 밖 멀리는 나가질 않았더니 자전거에 줄기들이 치고 올라왔다. 난 코로나보다 인종차별이 더 무서웠던 거 같다. 이전에 호주에 있으면서 여러 번 당하고, 그리고 주변 한인들로부터 들려오는 소식들이 있어서 무서웠나보다. 그런데 오늘은 꼭 밖에 멀리 나가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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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인종차별 걸릴까 무서워서 지하철 안 타고 자전거로 한 시간 반 타고 대사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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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의원 해외 부재자 투표를 했습니다. 해외에서 투표하는 건 이번이 5번째다. [19대 국회의원 선거(코스타리카에서 투표), 제18대 대통령 선거(파라과이에서 투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헝가리에서 투표), 제 19대 대통령 선거 (베트남에서 투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호주에서 투표)]
자전거로 세계 여행하면 일정을 짜는 게 꽤 어렵다. 그래도 매번 투표에 여행 일정을 최대한 맞췄다. 민주주의를 얻기 위해 많은 희생이 있었고 그걸 지키고 싶어서 매번 열심히 투표한다.

 

투표 가는 길 영상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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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가는 길에 오페라 하우스를 보니 텅텅 비었다. 그런데 신기한 게 옆에 공원 가니 사람들이 있었다. 오페라 하우스는 관광객들을 위한 곳이었나보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시드니 시내 영상을 찍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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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밖에 나가기 시작하니까 살짝 용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5월이 되니 호주 코로나 상황이 좋아지고 있었다. 팔로워에게 연락을 받아서 같이 하이킹을 갔다. 오랜만에 밖에 나오니까 좋았다. 이후 다른 팔로워와 자전거를 타면서 서서히 사회에 다시 나올 용기를 얻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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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암울한 집에는 두 달 넘게 머물렀다. 한 달 머문 후 다들 너무 배려를 안 하고 더럽게 집을 써서 이사하려고 했는데, 집값 할인해준대서 좀 더 머물다가 도저히 안 되어서 이사하기로 했다. 에어비엔비를 통해서 20km 떨어진 북쪽으로 이동 후 거기서 일주일 지내며 상황을 지켜보려고 했다. 때마침 NSW 주 정부에서 6월 1일부로 주 내에서만 여행을 해도 된다고 했다. 산악 장비는 떠나기 전에 팔기로 했다. 하니스는 워낙 싼 걸 샀던지라, 팔았다가 문제 생길까 봐 그냥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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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를 못 구했던 암울했던 시절 기타를 샀는데, 여전히 기타 실력은 안 늘었다. 떠나기 전에 되팔았다. 펜데믹 동안 이 집에 머물며 온라인 체스를 참 열심히 뒀다. 체스 실력이 좀 늘어서 뉴질랜드에서 같이 여행했을 당치 날 처참하게 이겨버렸던 네이든을 상대로 이기기도 했다. Chess.com 이라는 웹사이트가 있는데 정말 잘 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중독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계정을 닫았다가 다시 열곤 했다. 가끔 연달아서 지면 화가 나서 계정을 지워버리곤 했다. 아이디를 단순하게 Bird_01로 갔는데.. 현재 Bird_29까지 도달했다. Chess.com에서 수많은 새가 희생이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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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이사한 집은 산속이라 조용했다. 이전에 살던 집은 찻길 앞이라 너무 시끄러워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조용한 곳에 살게 되는구나 싶었는데, 바로 옆 거실에서 밤만 되면 TV소리를 크게 틀어서 나만의 조용한 시간을 갖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도 깔끔한 집에 머물게 되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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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여행할 준비를 할 겸 일주일 더 머물게 되었다. 집주인이 어디 간다며 개를 며칠 부탁해서 같이 산책을 나왔다. 덕분에 살짝 집값도 할인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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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여행을 시작하려고 한다. 퀸즐랜드 주가 보더(주 경계선)를 닫아서 우선 되는 데까지 NSW주만 자전거로 타려고 한다. 예전부터 냄비가 작아서 맨날 물이 넘쳤기에 큰 캠핑 냄비를 하나 샀다. 할인해서 엄청나게 A$44 (3만 5천 원)밖에 안 했다. 뉴질랜드 캠핑 브랜드였는데 이 가격에 이 품질이면 엄청 싼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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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 슬리핑 매트리스도 새로 샀다. 파리에 있을 때 현지인이 자기네 쓰던 낡은 걸 줬었다. 바람이 몇 시간 후면 빠지던 걸 5년 가까이 잘 썼다. 