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0
열심히 페달을 밟으며 가는데 깃발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이 나타났다.
이후 많은 말들과 소들이 사람들과 함께 지나갔다. 유목민들이 가축을 몰고 이동하는 모습이 9월 말에도 자주 보였다.
계곡 사이를 달리다 보니 멋진 풍경을 끼고 달릴 수 있었다.
주변에 게스트하우스 같은 게 전혀 없어서 와일드 캠핑을 하기로 했다. 어디서 텐트를 칠까 계속 고민하다가 샛길로 빠지는 곳이 보여서 텐트를 치기로 했다. 사람이 안 지나 갈 거 같아 안전할 거라고 믿고 텐트를 쳤다.
물이 충분치 않아서 계곡물을 떠서 요리를 하기로 했다.
아무거나 넣고 막 끓이기. ㅎ
차들이 계속 별빛 아래로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 쓰레기를 자전거 뒤에 싣고 평온해 보이던 계곡을 뒤로하고 다시 달릴 준비를 했다. 근데 자세히 보니 길 건너편에 조그마한 집이 보였다. 사람이 살고 있는 걸까 궁금했다.
하늘이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오늘 산 정상 하나를 올라가야 했는데 비가 언제 그칠지 알 수가 없었다.
고도가 높아지자 비가 눈으로 바뀌었다. 비를 오전부터 맞다 보니까 옷이 다 젖었다. 가장 고통스러운 게 바로 손가락이었다. 이렇게 손가락이 고통스러웠던 적이 전에 없었다. 동상 걸릴 거 같이 너무 아파서 손을 옷 안으로 집어 넣어봤는데 문제는 옷도 젖어서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질 않았다. 결국 길 한쪽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티셔츠와 잠바를 갈아입었다.
젖은 옷을 갈아입으니 좀 살 거 같았다. 손이 동상 걸릴 것만큼 정말 느낌이 없었는데 옷좀 갈아 입고 달리다 보니 체온이 올라가서 옷안에 손을 집어 넣으니 그제서야 손이 녹는 거 같았다. 따뜻한 장갑이 없어서 일반 장갑 위에 고무장갑을 꼈다. 역시 노란색이 짱!
드디어 정상에 다다랐다.
현지인들이 빵과 보드카를 건넸다. 자전거 탈 땐 술 절대 안 마시는데, 추웠던지라 이거라도 마시면 몸이 따뜻해지지 않을까 해서 마셨다.
정상에서 마시는 보드카 한잔..ㅎ
잘 녹는 눈이라서 더욱 추위를 느끼게 되어 자전거 타는게 쉽지 않았다. 이렇게 추운데 신발 장갑이 다 젖은 상태에서 내리막을 내려 가는 건 정말 고통스럽다.
열심히 추위와 싸우며 내려와 보니 드디어 평지가 보였다.
다행히도 안락한 숙소를 잡게 되었다. 히터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젖은 옷가지와 장비들을 말리고 편안히 잘 수 있어 좋았다.
다음 날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키르기즈스탄의 수도 비슈켁을 가느냐 아니면 키르기즈스탄에서 제일 큰 이시쿨 호수로 바로 가느냐였다. 수도에 가봤자 그다지 할일이 없을 거 같아서 바로 호수로 빠지는 길을 선택했다.
작은 길로 빠지자 말을 타고 가는 사람들이 계속 지나갔다.
곧이어 사람들이 한 곳으로 몰리더니 전통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이것에 관해 들었었는데 직접 보게 될줄 몰랐다. 부즈카시 (Buzkashi)라는 게임인데, 염소의 사체를 목표 하는 곳에 놓아야 한다.
각 팀끼리 이 염소를 뺏기 위해 열심히 달린다. 많은 사람들이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은 장관이 따로 없었다.
이식쿨 호수로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었는데 내가 선택한 길은 비포장 길이 섞여 있었다. 차들도 별로 안 다니는 곳이었는데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키르기즈스탄은 의외로 게스트하우스가 조그마한 시골마을에도 잘 되어 있었다. 게스트하우스 밖 건물 및 실내엔 키르기즈스탄 게스트하우스 연합 심볼을 볼 수 있다. 키르기즈스탄 게스트하우스 연합에서 이런 시골마을에서도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할수 있게 노하우를 알려주어서 시장경제를 활성화 하는 거 같아 좋아 보였다.
저녁은 돈 주고 따로 사먹어야 했는데 수프와 고기가 얻들어진 스파게티 및 감자였다. 특히 저 테이블 위에 놓여진 과자는 정말 맛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보니 산 맨 위에만 눈이 내려 앉아있었다. 정말 아름답고 신비로운 시골 마을 풍경이었다.
오늘도 차들이 몇 안 다니는 조용한 길에서 계속 자전거를 탔다.
