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남아공에서부터 이집트까지 자전거로 1년간 혼자서 아프리카 종단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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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대륙 자전거 여행이 끝날 때쯤 고민을 했었다. 여행을 계속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그만하고 집에 돌아갈 것인가. 캐나다에서 워홀 1년, 그리고 아메리카에서의 자전거 여행 1년 4개월, 다 합쳐서 보면 집에 안 들어간 지 2년 반이 다 되어갔다. 집에 안 간 지 너무 오래되어서 고민을 해봤는데, 아직은 세상을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여자 혼자서 아프리카 자전거 여행이 가능한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아프리카 여행한 사람들을 인터넷에서 검색한 후 이메일을 보내봤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라틴아메리카에서도 살아남았으니 아프리카도 조심히만 다니면 괜찮을 거라고 했다.
고민 끝에 결국은 아프리카 비행기 표를 구매하기로 했다. 브라질에서 남아공까지 항공료가 무려 140만 원이나 했다. 금전적으로 초반부터 압박감이 심했다. 아프리카에서 돈이 떨어질 때까지 달려보기로 했다.
경로는 동부 쪽으로 달리기로 했다. 이유는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여길 지나쳤으며, 비자도 동부가 훨씬 쉽고, 더 안전하며, 날씨는 덜 습하는 등 모든 면에서 동부가 훨씬 나았다.
그렇게 두려움과 설렘을 가득 안고 브라질 상파울루 공항에 갔는데, 직원이 표를 줄 수 없다고 했다. 남아공에 입국하기 위해선 국제 황열병 예방접종 증명서가 필요하다며, 콜롬비아에서 얻은 황열병 증명서는 안 된다고 했다. 비행기 표를 이대로 날릴 수 없어서 매니저에게 간곡히 부탁을 해봤다. 매니저가 국제 황열병 증명서가 없으면 남아공에서 입국하자마자 강제 추방을 당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래도 남아공에 가고 싶냐고 묻기에, 결국은 모험을 택하기로 했다. “제 생각엔 운 좋게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남아공 가는 비행기 표를 주세요.”
10시간 넘는 장거리 비행이었다. 12월 31일 날 비행기를 탔기에 새해를 비행기 안에서 보내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비행기 안에서 최대한 긍정적인 생각만 하려고 했다. 막상 남아공 공항에 도착해서 보니 별문제 없이 바로 입국 도장을 받을 수 있었다. 아프리카 시작부터 긴장감이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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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의 케이프타운에 가면 꼭 해야 할 일이 펭귄을 보는 거다! 북극 펭귄에 비하면 굉장히 작고 귀엽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라 펭귄을 보려면 기차를 타야 했는데, 기차는 1등석과 2등석으로 나눠었다.

남아공에는 신기하게도 코카서인을(=백인) 쉽게 볼 수 있다. 15세기에 유럽사람이 처음 오기 시작했으며 17세기에는 네덜란드 농민들이 와서 정착했다. 19세기 초기 영국이 오고 20세기 영국이 네덜란드 상대로 한 전쟁에서 승리함에 따라 남아공이 영국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다. 1948년 영국은 이상한 정책을 만든다. 바로 아프리칸분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아프리칸과 코카서인의 학교가 나눠지게 된다. 이후 아프리카인들은 완전히 사회에서 격리되게 된다. 1994년 넬슨만델라가 현지인으로서는 ‘첫’ 대통령으로 된 후에 이 정책은 폐지 되었지만, 1등석과 2등석이 아프리칸분리정책의 잔여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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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프타운을 떠나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타려고 하는데 도시 풍경이 놀랍다. 도시들이 너무 잘 발전되어 있다. 왜 텔레비전에서는 한 번도 이런 아프리카 풍경을 보여주지 않은 거지? 아니면 내가 미쳐 못 봤던 걸까? 마치 북미권에 있는 거 같은 느낌이 든다. 위 사진은 전체적인 케이프타운 풍경이다. 남아공에서 깜짝 놀란 것 한 가지는 운전석이 오른쪽이란 것이다. 영국 식민지 영향 때문이다. 큰길로 나가려다가 무의식적으로 반대편으로 달리는 바람에 초반에 고생했다. 집들이 북미처럼 좋아서 차마 그들의 마당에 텐트 쳐도 되냐고 물어보기가 쑥스러웠다. 그래서 경찰서에 몇 번 텐트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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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 도착한 지 일주일 만에 빈민촌을 보게 되었다. 도시와는 한 참 거리가 멀었다. 빈민촌은 위험하다며 들어가지 말라는 조언을 들어서 멀리서만 사진을 찍었다. 17세기부터 내려온 네덜란드 농부 때문인지 몰라도 주변에 농장들이 자주 보였다. 나중에 유명한 한 포도밭을 지났었는데, 최근에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임금 문제로 파업을 했다고 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대략 하루 임금이 80 Rand (10$)인데, 120 Rand (15$)로 인상해 달라고 파업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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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남아공에서 자전거를 타려고 하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전 세계 범죄율에서 남아공은 9위를 차지한다. 1위는 중미에 있는 온두라스이다. 넬슨 만들라 이후 정치권이 타락하기 시작하면서 일부 현지 아프리카인들이 코카서인 아프리칸을 상대로 살인 및 각종 범죄를 일으키기 시작했고 이러한 범죄는 인종을 가리지 않고 퍼져나갔다. 현재 남아공의 정치판은 현지 아프리카인들이 잡고 있는데 범죄에 관련해서 통제 불능이다. 아프리칸 분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뒤늦은 복수를 위해서 정치권에선 범죄에 대해서 방임하고 있다고 분석하는 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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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코카서인 및 중상층들은 각종 범죄에 노출되어 두려움에 떨며 살고 있다. 위 사진은 안방으로 들어가는 길인데 감옥처럼 철창이 씌여져있다. 잠잘 땐 안전을 위해 철창문을 닫는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전을 위해 총을 항상 집에 소지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과 달리 분노가 극에 치달아 사람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총기 사건은 별로 없는 거 같다.

중년층은 어찌 됐든 간에 남아공에 계속 머물고 싶어 하는데, 젊은층은 일자리 부족과 저임금, 높은 범죄율 때문에 뉴질랜드나 호주, 혹은 영국으로 가고 싶어 했다. 참고로 많은 남아공 젊은이들이 한국에 영어 선생님을 하러 넘어온다. 남아공 월급이 대략 100만원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아공에서 내가 만난 한 사람은 딸이 법대를 다니고 있는데 비용이 많이 들어서 한국에 3년간 영어 선생님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다고 했다. 비행기 표가 비싸서 3년 동안 딸이 한 번도 남아공에 방문하지 못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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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구간은 특별히 더 위험한지 범죄 조심 표지판들이 서 있다. 이런 지역을 지나가는 건 처음인 거 같다. 맨 마지막 사진을 보면 차를 멈추지 말라고 적혀있다. 자전거를 멈추지 말고 계속 달려야 하나? 근데 나는 차와는 달리 빨리 달린다고 해서 더 안전한 건 아니니까 그냥 평소에 하던 대로 달려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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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주부터는 코카서인 아프리칸들로부터 초대를 받아서 항상 집 안에서 잤다. 여러 나라를 여행해봤지만 이렇게 친절한 사람들은 처음 본다. 텐트 쳐도 되냐고 물어보면 집 안에서 잘 수 있게 방을 내주고 맛있는 저녁 식사에도 초대해준다. 심지어는 다음 동네에 알고 있는 사람에게 전화해서 잠잘 곳을 나 대신 찾아준다. 자전거 타다 보면 가끔 차들이 서서 물을 주거나 질문을 하곤 했다. 돈을 주는 사람도 있었으며 심지어 골프클럽 사장이 자기네 골프클럽에 초대해줘서 엄청나게 고급스러운 호텔에서 잠을 잔 적도 있다. 그런데 100% 확률로 차를 세우고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코카서인이었다. 운전자들이 코카서인만 있는 게 아닌데, 왜 코카서인만 차를 세웠는지는 잘 모르겠다.