노란색 메트리스는 여행 시작 전 산 건데 저거랑 같이 겹쳐 쓴다. 바람 빠진 매트리스에서 자다 보니 매번 잠이 편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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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바람 넣는 구멍이 완전히 닳아서 사이가 벌어져 하나 사기로 했던 것이다. 이것도 할인하고 있었는데 A$67(5만 3천 원) 밖에 안 했다. 이건 진짜 거저 주는 거다. 바람 부는 구멍이 커서 좀 불편한 것 빼고는 이전 메트리스랑 무게도 크기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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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카메라를 산 게 고1때다. 대학교 들어가서 용돈 모아 첫 Dslr을 샀고 그 이후부터 항상 Dslr을 이용했다. 그런데 요즘엔 별로 안 쓴다. 폰으로 사진을 많이 찍는다. 그래서 카메라 및 각종 악세서리를 400불 (32만 원)에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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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하이앤드 컴팩트 카메라 Canon Powershot G5X Mark ii 을 중고로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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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전거 핸들바 윗부분 고무를 콜롬비아에서 바꾼 기억이 난다. 낡아서 닳았기에 7년만에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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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여행길 위에 오르기로 했다. 장을 보고 자전거 수리를 하고 캠핑장비 및 카메라도 정비하고 대략적인 준비가 끝났다. 시드니에서부터 시작된 두통은 첫 한 달간은 좀 심했고 이후 서서히 나아지더니 여행 시작할 무렵 말끔히 사라져 다행이었다. 당시 코로나 충격이 얼마나 심했으면 평소 앓지도 않는 두통을 오랫동안 앉고 살았나 싶다. (이전에 머물던 한국집이 오래 되어 공기도 안 좋고 날이 추워서 그런지 목이 자주 부었는데 두통까지 오니 코로나 걸렸나 무서웠는데, 코로나는 아니었던 게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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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만에 다시 오른 길 위에서 자전거를 타는데 누군가가 말을 걸어서 깜짝 놀랐다. 한국 나이 85살 되는 분이 내 자전거 여행이 멋져보인다며 말을 걸었다. 코로나로 여전히 전세계가 위험 중에 있는데 아시아인인 내게 고위험군인 분이 말을 건다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감사했다. 나를 인간으로서 대접해준다는 게 이 암울한 전염병 시대에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아시아인이란 이유만으로 많이 위축되고 겁이 생겼는데 첫날부터 큰 용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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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와일드 캠핑 용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생각해보니 와일드 캠핑을 혼자 하는 게 1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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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은 좀 더 숲 깊은 곳을 찾아내 했지만, 여전히 무서웠다. 왜 이렇게 갑자기 와일드 캠핑하며 겁을 먹지? 저녁은 너무 무섭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살아났다는 기쁨에 상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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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길 위에 앉으니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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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사람들은 친절하게 내게 말을 걸었다. 아시아에서 바이러스가 처음 퍼져서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가 가득하면 어쩌지 걱정했지만, 길 위에서 다들 내게 말도 걸고 농담도 해줘서 정말 감사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이 갑자기 너무나도 큰 선물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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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먹으면서도 와일드 캠핑은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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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텔에 갔는데 코로나 때문에 쉐어 안 한다고 나 혼자만 쓴다고 한다. 가격은 추가로 부담하는 게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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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괜찮은 YHA 호스텔이었는데 나 혼자 밖에 없어서 죄송했다. 직원 없이 사장님 혼자서 운영하고 있었다. 다행히 주말 되니까 몇 팀이 도착했지만, 평일엔 다시 나 혼자가 되었다. 사장님이 꼭 이 힘든시기 잘 버터내셨으면 한다.