아침엔 나름 파란 하늘도 보였는데 오후로 넘어가자 점점 하늘이 흐려지기 시작했고 비가 한두 방울 내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오늘도 또 비를 맞고 자전거를 타야 할 거 같았다. 차들도 별로 안 다니는 이런 길에 이런 흐린 하늘이 보이면 괜히 긴장이 된다. 그런데 저 앞에 꼬마 아이 세 명이 말을 타고 가는 게 보였다.
난 두려움에 벌벌 떨며 페달을 돌리는데 이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브이자를 보이며 유유히 지나갔다. 일부 나라에서는 어린 아이들을 혼자 놔두면 아동폭력으로 부모를 처벌한다. 그런 나라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면 어떤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내 시선에서도 이 아이들은 정말 뭐랄까 동화속에 나오는 두려움을 모르는 모험을 즐기는 용감한 아이들처럼 보였다.
한바탕 비를 맞은 후 가까스로 산에서 빠져 나와 뒤를 돌아보니 이런 풍경이 보였다. 아이들은 무사히 집에 잘 들어갔을 거고 나는 무사히 이렇게 길 위로 나왔다.
벌써 10월이 다 되었다. 들판의 색은 한폭의 풍경으로 변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갈색, 녹색, 하얀색, 회색이 섞여서 하나의 그림이 되었다.
키르기즈스탄의 장례문화는 굉장히 독특한데 묘비에 저렇게 회색 사진을 붙여 놓고 화려한 작은 집처럼 묘비를 꾸며 놓는 경우가 많다.
잠잘 곳을 찾기 위해 마을로 들어서는데 말을 타고 가던 사람이 지그재그로 휘청휘청 움직였다. 술에 잔뜩 취해보여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자전거 타려고 했다. 마을에 들어오니 술에 취한 사람들이 길 위에서 자고 있었다. 날이 점점 추워져서 위험해 보였다. 구소련 및 추운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알콜중독에 시달리곤 한다. 유튜브에서 탈북자의 인터뷰를 봤는데 아버지가 식량 보급받은 걸 술로 바꿔 먹은 뒤 가정폭력을 일삼았다고 했다. 키르기즈스탄에서 함께 차로 같이 여행했던 네덜란드 커플은 새벽에 술취한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차 일부를 망가트리고 행패를 부려서 황급히 그 곳을 도망갔다고 했다. 알콜중독 문제가 심한 곳은 여행할때 특히나 조심해야 된다.
아주 작은 시골마을이었는데 게스트하우스가 두 세개나 있었다. 이날밤 머문 숙소는 정말 따뜻했다. 히터가 정말 빵빵했던지라 반팔을 입어야 했다. 따뜻한 히터 덕분에 젖은 옷도 말리고 따뜻하게 잘 수 있어서 좋았다.
다음날 아침 자전거를 타는데 발과 손이 너무 시려웠다. 얼릉 겨울장비를 준비하고 싶은데 마땅히 살만한 곳이 없다. 꽝꽝 언 손과 발을 열심히 움직여가며 작은 산 중턱에 올라가서 멀리 풍경을 바라봤다.
타지키스탄과 키르기즈스탄은 정말 내 여행 루트 중 최고로 손꼽고 싶다. 이렇게 멋진 풍경 속에서 달린다는 건 크나큰 행운이다. 만약 자전거 여행자가 여름휴가로 자전거 탈 곳을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난 무조건 이 곳을 말할 것이다.
키르기 아이들은 머리에 저렇게 알록달록한 방울을 달고 다니는데 정말 귀엽다.
오늘도 계곡 하나를 지나 산을 하나 넘어야 하는데 눈 덮인 풍경이 환상적이었다.
드디어 산 정상에 도착.. 정말 배고팠는데 옆에 컨테이너가 보여서 과자라도 살 수 있을까 하고 들어가봤다.
들어가자마자 생선굽는 냄새가 강하게 풍겼고 지글지글 생선 굽는 소리가 가득 울려퍼졌다.
현지 여성 두 분이 열심히 생선을 계속 굽고 있었다. 차들이 서면 쟁반 가득 생선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이 생선은 내 인생에서 최고의 맛이었다. 이렇게 생선이 맛있을 수가 있다니!! 송쿨이라는 호수에서 직접 잡은 생선이라고 했다. 송쿨은 아름다운 큰 호수인지라 여행자들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다. 송쿨을 갈까 말까 하다가 날이 점점 추워져서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어 이식쿨로 바로 향했는데 이렇게나마 송쿨의 생선을 먹게 되어 좋았다.
손으로 생선을 열정적으로 뜯어 먹고 그 손으로 옷을 입고 하다 보니 온몸에 생선 비린내가 났다. 그래도 배를 채웠다는 기쁨에 사진을 이렇게 찍었다.