코카서인 아프리칸의 특징을 보자면 뿌리가 네덜란드 농부다 보니까 도시에서 떨어져서 농장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 독실한 크리스챤이라서 신앙심이 아주 강하다. 이들이 이렇게 친절한 이유는 손님 접대 문화와 독실한 신앙심이 어우러져서그런 게 아닌가 싶다. 한 번은 이들에게 왜 이렇게 친절하냐고 묻자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은 식사시간이 되면 항상 빈 접시를 식탁 위에다 뒀어. 혹시 모를 손님이 올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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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농장에 초대받아서 사자를 구경한 적도 있다. 남아공에는 사자 사냥이 있다. 주로 러시아 갑부들이 넘어온다고 한다. 한 마리 사냥 가격은 12,000$~36,000$ (천 사백만 원에서 4천만 원)이다. 암놈의 경우는 2년 된 사자가, 수놈의 경우는 5년 된 사자가 주된 사냥 대상이다.
사냥 과정은 이렇다. 우선 사자에게 마취 주사를 넣는다. 이후 사자를 우리에 싣고서는 사냥터에 몰고 간다. 사자가 마취에 풀리기 전에 숲에다 풀어 놓는다. 이후 사냥꾼은 차를 타지 않고, 두 발로 걸어 들어가서 사자를 사냥한다. 물론 안전 요원이 따라붙어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다. 가끔 사냥꾼이 크게 다치기도 한다. 사냥꾼들은 사자 사냥 이후 가죽을 벗겨 내서 기념으로 보관한다. 고기는 먹지 않는다.
남아공은 사자 사냥뿐만이 아니라 다른 동물 사냥들도 할 수 있다. 동물마다 가격이 다 다르다. 작은 동물은 20~30만 원 기린 같은 경우는 220만 원을 내면 사냥할 수 있다. 사냥이라고 하면 뭔가 나빠 보이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북미, 북유럽에서도 정부에 돈을 내고 라이센스를 획득하면 일정 수의 동물을 사냥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개인적인 내 생각으로 내 생명이 소중하면 다른 동물의 생명도 소중하다고 생각하기에 사냥에 대해서는 약간 이해하기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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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리에 초대받아서 아프리카에 온 기분을 만끽하기도 했다. 이때 당시엔 몰랐는데 코뿔소 구경이 그렇게 귀한 거라고 한다. 일부 아시아 갑부들이 코뿔소의 뿔을 불법으로 잘라가서 코뿔소가 위험에 처해 있다. 코뿔소의 뿔을 갈아 먹으면 건강해진다는 미신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손톱을 갈아 먹는 것과 똑같은 효과라고 하니 밀렵꾼을 고용한 그들에게 코뿔소 뿔 대신 손톱을 갈아 먹으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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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초대받아서 아이들에게 여행 이야기를 들려준 적도 있다. 40대 이상의 원주민 아프리칸과 코카서인 아프리칸은 서로를 굉장히 증오하는 경우가 많다. 사진에서처럼 함께 어우러져서 수업을 받다 보면 몇십 년 뒤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개방적으로 변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사진 가운데 보면 아이가 신발을 신지 않고 있다. 이것이 흔히 티비가 보여주는 신발 없이 다니는 아프리칸 아이에 대한 이미지다. 그런데 그 아이 옆에 코카서인 아이를 보면 이 아이도 똑같이 신발을 신지 않고 있다. 이 동네 아이들은 대부분 다 맨발이었다. 햇볕이 뜨거워서 돌들이 엄청 뜨거웠는데 아기 때부터 맨발로 다니다 보니까 발바닥에 굳은살이 배겨서 맨발로 다니는 걸 좋아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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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비가 보여주는 아프리칸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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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가 실제로 본 이미지. 위 두 아이는 가난한 빈민층이 아니다. 단지 맨발을 좋아했고 부모님이 만들어준 장난감을 갖고 노는 걸 좋아했다. 자극적이어야 시청률이 올라가니까 티비는 최하층 빈민층의 아프리카 사진만 보여주려 하는 거 같다. 내가 여행했던 아프리카는 북쪽으로 갈수록 빈민층이 많긴 했지만, 티비가 보여주는 것만큼 최악이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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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안에는 조그마한 나라 두 개가 있다. 그중 한 개가 스와질란드다. 언뜻 보면 유럽의 Switzerland와 발음이 비슷해 보이는데 사실은 GDP가 굉장히 낮고 Aids가 만연하며 독재자가 있는 전형적인 아프리카 나라이다.

아프리카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는 교육비가 비싸다는 것, 그리고 교통이 좋지 않아서 아이들이 학교에 가려면 이렇게 고속도로 위를 걷거나 산속을 걸어야 한다는 것, 심지어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새벽 일찍 나가서 오후 늦게 집에 돌아온다는 것이다. 매일 같이 학교에 가기 위해 아이들은 5km ~ 10km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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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다가 너무 더워서 기진맥진하고 있을 때 한 코카서인 아프리칸이 괜찮냐고 묻더니 자기네 집에 와서 쉬라고 했다. 그녀 덕분에 사파리 구경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주간의 봉사활동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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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간 봉사 활동한 곳은 호프 하우스라 불리는 곳인데 HIV/AIDS 환자 및 신체가 불편한 환자가 한 달에 7만 원을 내고 요양을 할 수 있는 집이다. 대략 20채의 하우스가 잇다. 우리 나라 돈으로 7만 원은 이들에게 있어서 50~100만 원에 가까운 돈이라 절대 쉽지가 않다. 요양원에 지내는 사람의 대부분이 HIV/AIDS 환자인데, 시설은 나름 깔끔하고 좋은 편이다. 원룸형식에 화장실이 딸려있다. 나는 주로 간호사들의 일을 도와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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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들은 대부분 자기 스스로 음식을 해먹는데, 수, 목, 토, 일요일 정오에는 지역 주민 여성, 레스토랑, 교회에서 음식을 해온다. 그러면 간호사가 종을 울려 환자들에게 알려주고, 환자들이 도시락을 들고 오면 거기에 음식을 나눠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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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이 회진을 하듯 매일 아침 간호사들과 하우스를 둘러 보며 환자들의 상태를 점검했다.  그러다 보니 모든 환자들 상태를 알게 되었는데 그중 두 명을 소개 해보려 한다.