 


호스텔에서 찍은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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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주 경계선 막혔으니 천천히 주변에서 자전거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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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다 펜스가 쳐져서 와일드 캠핑 장소를 못 찾았는데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현지인에게 마당에 텐트 쳐도 되냐고 물어봤는데, 여러 번 거절당했다. 한 현지인은 화난 표정을 나에게 지었다.
작년 호주 여행 당시 흔쾌히 승낙을 자주 받았었다. 마당에 텐트 치는 걸 허락해준 후 전혀 교류 같은 거 없이 그냥 잠만 하룻밤 자고 떠나는 경우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조차 허락이 안 되는 거 같다. 다음부턴 현지인에게 물어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냥 내게 말 걸어주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끝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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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남아도니 주변 돌다가 이상한 길로 빠져들었다. 양말 벗고 자전거를 밀었다.

 

요즘 라이브 방송을 한다. 심지어 산 속에서 와이파이 터져서 강 건너는 걸 라이브로 찍었다. 참고로 NSW주에는 악어가 없어서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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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자를 집에 초대해주는 웜샤워 호스트 사이트에서, 산 속 농장을 운영하는 커플이 보여서 쪽지를 보냈더니 흔쾌히 초대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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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네 가는 길은 조용한 숲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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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 완벽히 숨겨진 와일드 캠핑 장소를 찾는 게 어렵다. 해가 5시면 지니까 서둘러서 캠핑장소를 찾다보니 매번 샛길 옆에 쳐서 밤에 긴장되어서 자꾸 깬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나는 자꾸 겁을 먹는 거지? 1년 전만 해도 와일드 캠핑 할 때 이렇게 겁먹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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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 과 Tanya의 커플 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산 속이라 조용해서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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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가 나보다 훨씬 큰 말이 갑자기 나한테 걸어와서 정말 무서웠다. 뒷걸음질 치며 조심히 물러났더니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후 용기를 내서 다가가 쓰다듬어봤다. 나중에 알았는데 말이 다가온다는 건 친근의 표시라고 한다. 이후 아침저녁으로 산에 가서 말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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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는 별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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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00 km 기념샷! 천천히도 오래 자전거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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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현지인이 내 페이스북 여행 페이지에 쪽지를 남겼다. Old Bars라는 마을에 산다며 초대해 줘서 도대체 어떤 마을인가 궁금했는데 굉장히 평온한 마을이었다. 술집이란 의미가 아니라 다른 의미로 쓰인다고 한다. 코로나 시국에 모르는 사람에게 초대 받는 다는 게 얼마나 충격적이고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아참 금주 한 지 반 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술이 그립지가 않다. 신체 변화 같은 건 없지만, 술을 끊었다는 게 너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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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과 Rhonda 두 분 다 굉장히 친절하고 내게 잘 대해줬다. 내게 더 오래 머무르라고 했지만, 며칠 전 농장에 머물르며 알게 된 Tanya와 함께 자전거를 타기로 해서 그럴 수 없어 아쉬웠다. 톰이 어깨 동무를 할 때 솔직히 살짝 놀랐다. 코로나 이후 악수 및 포옹을 조심했던지라 누군가와 이렇게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일상이 놀랍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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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다가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해서 내 자전거를 타보라고 했다. 사람들이 내 자전거를 타는 걸 볼 때 항상 흐뭇하게 바라본다. 그들이 내 자전거를 통해서 내 세계 여행을 간접적으로라도 느껴봤으면 하는 바람이 항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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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탄야와 함께 며칠 같이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그녀 무릎이 안 좋아서 천천히 자전거를 타야 했는데 나로서는 천천히 달리니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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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곳에서 자전거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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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장 입구에 알을 낳은 새를 봤다. 