현지인 전통모자를 쓰는 사람들을 자전거를 타고 가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다.
귀여운 꼬마아이~ 뭔가 한국 꼬마 아이 같은 느낌이..ㅎ
이식쿨 주변 풍경은 정말 멋있어서 이 경로를 선택한 보람이 있었다. 여름이었으면 많은 자전거 여행자들도 보였을 텐데, 10월 초라 다들 중국으로 빠져서 그런가 자전거 여행자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룻밤 현지인 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들의 생활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카라콜 마을에서 1박 2일 산으로 하이킹을 갔다. 생각해보니 여행 중에 하이킹 간 기억기 거의 없다. 산을 좋아하는 내가 하이킹 경험이 왜 이렇게 없나 생각해보면 혼자는 귀찮아서 하이킹을 찾아볼 생각을 안 하고 또한 백팩도 없다 보니 매번 그냥 지나치기만 했던 거 같다. 1박 하던 곳에 온천이 있었는데 물이 너무 뜨거워서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짜잔~ 키르기즈스탄에서 캠핑카로 함께 여행했던 친구들을 다시 만났다. 지난번에 서로 작별인사 하고 떠난 후 다시 볼 수 없을 거 같단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에 다시 만났다. 하지만 이번엔 진짜로 마지막이었다. 네덜란드 커플은 타지키스탄에서 계속 봤었고 시몬도 키르기즈스탄에 넘어오면서 대략 한 달넘게 봐왔는데 진짜 헤어질 시간이 온 거 같다. 이렇게 파미르의 인연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함께 달렸던 자전거 여행자들은 다 이미 중국으로 넘어갔고, 차로 여행하는 친구들은 각자의 길을 향해 갔다.
노란색 나뭇잎에 나에게 이제는 너도 움직일 차례라고, 겨울이 오기 전에 서두르라고 손짓하는 게 보였다.
서도 다른 이들이 함께 만나 그 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여행의 묘미겠지만, 다시 혼자가 된다는 건 참 아쉽다. 내 여행 중 누군가를 한참 후에 다시 만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어쩌면 이것도 다 타고난 내 인연이겠지하며 받아들여야지.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계속 간다.
여행하면서 나름 이것저것 단어를 배워보려고 연습했던 나만의 연습장..
키르기즈스탄의 화폐
키르기즈스탄의 상징을 꼽으라면 이 두가지일 거 같다. 하얀 전통 모자와 전통 키르기즈스탄 모양. 건물, 케익, 유목민의 집 유르트 등등에서 이것들을 찾아 볼 수 있었다.
마을을 빠져나가는 곳엔 이렇게 유루트 문양이 인사를 해주고 있었다.
하룻밤 현지인 집에 텐트를 치게 되었다.
저녁식사에 초대 받아서 현지 여성분께서 음식하는 모습을 지켜 볼 수 있었다. 타지키스탄에선 양고기 말고는 별로 먹을 게 없었는데 키르기즈스탄에 들어오면서 음식선택이 엄청 다양했었다. 하지만 여성분이 만드는 음식은 처음 보는 거였다.
반죽을 한뒤 접어서 칼로 잘랐다.
이후 야채 위에 차곡차곡 반죽을 쌓았다.
든든한 한끼의 저녁 식사가 완성 되었다. 사실 현지 여성분께서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분위기가 굉장히 산만했다. 남성분께서 술에 취해서 막 계속 나한테 말을 걸고 손을 공중으로 막 휘젓는데, 애들이 아버지를 치고 밀면서 진정시키는 분위기였다. 아버지가 아이들을 패는 게 아니라, 애들이 아버지를 막 밀고 치며 진정시키는 게 참 혼돈의 풍경이었다. 한번은 그분의 손이 내 허리쪽에 닿았는데, 술에 취해서 막 나한테 말걸려다고 그랬던 거 같은데 아이들은 그 이후에 나를 보호하려고 더욱더 아버지를 밀치고 팔에 팔짱을 꼈다. 심각한 분위기가 아니고 웃으면서 그래서 위험한 상황을 전혀 느끼질 못했다. 아이들이 나의 보디가드가 된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애들이 아버지한테 맞는 풍경이 아니라 애들이 아버지를 밀치고 팔짱끼고 하는 거 보면 내가 뭐 걱정하거나 할 건 없어보였다.
다음날 아침 애들은 말끔히 옷을 차려입고 학교갈 준비를 했다.
가족사진을 찍어주고 아버지는 양을 치러, 아이들은 학교로, 나는 국경으로 향하려고 준비했다.
아이들이 나에게 노트, 펜, 작은 악세서리를 선물해줬다. 괜찮다고 거절했지만 아이들이 나에게 꼭 선물을 주고 싶어 하는 거 같아서 감사하다고 받았다.