첫 번째 사진의 왼쪽에 있는 여성은 19살이다. 6살 때부터 자폐증과 간질증세가 있었으나 집이 어려워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상태가 점점 악화되고 있다고 한다. 2달 전 호프하우스에 처음 왔을 때는 몸이 매우 나빠서 제대로 걷지를 못했는데, 지금은 보조 기구의 도움을 얻어 스스로 걸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집으로 다시 돌아 가게 되면 누구도 보살펴 줄 사람이 없어 상태가 다시 나빠질 것이라는 것이다.

밑에 있는 여성은 2012년 11월에 HIV 양성 판정을 받은 후 급격히 몸이 나빠졌다고 한다. HIV 바이러스에 의해 면역 체계가 약해져서 위에 문제가 생겼고, 체중이 급격히 줄었다고 한다. 현재는 다리의 힘이 약해서 혼자 걷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휠체어사용을 하면 본인이 아픈 환자로 전락하는 거 같아서 휠체어를 사용해서 밖에 나가는 게 꺼려진다고 한다.

대부분 환자는 1~3개월 후에 집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일부는 몸이 좋아져서 가고, 일부는 몸의 회복 속도가 변화가 없어 돌아간다. 일부는 건강상태가 너무 나빠서 사망하기도 한다고 한다.

직접 HIV/ADIS에 관련되어 정리한 지식글

http://www.universewithme.com/blog/2016/01/18/hiv%EC%99%80-aids%EC%9D%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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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하우스 책임자, 가톨릭 임원장 윌리엄과 아프리카의 미래에 관해서 토론을 한 적이 있는데, 윌리엄이 지역 회의가 있다며 거기에 가서 직접 체험해보라고 했다.

이 건물에 대략 30명의 고아들이 모이며, 5명 정도 되는 지역주민이 보살펴 준다고 한다. 사무실 직원이 앞에서 고아원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점을 설명한다. 이후에는 각 지역의 자원봉사자들이 고아원 관리에 있어 애로사항 및 전체적인 의견을 낸다. 이 지역주민들은 특별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닌 자원봉사자들이다. 가톨릭에서는 이들에게 3달에 한 번 7만 원 정도 되는 돈을 지급한다고 한다. 해외 혹은 다른 곳에서 온 자원봉사자가 아닌 현지 주민이 직접 자신의 지역을 보살피는 게 인상적이었다.

아프리카에서 몇 번 봉사활동 하며 깨달은 것 중 하나가 있다. 바다 건너 멀리 떨어져 살아가는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건 비행기 타고 가서 일손을 돕는 게 아닌, 아프리카에 갈 비행기 표의 돈을 이들에게 부쳐주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부쳐지는 돈이 지역주민’봉사자’를 지역주민’일꾼’으로 설 수 있게 도움을 주지 않을까 싶다.

(아프리카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높은 실업률이다. 아프리카에 필요한 건 기부가 아닌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투자가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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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질란드에서 남아공으로 다시 돌아갔다가 보츠와나로 넘어갔다. 다음 나라 보츠와나는 사람들이 잘 모른다. 왜냐하면, 큰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어서 뉴스에 나온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보츠와나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중 한 곳이라며 현지인들이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살았다. 한 현지인이 보츠와나는 굉장히 안전하다며 자기네 집 앞마당에 텐트 치라고 하더니 멀쩡한 집 놔두고 내 텐트 옆에서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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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츠와나 국경을 넘은 날부터 몸이 한두 군데 간지럽기 시작하더니 이삼일 지나니까 몸 전체가 간지러워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보츠와나 국경을 넘기 전날 남아공 현지인 집에 잔적이 있다. 근데 정말 이상한 동네였다. 하룻밤 텐트 쳐도 되냐고 묻자 현지인들이 내 여권을 보여달라고 하더니 30km 떨어진 경찰서에 가라고 했다. 혹은 어떤 이는 추장네 집에 가라고 했다. 추장이라고 해서 특별한 옷을 입거나 하는 건 없었다.  추장(마을장) 허락을 받았는데 마치 날 범죄자 취급하며 취조하고 내 여권을 계속 자기네들끼리 돌려 봤다. 텐트 치고 자고 싶었는데 계속 안에서 자라고 해서 그들의 침대에서 잤는데 결국은 이렇게 온몸에 베드버그를 물려버렸다. 그날 저녁 그들은 결국 경찰에 전화했던 거 같다. 남아공에서 오히려 원주민들이 보수적며 적대적이란 걸 보게 되었다. (남아공에 워낙 다양한 인종이 있어서 모든 원주민이 이렇다고는 할 수 없다.) 근데 이렇게 온 몸에 벌레까지 물리다니. 대략 200~300방 물린 거 같다.

밖에 나가면 현지인들이 도대체 피부에 무슨 일이 일어난거냐며 이해를 하지 못했다. 베드버그는 낯선이만 무는걸까? 나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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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츠와나의 대도시에서 한 달 넘게 한 한인분네 집에 머물게 되었다. 머문 일정이 길어서 봉사활동 거리를 찾다가 일주일 정도 다른 현지인을 통해 시골 마을 유치원에서 봉사활동을 할 기회를 얻었다. 내가 하는 일은 남아공에서 온 선생님의 보조선생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7살~9살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다 보니까 안타까운 게 숫자를 쓸 줄 모르고, 네모 세모 등도 그릴 줄 모르며, 똑같은 숫자에 줄 그을 줄도 몰랐다. 조슬린 말에 의하면 시골 애들이라 교육에 너무 뒤처졌다고 한다. 비록 아이들의 학습능력이 너무 떨어져서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아이들과 선생님을 도와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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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고판은 뭘까? 한국에는 아마 이런 ‘특정 대형 광고판’이 없을 것이다. 예전에 스와질란드 여행할 그 나라에는 이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름 아닌 콘돔 광고판이다. 엄청나게 큰 콘돔 광고판이 길에 있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버스터미널에는 엄청나게 크게 쫙 펼쳐져 있었다. 전 세계 에이즈 성인 감염률을 봤을 때 스와질란드는 50%로 1위, 보츠와나는 40%로 2위이다. 하지만 스와질란드에는 저런 큰 광고판이 없다. 보츠와나 정부가 나름 열심히 노력중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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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나라 짐바브웨로 넘어가는 건 꽤나 두려웠다. 짐바브웨에는 나이가 현재 90살이 되었음에도 35년 넘게 정권을 놓지 않는 독재자 대통령 무가베가 있기 때문이다. 짐바브웨는 실업률 90%로 전 세계 실업률 1위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데, 과연 자전거 여행 무사히 할 수 있을까 초반부터 걱정이 되었다. 마을에서 텐트 치려고 허락을 받으려는데 주민들 위험하다고 해서 결국 짐바브웨에서는 항상 경찰서에 텐트를 쳤다. 위 사진은 짐바브웨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를 지나쳤을 때 찍은 사진인데 나름 큰 건물들도 있어서 나빠 보이진 않았다.
짐바브웨는 물가가 엄청나게 상승했던 적이 있었다. 빵 하나 사 먹으려고 수레에 돈을 가득 실기까지 했었다.(인터넷으로 유명했던 그 사진의 출처가 바로 이 나라이다) 현재 짐바브웨는 미국 달러를 쓰고 있다. 근데 막상 와보니 예상외로 물가가 그리 비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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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만 발전되어 있고 외곽엔 전통 가옥들이 많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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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 tested early for TB & HIV. Get treated early)
TB(Tuberculosis)는 결핵을 의미한다.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는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이다. HIV에 걸리면 면역 시스템이 약화 되면서 결핵(TB)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다. (HIV에 노출된 후 각종 질병에 걸렸을 경우를 에이즈라 한다.)
많은 슈퍼 건물 옆에 저 문구가 있었다. ‘결핵과 HIV 검사를 최대한 빨리해서, 즉각적인 치료를 받으세요.’ 짐바브붸 또한 다른 아프리칸 나라와 마찬가지로 HIV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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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바브웨 실업률이 전 세계 1위라고 했기에, 정말 많이 긴장했었다. 근데 실제로 자전거를 타면서 보니 의외로 사람들은 참 순박하고 온순한 거 같다. 다들 가볍게 손 인사를 해 준다. 생각해보면 아프리카 나라 중에서 가장 얌전(?)한 편에 속했던 사람이 짐바브웨 사람 같다. 여자 혼자 여행하다 보니까 현지인들이 너무 짓궂게 소리 지르면서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짐바브웨에서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다른 나라에 비해 적었다. 위 사진은 자전거를 세우고 잠시 과일을 사다가 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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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바브웨 한 경찰 캠프에서 지낼 때 지역방송을 보게 되었다. 나이지리아에는 악령을 물리치는 큰 시설이 있는데 그걸 방송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티비에는 악령을 쫓아내는 사람이 여자의 머리를 쥐어짜듯 내리치는 모습이 나왔다. 나에게 머물 곳을 제공해준 여성 경찰은 남편이 다른 여자를 너무 좋아한다면서 아무래도 악령에 쓰인거 같다며 남편이 꼭 좀 나이지리아에 방문했으면 하고 소원했다.