호주 토종 까치 Magpie가 아닌 게 감사했다. Magpie는 새끼철에 사람을 마구잡이로 위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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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생각이면 사람들 다 지나가는 잔디에 알을 낳는 거니.. 갑자기 급하게 산통이 터진 건가? 무사히 새끼 잘 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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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장 풍경이 정말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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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서 각각 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바다 앞에 캠핑 친다는 게 정말 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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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장에 돌아다녔던 캥거루. 주머니 속 애기는 처음본다. 완전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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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풍경에서 잘 쉬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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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야와는 작별 인사를 하고 다시 혼자 길 위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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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페리카나가 자주 보인다. 한 마리가 생선을 입에 물자 조용히 세 마리가 천천히 따라 오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다른 작은 새들은 먹이 하나 두고 서로 막 소리 지르며 싸우는데 얘네는 마치 학교에서 누군가가 과자 봉지를 열면 주변 친구가 오는 그런 느낌을 연출했다. 페리카나가 엄청 큰 새인데 얘네들이 날면 마치 공룡시대 동물을 보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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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 맥콰이어리 (Port Macquarie) 호스텔에 갔는데 여기는 한 방에 두 명이 최대라고 했다. 그릇도 따로 줬다. 하지만 어차피 주방 식기 도구는 다 공유하는데..음..? 다행히 이 호스텔은 게스트들로 나름 분주했다. 그런데 한가지 발견한 건 이 때가 한참 학교 방학기간이었는데 일반 호텔, 캠핑장은 사람들로 다 가득 차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호스텔은 기피하는 게 보여서 호스텔 사업 하는 분들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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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들에 페인팅이 칠해져 있던 곳인데 때마침 실제로 하고 있는 사람이 보여서 말을 걸었다. 호주에 오랫동안 산 프랑스 여성인데, 옆에 같은 동네 사람인 이탈리안 남성이 프랑스 여성에게 계속 귀찮게 막 장난치며 말 걸어서 굉장히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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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페인팅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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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가 정말 좋은 게 돌고래를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쁜소식이 들렸다. 퀸즈랜드 주 경계선이 열렸다고 한다. 옆에 있는 주로 이동할 수 있게 되어서 천천히 이동하는 건 그만두기로 하고 조금 속력을 내기로 했다. 언제 또 경계선이 닫힐지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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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자전거를 타면서 문득 잊혀진 꿈이 생각났다. 북한을 통해서 한국 가기. 그런데 너무 무서웠다. 사람들한테 비난받는 게 무서웠다. 이 꿈을 2011년 여행 초기부터 생각했지만 내뱉지 않았던 이유가 정치적으로 엮이고 싶지 않아서 최대한 미루고 있었다.
어차피 코로나 때문에 더욱더 힘들고, 원래부터 불가능한 일인데 지금은 더욱더 불가능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긁어서 뭐하러 부스럼 만드나란 생각이 들었다. 만약 여론이 크게 형성되면, 내게 너무나도 소중했던 지난 여행이 송두리채 비난 받을 텐데, 이걸 왜 굳이 해야 하나 겁이 났다. 그래서 자전거 타면서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와일드 캠핑할 때와는 다른 용기가 필요했다. 비난받아도 내 뜻을 굽히지 않는 용기가 필요했다.
자전거를 타며 끊임없이 고민했고 결국 최종 결론을 내렸다. 용기를 내어서 북한 국경선 넘는 것에 대한 허가 신청서를 내기로 했다. 비디오를 제작하고, 국민청원을 해서 여론을 도모하기로 했다. 이후 그 결과를 기다리면서 골드코스트에서 꿈에만 그리던 서핑을 배우려고 한다. 이후 브리즈번으로 이동해서 한국을 가든, 중국에 가서 북한을 통해 가든 겨울이 오기 전 한국에 꼭 들어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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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고민 끝에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