(사실 이 노트는 2년이 넘은 지금도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고맙다 얘들아~~ 고마워~~)
오늘도 들판에서 아이 혼자 말을 타고 가는 게 보였다. 우리가 살던 세계와는 또 다른 세계이다. 우리의 기준에 맞춰 저 아이를 판단한다는 건 위험할지 모른다. 서로가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다를 뿐.
오늘도 산 하나를 넘어야 했는데 이건 경사가 너무 심했다. 무엇보다 자갈이 많아서 미끄러워서 너무 힘들었다. 한 발자국 움직이고 쉬고 한발자국 움직이고 쉬고, 끝이 없을 것만 같은 것도 그렇게 천천히 궁시렁궁시렁 가다 보면 정상에 도착한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아래 뫼이는 산들이 보통 이런 것들이었다. 하지만 가끔은 하늘아래 뫼여도 못올라가는 산들도 있는데, 다행이 내가 지나치는 모든 산들은 하늘아래 뫼였고 나는 모든 산 정상에서 느끼는 보람을 먹고 계속 움직였다.
산 정상에 올라오니 텔레토비에서 보일법한 동산이 나를 반겨주었다.
산 정상에서 내려오니 텐트 치고 자면 괜찮을 법한 곳이 나왔지만 길 옆에서 바로 보이는 곳이라 바로 국경으로 가기로 했다.
오늘도 오후가 되니 날씨가 이렇게 변해버렸다.
앞이 하나도 안 보였다.
사람들이 묻곤 한다.
‘시골길을 좋아해요 아니면 큰 도로를 좋아해요?’
‘당연히 시골길이 좋죠. 하지만 혼자 달릴 때 차가 거의 안 지나가면 무서워요..특히나 날씨가 흐리거나 어두워질 때..’
안갯길을 뚫고 드디어 국경선에 왔다. 이 국경선은 겨울이 오기 전에 문을 닫는다. 그래서 여기 오기 전에 걱정을 많이 했다. 이식쿨 마을에서 이 국경이 열었는지 관광안내소에서 물어보기도 했는데, 다행이 아직 열고 있었다. 매해마다 국경선을 닫는 일정이 다른데 올해는 좀 늦게까지 열고 있는 거 같았다.
드디어 파미르 여행의 종점에 온 거 같다. 사실 마지막 달린 구간은 파미르 도로는 아니었지만 그냥 모든 도로를 파미르라고 묶어 부르고 싶다. 내 여행경로 중에 파미르는 정말 최고의 기억으로 남는다.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잊지 못할 풍경을 봤고, 와일드 캠핑도 혼자서 여러번 하면서 용감해져야 했고, 강에서 물을 떠먹는 경험도 처음으로 해봤다. 가장 큰 소중한 기억을 뽑으라면 멋진 풍경속의 친구들이라고 표현해야 할 거 같다.
누군가가 나에게 정말 기억에 남는 경로를 물어 본다면.. 파미르라고 답할 것이고.. 누군가가 자전거 여행할 곳을 추천해달라면 파미르라 말할 것이며.. 죽기전에 이곳만큼은 꼭 자전거 탈 곳을 알려 달라고 하면 파미르라 답할 것이다.
파미르.. 안녕..! 이렇게 안전하게 지나가게 해준 모든 것에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카자흐스탄으로 국경을 넘는다.
이동 경로
키르기즈스탄에서 지낸 총 일수 = 41 일
키르기즈스탄에서 자전거로 이동한 총 거리 = 1,210.6 km
키르기즈스탄에서 총지출 = $ 695
($1=68 솜)
드디어 오랜만의 이야기, 파미르 마지막이네요 벌써 수년전 이야기지만 저도 파미르 이야기 들으니 가슴이 막 뜁니다
오랜만에 여행기가 올라 왔네요.
저는 태국에서 수도승이 된줄 알았습니다
아름다운 풍광 감사합니다
매일 매일 한번씩
우주별 여행자의 글을 찾았는데
드디어
올라왔군요…
별일없이 지구별 여행 잘하고 계신거죠…
자전거 세계여행….. 와일드 캠핑…이라니…..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옵니다….. 멋진 인생… 파이팅!~
오래 기다린 뒤에 글이라서 더 반갑네요. 용기는 안나지만.. 한번 가보고 싶단 생각이 드는 멋진 풍경이네요.
여행지로 선정하고 있던 곳을 다녀 오셨군요. 무사히 귀환한 것에 축하를~*!^
대단한 여정기, 참고하여 준비를 해보려 합니다
사는 게 여행이니 차근히 하나씩 챙겨 봅니다
여행 준비 잘 하셔서 기억에 남는 여행으로 남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