보츠와나에서 만났던 코카서인 아프리칸 여성이 젊었을 때 방탕한 생활을 하다 나이지리아 악령을 물리치는 큰 시설에 갔다가 치료 받고 왔다고 한 게 생각났다. 전혀 듣지 못한 것들을 보게 되니 신기하면서도 요상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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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여행하면서 배가 자주 아팠기에 아프리카 넘어와서는 특별히 더 조심했는데, 너무 배가 고팠기에 길거리 현지 음식을 처음으로 먹어 보기로 했다.(1.5$) 근데 아주머니가 포크를 주지 않는다. 대신 손을 씻을 수 있게 물을 제공해 준다. 워낙 장이 많이 아팠기 때문에 손으로 먹는 건 최대한 자제하려고 숟가락을 달라고 해서 먹었다. 허겁지겁 내가 너무 잘 먹으니 채소와 닭고기 국물을 더 챙겨 줬다. 하얀 걸 남아공에서 밀리 팝이라고 부르는 데 여기서는 살사라고 부르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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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폭포로 미국-캐나다 사이에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 브라질-아르헨티나 사이에 있는 이과수 폭포, 짐바브웨-잠비아 사이에 있는 빅토리아 폭포가 있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캐나다 워홀 당시에 봤으며 이과수 폭포는 자전거 여행 중 봤다. 드디어 세계 3대 마지막 폭포인 빅토리아 폭포를 구경할 차례가 왔다.

강수량이 많을 때라 폭포 물의 양이 많았다. 폭포 중심에서 끝으로 갈수록 물보라가 너무 심하게 일어서 폭포가 잘 안 보였다. 강수량이 많을 때 오는 게 좋은 게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 생각엔 적당한 방문 시기는 강수량이 줄어드는 7월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폭포 소리가 시원해서 좋았다. 무엇보다 폭포를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그 웅장함에 넋을 잃게 된다.
작년에 이과수 폭포 구경할 때 폭포에서 튀는 물에 홀딱 젖었었다. 그래서 이번엔 우산과 우비를 준비했는데, 우산이 정말 유용하게 쓰였다. 폭포 구경을 하는 건 마치 비오는 거리를 걷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당연 우산은 필수품! 우비만 준비하면 사진 찍을 때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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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과수 폭포와 빅토리아 폭포가 좋은 점은 이렇게 폭포 옆 숲 속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과수 폭포 보다 빅토리아 폭포 숲이 훨씬 더 좋은 거 같다. 마치 정글 속을 걷는 기분이 든다. 개인적으로 종합적으로 따져봤을 때 이과수 폭포가 제일 인상적이었던 거 같다. 순위를 매기자면 이과수 폭포 >> 빅토리아 폭포 >> 나이아가라 폭포
숙소로 돌아 가는 길에 코끼리 한 마리를 보았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봐서 자세히 안 보였다. 카메라 줌으로도 잘 안 보이는 거리였다. 이 근처엔 버펄로, 코끼리와 야생동물이 자주 출몰한다고 한다. 특히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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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를 구경 후 다음 나라 잠비아에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잠비아는 다른 이웃 국가에 비해 인구수가 높은 곳이다. 대략 천만 명 넘게 살고 있어 도시 사이에 작은 마을들이 종종 나왔다.
잠비아에서는 숯을 내다 파는 현지인이 많이 보였다. 이웃 나라 말라위에서는 이것 때문에 나무들이 심각하게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근데 현지인들은 먹고살게 없다 보니 어쩔 수가 없다. 저렇게 큰 한 봉다리가 50콰차(10$) 밖에 안 한다고 한다. 대형마트에서 파는 숯은 저거에 비하면 엄청나게 비싸다고 한다. 내 자전거의 무게를 그들의 무게와 비교할 수 있을까?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이지 크나큰 삶의 무게를 견뎌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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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비아 수도는 사람들도 복잡했다. 카메라 렌즈가 정말 이상했다. 가운데가 뿌옇게 나오고 초점도 흐린 거 같아서 중고렌즈를 사려고 길을 헤매다가 길거리 중고상을 발견했다. 정말 내가 딱 사고 싶은 렌즈가 길거리에 있었다. 가격도 내가 정말 원하던 가격이었다. 그 물건은 반드시 내게 필요했다. 그런데 그 물건은 훔친 물건임이 분명한 거 같아 망설여졌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사는 게 내 목표인지라,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발길을 돌렸다. 남을 속일 수는 있어도 나를 속일 수는 없다. 저 물건을 산다면 분명 양심상 죄책감이 올 것이다. 남에게 떳떳하기보다는 나 자신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고 싶다.
수리점이라도 찾으려고 했는데, 한 현지인이 반대편에 카메라 상점이 있다며 가보라고 알려줬다. 그런데 그 카메라 상점에 들어가니 한인 사장님이 보여서 신기하고 반가웠다. 사장님 말에 따르면 카메라 렌즈에 아무래도 곰팡이가 끼인 거 같다고 했다. 한인사장님과 이후 저녁을 먹으며 이것저것 얘기하다가 봉사활동 얘기를 하자, 주변에 한국 선교사님이 운영하는 병원을 소개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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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외곽에 있는 병원이라 시설이 열악할 줄 알았는데, 내 예상과는 달리 직원들도 충분히 많았고, 굉장히 깨끗하게 잘 지어진 병원이었다.
병원은 3년 전에 지어졌다고 한다. 선교사님 부부는 20년 전에 아프리카에 넘어왔었는데, 잠비아에 이동 병원 봉사활동을 하며 지내다가 몇 년 전부터 지역 병원을 운영하게 되었다고 한다. 보츠와나 수도에 큰 후원자가 있는데, 그분 덕분에 이렇게 병원을 운영할 수 있다고 했다.
남자 선교사님인 허선교사님은 주로 바깥일을 보시고, 한국에서 간호사 일을 하셨던 여자 선교사님인 전선교사님은 사무실의 모든 일을 총괄 맡았다. (사진 맨 밑 왼쪽에서 세번째가 전선교사님.)
병원에서 내가 도울 수 있는 일들은 ‘이것저것’이다. 종교인은 아니지만 뭐 아무렴 어떠랴 함께 할수있음에 감사할뿐이다. 접수처 일도 도와주고, 금요일마다 예방접종 하러 오는 소아과도 돕고, 근데 주로 전선교사님과 함께 사무실에 있는 일이 많았다. 전선교사님은 너무나도 자상하시고 따뜻한 분이시다. 나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더 눈여겨 보시며, 별것 아닌 일에도 칭찬을 해주셔서 함께 지내는 내내 매우 감사했다. 3주 안 되는 짧은 시간이라 큰 도움이 되지 못해서 살짝 죄송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래도 함께 할 수 있음에 참으로 감사했다.
병원에 있으면서 흥미로웠던 건 금요일마다 피임주사를 맞으려고 여성들이 줄 서서 기다렸다는 거다. 아프리카라도 대도시에 사는 여성들은 가족계획을 확실히 세우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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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하룻밤 재워준 여성은 4명의 자식이 있다. 그녀는 고등학교 1학년까지 다녔는데, 더는 학비를 낼 수가 없어서 학업을 중단했다고 한다. 나름 집안의 고학력자라 그런지 영어를 잘해서 서로 의사소통 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슬프게도 그녀는 2년 전에 남편과 사별했다고 한다. 다음날 그녀가 고속도로로 가는 길까지 안내해주겠다고 한다. 얼마 안 되는 돈과 여러 가지 조그마한 선물을 부담되지 않게 감사의 표시로 줬다. 고속도로로 가는 길에 그녀에게 물어봤다. “삶이 어떤가요? 행복한가요? 힘든가요?”. “남편이 죽었을 땐 정말 힘들었어요. 시간이 흐르니 조금은 적응이 되네요. 그래도 너무 힘들어요. 아이를 네 명이나 책임져야 하거든요.”