“여행 초반 사람들이 “Where are you from?”이라고 물으면 전 “I am from Korea.”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꼭 다시 한번 질문이 돌아옵니다. “South or North?” 이때부터 내 나라 정체성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5천 년의 역사를 공유하고 같은 문화와 언어를 쓰는 한 민족이 이렇게 갈라져 있다는 것이 비극적인 것임을 해외에서 나와서 깊이 깨달았습니다.
위험한 나라를 포함 전 세계를 여행하는데 어째서 한반도의 반을 여행을 못 하는 것인가에 대한 깊은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2011년 여행을 시작한 이래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비행기가 아닌 자전거로 북한을 통과해 한국을 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8년 동안 단 한번도 한국에 가지 않았습니다.
자전거 위에 있으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몸은 바쁘게 움직이지만 제 머릿속은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그중 많이 하게 되는 상상은 바로 북한을 통과해서 집에 가는 것입니다. 어쩔 땐 감정에 복받쳐 올라 슬픔에 가득 찬 상태로 페달을 돌립니다. 이전에 외국인들이 오토바이로 북한을 횡단하는 것을 보았고, 또 다른 외국인은 북한에 산을 구경하기 위해 몇 번이나 북한을 방문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며 0.0000001%의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란 희망을 품었습니다.
항상 뉴스에 귀 기울이며 좋은 뉴스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올해 1월 남북간 자유로운 여행에 대해서 토론하는 것을 보고 올해 2020년은 집에 가기 완벽한 해라며 기대에 잔뜩 부풀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고 저는 호주에 발이 묶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집에 가긴 싫어서 비싼 돈을 주고 새로운 비자를 어렵사리 받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정치적으로 남북관계가 굉장히 악화된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제 호주 비자는 8월 18일날 만료됩니다. 전 세계적으로 국경이 막혀서, 어딘가 가서 코로나가 지나가길 남북 관계가 다시 좋아지길 기다릴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여행을 끝내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행에서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이 없었다면 전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인생은 모르는 것이다. 시도하지 않고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실패다. 그러니 시도는 꼭 해봐라.” 현재 통일부에 민원 신청으로 편지를 접수했습니다. 또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북한 여행을 진행하는 해외 여행사, 단체 관광이 아닌 개인여행으로 북한을 다녀온 외국인들, 한국 정치인들, 일부 언론에 도움 및 조언을 부탁하는 메일도 보냈습니다. (그런데 한국 관련 연락처들은 불분명해서 페이스북으로 편지를 보냈는데 스팸으로 가서 그런지 읽지를 않네요. 혹시 이 부분 관련 도움 주실 분 계시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편지에는 현재 코로나19로 인해서 상황이 어려운 관계로 최대한 위생에 신경 쓰며 조심히 다니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국경을 넘기 전 코로나 테스트를 받고 이후에는 최대한 사람이 없는 길을 선택해 다니며 관계자들과 함께 항상 현지 법을 따르며 다니겠다고 적었습니다.
북한 국경을 통해 한국으로 귀국하는 것을 오랫동안 꿈꿨는데, 한반도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전 세계에 우리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해외에 나와 있으면서 지난 8년간 마음속 깊이 분단의 고통을 느꼈습니다. 북한을 통과하겠다는 것은 어떤 기록을 위해서도 여행을 위한 모험심도 아닙니다. 우리의 비극적인 분단의 고통을 극복하고 싶은 바람일 뿐입니다. 집으로 가는 길이 유독 멀게만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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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좋은 곳에 텐트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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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침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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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맞으며 텐트를 걷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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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에서 자전거를 탔는데, 오후에 날이 풀려서 공원에서 진흙들을 씻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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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호스텔은 이전과는 전혀 달랐다. 각 방에 사람들이 다 꽉 차 있었다. 보니까 농장에 일하는 워홀러들이 머무는 호스텔이었다. 방에 창문도 없어서 환풍도 안 되어 다들 문을 열고 있었다. 호스텔이라기보단 무슨 캠프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호주 정부의 방역법이 지켜지고 있는 건가 의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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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바이런 베이로 향했다. 사람들이 많아서 깜짝 놀랐다. 이 동네엔 관광객이 왜 이렇게 많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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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HA 호스텔이었는데 머무는 관광객 게스트들이 많아서 깜짝 놀랐다. 이곳 또한 한 방에 최대 두 명만 머물게 했다. 원래 와일드 캠핑하고 싶었는데, 다음날 주 경계선을 넘게 되어 있어서 전날 어디서 잤냐고 물으면 숙소 주소가 필요할 거 같아서 돈 주고 호스텔에서 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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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큰 호스텔엔 처음 지내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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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주변 산책을 하려고 보니 동네가 정말 마음에 들어서 오래 머무르고 싶었지만, 주 경계선이 언제 다시 닫힐지 모르기에 시드니에 돌아가는 게 싫어서 골드코스트로 바로 이동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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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경계선을 빨리 넘기 위해 고속도로 위에서 자전거를 탔다. 부디 별문제 없이 새로운 퀸즐랜드 주에 들어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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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 어머님과 여행 진짜 시기가 잘맞았네요.

    평상시에도 멋지지만 자전거 여행땐 훨씬더 멋집니다

    빨리 하늘길이 열려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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