가난한 나라들이 행복지수 상위권이라는 게 과연 그게 사실일까? 의구심이 든다. 어쩌면 그들의 사전엔 “행복”이란 단어조차 없을지 모른다. 그래서 설문 조사원이 와서 ‘행복하십니까?’ 물었을 때, 현지인들은 행복이란 단어 뜻이 뭔지 몰라서 행복이 뭐지 하며 허허 웃어 보였더니, 그 조사원이 ‘이들은 무척 행복함’이라 기록해놓고선 선진국들은 그것을 마치 삶의 정식적인 승리인 것마냥 공유하는 게 아닌가 싶다.
남편과 가족 일원들이 HIV/AIDS로 죽고, 아이들은 먹을 게 없어 길거리를 헤매고, 정부는 부정부패로 가득 차서 국민을 돌보지 않고, 그런 정부 밑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에는 돈이 턱없이 부족해 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며, 지배계층은 노예 부리듯이 이들을 부려 먹는데, 이들의 웃음을 단순한 행복의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는 걸까?

참고로 가난한 부탄이 행복지수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로 알려졌다. 근데 실상 이 행복지수를 만들어낸 사람이 바로 부탄의 국왕이다. 부탄은 철저하게 언론이 통제된 독재국가이다. 언론이 통제된 곳에서 행복지수, GNH란(Gross National Happiness) 개념을 1972년에 만들어 내고, 자기네 나라가 가장 행복한 나라라고 하는데,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왜 일부 사람들은 가난한 국가들을 동경하며, 가난한 곳에서 여행해야 그게 진정한 값어치 있는 여행이라 하며, 가난한 사람이 웃으면 그게 진정한 행복이라고 생각하는지, 나는 그걸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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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는 대가족 형태라 한 개의 집을 발견하게 되면 그 주변에 서너 가구를 더 볼 수 있다. 사진은 하룻밤 텐트 치게 허락해준 가족들이다. 시골 사람들은 나무로 요리하거나 물을 데운다. 저렇게 큰 통나무를 사용하는데, 저걸 한 번에 다 사용하는 게 아니라 저렇게 조금씩 밀어 넣으면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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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바로 잠비아 전통 목욕하는 곳인데, 짚으로 주변이 감싸져 있다. 미로처럼 두 겹 되어 있는데, 문이 없다. 다 내가 목욕하는 줄 아니까 아무도 안 들어 오겠지? 바닥은 나무와 포댓자루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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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비아에서 자전거를 탈 시기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고 있었다. 낮에는 덮지만, 밤에는 추워서 차가운 물로 샤워할 때마다 크나큰 도전 정신이 필요했다. 심지어는 간밤에 너무 추워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는 날도 종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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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 부엌이다. 시골길을 계속 다니다 보니 나름 이제 잠비아 아프리칸 집 구조가 파악된다. 집 구조는 크게 다섯 개로 나뉘는 거 같다. 잠자는 주거 건물, 요리할 수 있는 사진 속 부엌 건물, 샤워할 수 있는 짚으로 둘러싸인 샤워 건물, 볼일을 볼 수 있는 샤워 하는 공간과 비슷한 구조의 화장실 건물, 마지막으로 옥수수를 저장해 놓는 저장창고 건물.
그리고 주변엔 친척들 몇 가구가 함께 산다.
사진 속 여인은 이 집주인의 부인인데 쉬마를 요리하는 중이다. 나보다 한 살 많은 데 벌써 애가 셋이라고 한다. 와우. 왠지 아프리카 시골 사람들은 한국의 50~60년대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나 싶다. 쉬마가 묽어지면 저렇게 주걱으로 저어주며 옥수숫가루를 조금씩 더 넣어준다. 냄비 손잡이 나무가 참 독창적인 거 같다!
맨손으로 먹지만 식사 전에 뜨거운 물로 손을 씻는다. (비누로 깨끗이 씻지는 않는다) 큰 접시에 쉬마를 가득 담고 한 곳엔 콩을 가득 담는다. 다 자기네들 농장에서 얻은 곡물이라고 한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손을 이용해서 먹는 것과 관련해서 당시 읽은 책 내용이 흥미로워 여기에 남겨 보려 한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음식을 먹을 때 수저를 사용하지 않고 맨손으로 먹는데, 이들은 우선 음식을 손으로 떼어서 손으로 만져가며 손의 촉감으로 먼저 음식을 먹는다.’
『아프리카, 아프리카 – 한상기』

실제로 현지인들은 쉬마를 손으로 만지작만지작 해서 공으로 만든 다음에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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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 안 들어오니 밤에는 이렇게 불을 지펴놓고 밥도 먹고 얘기를 한다. 8시 전후로 다들 취침하러 간다. 9시는 모두 다 잠드는 시간. 빛이 없으면 일찍 잠들게 된다. 새벽 4~5시 정도가 되면 깬다. 텐트에서 생활하다 보니 갑자기 한국 드라마는 밤 10시에 왜 그리 늦게 시작하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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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조그마한 슈퍼. 이 정도면 나름 괜찮은 측에 속하는 슈퍼라 말하고 싶다. 진짜 열악한 슈퍼는 안에 제대로 된 물건 자체가 없다. 배고파서 과자를 사려고 했는데 특별한 현지인(?) 로렌(Lauren)을 만났다. 사실 그녀는 현지인이 아니라 현지인과 어울려 사는 미국 봉사자이다. 한국에는 국제 협력단체 KOICA가 있다. 일본엔 JAICA가 있고, 미국엔 Peace Corps이 있다. 로렌은 Peace Corps의 봉사단원으로 이 시골 마을에 1년 넘게 거주하고 있다. 로렌이 자기네 집에서 하루 머물다 가라며 초대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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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과 내가 공통적으로 느낀 점은 아프리카에 오기 전에는 아프리카는 우리랑 똑같은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와보니 아프리카는 굉장히 다르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해하기 어려운 문화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남편이 죽으면 부인은 남편 가족 중 한 명과 재혼을 해야 한다, 남자는 결혼할 때 부인 부모님에게 소를 바치므로 남편은 부인을 자기의 사유재산으로 생각한다, 아프리카에서는 남편이 여러 부인을 두는 게 일상이다, 혹은 남편이 바람 피우는 게 굉장히 일상적이다, 참고로 남아공 대통령은 영부인이 5명이고, 스와질란드 대통령은 영부인이 13명이다, 에이즈에 걸리면 어린 여아와 관계를 맺으면 에이즈로부터 완쾌 된다고 믿는 미신, 이웃이 내 가족을 살해 했어도 나는 그 이웃과 다음날 화해하고 다시 친구가 될 수 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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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아프리카에는 21세기 현대판 노예제도가 진행되고 있다. 잠비아의 많은 사람이 주 6일을 일하며 한 달에 6만 원~10만 원을 받는다. 하지만 일부 사장들은 한 달에 백만 원에서 몇백만 원 그 이상을 번다.
생각을 해보자. 잠비아에서는 한 끼 식사비가 대략 4천 원이다. 월급은 6만 원. 한 끼 식사를 월급의 비율로 따져 보면 = 0.06 % 조금 고급 레스토랑에 가면 한 끼 식사비가 만원이다. = 0.16%
한국 고졸, 전문대 졸 초봉 월급이 한 달에 140만 원이라 치자. 자 그럼 잠비아 비율로 한국 한 끼 식사비를 계산해보자 1,400,000*0.06=84,000원!, 1,400,000*0.16=22, 4000원.
자 그럼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자.
김밥 천국에 들어가서 제육볶음을 먹고 나왔더니, 아주머니가 한 끼 식사비가 84,000원이라고 한다!!! 오랜만에 가족끼리 피자 한 판을 시켜 먹으려 한다. 피자 한 판 값이 22만4천 원이라면 어떻겠는가?
임금이 낮으면, 물가라도 싸야 하지 않겠는가?
실질적으로 잠비아에는(아프리카 대부분에는) 일자리가 많지 않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그 조그마한 월급을 받고도 조용히 잠자코 지내며 일하는 것이다.

로렌과 내가 나눈 대화는 이렇다.
과연 저 6만 원을 주는 사장들은 나쁜 사장들인가? 우리의 대답은 “글쎄다? 모르겠다?.”이다. 우리가 만난 많은 사장은 너무나도 친절하고 자상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인가?
아프리카 땅덩어리 자체가 문제인 것인가? 실제로 내가 만난 일부 유럽인, 아프리카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아프리카는 살기 좋은 곳이야. 돈을 많이 안 벌어도 정원사, 가정부 등을 부려 먹을 수 있거든‘

사람들 본인 스스로는 욕심을 자제할 수가 없다. 정부에서 나서서 임금을 조정해줘야 하는데 정부가 부패하니 결국은 극심한 빈부 격차가 일어나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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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비아의 다음 도시 탄자니아에 입국하는데 국경이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말 거는 환전상도 많아져서 사기당하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탄자니아는 잠비아보다 조금 잘 사는 거 같단 생각이 든다. 우선 집 형태도 조금 발전되어 있고, 차량도 조금 많고, 오토바이도 간간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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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옆에 조그마한 길 뒤로 집이 보였다. 안전해 보여서 들어가 허락받고 텐트를 쳤다. 도착하자마자 바람 빠진 타이어를 수리하는 데 내가 한국사람이라고 하자 집 주인의 아들 중 한 명이 나에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한다.
한국 이름이 ‘역산’이라고 한다. ‘부모님은 안녕한지요.’ ‘맥주를 마시다’, ‘나는 학교에 간다.’ 등의 기본적인 문장을 구사할 줄 아는 역산. 한국어를 공부 안 한 지 1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잘했다. 저 종이가 꽉 찰 때까지 밤늦게까지 역산에게 한국말을 가르쳐 줬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에 사는 역산이 어떻게 대학교를 끝마쳤을까 궁금해서 물어보니 정부에 대출받아서 학교를 졸업했다고 한다. 성적이 우수하면 정부에서 대출을 해준다고 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학교 졸업하려면 빚쟁이가 돼야 하는구나. 현재는 고등학교에서 영어 선생님으로 재직하고 있다고 했다. 월급이 굉장히 낮을 텐데, 학비를 언제 다 갚을 수 있을까?
역산은 핸드폰을 갖고 있는데,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데 핸드폰을 어떻게 쓸 수 있나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1km 떨어진 곳에서 400실링(240원) 주고 이틀에 한 번씩 충전해서 쓰고 있다고 했다. 랜턴은 매주 돈 주고 건전지를 갈아서 쓰고 있다고 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이래저래 고생이 많은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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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비아에서는 기본 밥값이 삼사천 원 했는데, 탄자니아에서는 천오백 원밖에 안 했다. 잠비아는 임금은 싼데 물가가 비쌌다. 탄자니아에서는 물가가 싸서 자주 식당에서 밥을 사 먹게 되었다. 콜라 600실링 (350원), 밥 2,000실링 (1,250원) 총 1,600원 밖에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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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일부 구간이 공사 중이어서 차들이 길게 늘어 서 있었다. 이 틈새를 놓치랴 많은 장사꾼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사진 오른쪽에 쟁반을 머리에 올려 놓은 여인이 포도 장수였는데, 버스 승객에게 무언가를 팔아 보려는 상인들이다. 아프리카에 일자리가 별로 없다 보니 다들 어떻게서든 생존하려고 이렇게 길 위에 나와있다.

폴 서루가 아프리카 여행 후 펴낸 ‘아프리카 방랑'(Dark Star Safari-Paul Theroux)이란 책을 아프리카 여행 당시 읽었는데 꽤나 많은 공감을 했다. 자신을 제외한 다른 여행자를 관광객이라고 비하하는 것엔 동의할 수 없는데, 그외의 내용에서 아프리카의 현실을 제대로 꿰뚫었던지라 마치 여행 중 동행자를 만난 기분이 들었다. 폴 서루는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NGO수가 엄청나게 늘어났음에도 아프리카는 왜 전혀 변하지 않는지 회의적으로 바라봤다.

 

부정,부패,독재 등을 고쳐 나가면 어쩌면 아프리카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아프리카가 결코 가난한 땅은 아니다. 많은 자원들이 있다. 이미 외국 투자자들이 아프리카에서 많은 돈을 벌었다. 웃긴점은 갑부 투자자들은 현지인에게 한 달에 10~20만원의 월급을 준다. 그리고선 NGO를 세우며 말한다. “가난한 아프리칸을 도웁시다.” 그러면 주변에선 이 투자자를 착한 사람이라며 우러러 본다. 사실 제대로 된 월급을 주는 게 가장 현실적인 도움이란 걸 이 사람들은 모르는 걸까?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걸까?

최근들어 아프리카가 부유해질 수 있는 한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돈을 기부하는 대신에(NGO를 세우는 대신에) 회사를 세우는 것이다. 아프리카에 자본과 기술을 들고 가서 회사를 세우거나 현지 회사에 투자를 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현지인들만 고용해야 하며 투자자는 현지인이 가져가는 만큼의 월급만 챙겨야 하는 점이다.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함께 공유를 하는 것이다.
내 생각에 티비 미디어는 아프리카를 도와야 한다는 슬로건을 끊임없이 계속 하고 있지 않나 싶다. 아프리카를 돕는 건 천사같은 행동이라는 표현이 무의식중에 티비로부터 우리 뇌에 전달되는 거 같단 생각이 든다. 근데 사실 이건 진짜 천사가 아닐 수도 있다. 왜냐면 자선사업은 자칫 이들을 의존적으로 만들며 패배주의적인 사고 방식을 심어주기 때문에 미래 발전에 저해를 줄 수 있다.
현지인에게 투자자가 돈을 번 만큼 월급을 주며 사업을 키워나가는 방식이야 말로 진짜 천사 같은 행동이 아닐까? 왜냐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공유 방식일 수 있으며 아프리카를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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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사진에 있는 타이어가 원래 앞바퀴에 있었는데 뒷바퀴로 옮겼다. 다 닳은 타이어는 앞바퀴로 옮겼다. 아프리카 끝까지 잘 버텨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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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지대를 벗어나니 바오밥 나무가 나를 반기기 시작했다. 바오밥 나무의 웅장함에 옆에 지나가는 차가 장난감처럼 작아 보였다. 짐바브웨에서 바오밥 나무 동네를 본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바오밥 나무를 보기는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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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야생동물을 보려면 돈을 내고 사파리로 가야 한다. 그런데 탄자니아의 한 고속도로가 사파리를 가로 지른다. 대략 50km 정도의 길이인데, 200마리의 사자가 넘는 사파리를 가로질러 가야 한다니…?? 관광센터 및 현지에 사는 사람에게 물어봤는데, 사자는 고속도로에 나오지 않으니 무사할 거라고 한다.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는 게 아닌가 싶어 긴장되었다. 막상 달리다 보니 고속도로 양옆으로 야생동물을 볼 수 있어 신이 났었다. 혹멧돼지, 영양무리, 코끼리, 임팔라, 버펄로, 얼룩말 등을 볼 수 있었다.
자전거를 계속 타고 가다 갑자기 거대한 뭔가가 움직이는 걸 봤다. 으악~ 기린~ 안 돼~ 과연 운전자와 기린의 운명은? 트럭이 기다려줘서 다행히도 기린은 무사히 길을 건넜다. 바로 코앞에서 기린을 보는 운전자의 느낌은 어떨까? 이 구간에서는 모든 차가 속도를 줄여서 가야 한다. 야생동물을 치게 되면 엄청나게 큰 벌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구간에 야생동물이 있어서 그런지 체체파리가 끊임없이 날 괴롭혔다. 체체파리에 물리면 벌에 물린 것만큼 엄청나게 따갑다. 사파리를 벗어나니 신기하게도 체체파리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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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리를 지나 해 질 무렵 학교에 허락을 받고 텐트를 쳤다. 영어 선생님과 마사이족 관련 얘기를 나눴는데, 학교 뒤편에 마사이족이 산다면서 나에게 보여주겠다고 했다. 영어 선생님 덕분에 마사이족과 얘기도 나누고 가장 연장자인 90대 할머니와도 얘기할 수 있었다.

다음날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고기를 파는 마사이족이 계속 보였다. 혹시나 싶어 다가가서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돈을 달라고 한다. 그래서 돈 주고 그들의 사진을 찍었는데, 무게 잡으려고 그러는 건가 인상을 잔뜩 쓴다.
케냐까지 마사이족이 이어진다고 하던데, 앞으로 계속 보겠지?
사자가 득실대는 사파리를 자전거로 지나치고, 마사이족까지 만나고 예상 밖에 일들이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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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에게 널리 알려진 잔지바르라는 섬에 페리를 타고 가서 일주일 정도 머물렀다. 잔지바르의 매력은 미로처럼 엉킨 골목들이다. 잔지바르에서 뜻밖의 인연을 만났다. 며칠 전에 만났던 이탈리안 친구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들과 함께 다니니 훨씬 재밌고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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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지바르 섬은 16세~17세기에 포르투갈 제국에 점령당했다가 18세기에 오만에게 점령당했다. 19세기에는 영국에 점령당했는데 18세기 술탄 지배 시절 대부분이 무슬림으로 바뀌어서 95%이상의 무슬림이다. 잔지바르의 집들은 다양한 문으로 되어 있는데 오만의 지배 시절 전해져 온 문화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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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서 해변이 아름답다는 능귀해수욕장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즐겼다. 해변가에서 현지인들이 직접 배를 만드는 걸 볼 수 있고 또한 그물을 제작하는 것도 볼 수 있어서 그들의 문화를 엿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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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 당시 아침부터 해질녘까지 금식하는 라마단 기간이라서 여행하는데 꽤 고생을 했다. 길거리 식당은 문을 닫았고 길거리에서 물 먹는 것도 조심스러워서 숙소에 돌아가서 물을 먹든가 음식을 먹든가 해야 했다. 흥미로운 건 해 질 녘 기도가 시작되면 길거리엔 음식을 사 먹는 사람들로 분주해진다. 혹자의 말에 의하면 라마단 기간에 가장 많은 음식이 팔린다고 한다. 새벽녘까지 가족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며 계속 먹는다. 덕분에 밤늦게 골목골목 돌아다니며 이들의 생활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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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지바르에서 다르에스살람으로 돌아오는 페리는 최악이었다. 어쩜 그렇게 심하게 배가 흔들리던지, 난파당하는 줄 알았다. 이 구간에서 몇 년 전 몇 번 배가 난파당해서 관광객들이 사망했다는 소리를 들었었는데 다행히 무사히 육지에 도착했다. 한 시골 바닷가에서 사람들이 파는 생선을 보니 굉장히 싱싱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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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만든 자전거를 타는 아이가 신기해 보여서 사진을 요청해봤다. 참 기발한 자전거가 아닌가 싶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그러고 보면 참 손재주가 좋은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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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가든 항상 주목을 받아서 조금 힘들었다.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기분이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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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사파리로 가장 유명한 곳은 탄자니아의 세렝게티와 케냐의 마사이라마아닌가 싶다. 사실 이 두곳은 국경을 사이로 이어졌는데, 나는 탄자니아 쪽에서 구경하기로 했다. 근데 막상 갖다와보니 이건 실수였다. 탄자니아 세렝게티는 너무 넓고 가는 길이 멀어서 차 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무엇보다 여행사가 최악이었다. 그래도 40만원이 넘는 비싼 돈을 2박 3일간 지불하는 거니 최대한 즐기려 노력했다. 사파리로 가는 길에 마사이족이 간혹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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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흔히 말하는 Big5가 코뿔소, 사자, 코끼리, 버펄로, 표범이다. 관광객이 보기 힘들어서 빅5라 부르는 게 아니라, 직접 걸으면서 사냥하기 힘든 동물을 모아서 Big5라고 한다.

만약 Big5가 사파리에 나타나면 드라이버들끼리 무전기로 통신을 한다. 그러면 이렇게 구름 때같이 사파리 차들이 몰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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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리로 이동하는데 대부분을 시간을 보내서 구경시간이 짧아 아쉬웠지만, 그래도 나름 여러 동물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밤에는 사파리 안 캠핑 사이트에서 텐트 치고 잤는데, 동물들은 사람들을 피하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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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엔 세계 거대 분화구 응고롱고로에 갔는데 누떼가 (white-bearded Wildebeest) 아침에 이동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동물의 왕국에서만 보던 걸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게 매우 신기했다. 이곳에는 많은 동물이 함께 살아가서 둘째 날에도 여러 동물을 구경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 킬리만자로 (해발 5,895m)에 올라가고 싶었는데 4박 5일 일정이 무려 150만 원이 넘었다. 그것도 가장 싼 투어가 150만 원이었다. 중미에서 겪은 고산 등반 실패의 서러움을 씻고 싶었는데 도전하기에는 너무 비쌌다. 여러 현지 회사 및 다른 회사에 후원자를 요청해봤는데 아무런 답장을 받질 못했다. 결국, 눈물을 흘리며 포기했다. 중미에서 실패한 고산 등반의 서러움은 언제 극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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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나라 케냐에서 한 시골 마을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한 사유지에 집이 몇 채 있었는데 그 이유는 남편이 부인을 여러명 갖고 있기 때문에 그 부인 수만큼 집을 지어야 한다고 했다. 소똥으로 지은 집에 사는 현지인인데 자세히 보면 핸드폰을 갖고 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에 사는 대부분의 아프리칸들이 핸드폰을 소유하고 있다. 티비에서 보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가끔 이들은 핸드폰 없이 다니는 나를 비문명인으로 취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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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의 수도 나이로비는 정말 복잡한 도시였다. 불행하게도 나이로비에 도착한 첫날 차 사고를 당했다. 힘든 오르막길에서 잠시 쉬고 있었는데 봉고 버스가 내 자전거 옆을 치는 바람에 앞으로 굴러떨어지고 가방에 달렸던 짐들도 날아갔다. 경찰을 부르고, 경찰서에 가서 실랑이를 버린 끝에 가방 망가진 값 50달러를 얻어냈다. 하지만 운전자는 끝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자전거 여행 3년 넘게 하며 교통사고만 이번이 세 번째인데 단 한 번도 운전자가 사과한 적을 본 적이 없다. 대부분 화를 내거나 도망가기 일쑤였다. 운전자가 사과만 했었어도 기분이 이렇게까지 상하지 않았을 텐데.

그래도 나쁜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캐나다에서 살 때 알고 지내던 친구가 국제 학교에서 선생님을 하고 있다고 해서 그 친구네 집에서 일주일 가까이 쉬며 재충전을 할 수 있었다. 북수단 비자와 에티오피아 비자도 신청했다. 북수단 비자를 신청하려면 한국 대사관에서 레터를 받아야 하는데, 대사관 직원의 불친절함에 기분이 상했다.

나이로비를 떠나는 날 나이로비에서 가장 좋은 서양식의 쇼핑몰에 테러가 발생해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 핸드폰이 없던 나로서는 전혀 이런 소식을 몰랐다. 며칠 뒤에 한 현지인에게 들어서 알게 되었는데, 다행히 케네디언 친구는 당시에 백화점에 가지 않아 무사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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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의 북쪽지역으로 이동 중 갑자기 페달이 안 돌아갔다. 자세히 보니 변속기가 고장 났다. 이렇게 중요한 부품이 망가지기는 처음이었다. 어쩔 수 없이 히치하이킹을 해서 다음 도시로 가서 고쳤다.
케냐의 북쪽지역은 내전 때문에 굉장히 위험하다. 그래서 케냐의 이웃나라 에티오피아 국경비자도 안 내주는데, 올 해부터 국경 비자가 허락 되었다. 케냐의 북쪽지역에서 자전거 타는 게 너무 위험해보여서 모험보다는 내 목숨이 더 소중하기에 아프리카에서 처음으로 버스를 타고 장거리를 이동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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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정말이지 내 생에 최악이었다. 장담하는데 지구상 가장 최악의 버스였다. 버스는 밤 8시경 출발해서 다음날 새벽 7시에 도착했는데, 포장상태가 엄청 울퉁불퉁하다. 운전자는 그런 거 전혀 고려 안 하고 미친 듯이 달리는데, 농담 아니고 몸이 엄청 날라다녔다. 엉덩이 부서지는 줄 알았다. 엉덩이가 의자에서 대략 50 cm 정도 공중부양 했다가 바로 0.1초만에 착지 했다가, 다시 공중부양했다가 잘못하면 목뼈도 날아갈 거 같았다.
나이로비에 있을 때 노예무역 관련 영화를 봤는데 진짜 영화 속 한 장면이 연출되는 상황이었다. 셀프 노예 무역 거래 체험이랄까나? 어둠 속에 몸이 사방팔방으로 계속 튕겨 나가는데 한편에선 사람들이 토를 계속 했다. 최악 중 가장 최악의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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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이나 이집트에 넘어가야 낙타를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에티오피아에 넘어오자마자 낙타가 보였다. 몸집이 커서 움직이는 모습이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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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는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더 가난해 보였다. 사실 에티오피아는 자전거 여행자에겐 지옥으로 알려진 곳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테러 위협도 적고 안전한 편에 속하는데 문제는 길거리 사람들이 소리지르고 아이들은 돌을 던지는 등 자전거 여행자를 힘들게 하는 걸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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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자전거를 타던 도중 또 체인이 안 돌아갔다. 며칠 전 케냐에서 변속기에 넣은 새 부품이 그새 망가졌다. 자전거 타는 게 불가능해서 히치하이킹을 하게 되었다. 현지인 차를 얻어타고 나름 큰도시에 도착했는데 자전거 부품을 찾을 수가 없었다. 배가 고팠던지라 우선 점심을 시켜 먹었는데, 에티오피안 음식이 나왔다. 인젤라에 여러 음식을 올려 놓은 Byaynte인데 세계 여행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음식을 꼽으라면 에티오피안 음식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에티오피아는 그리스에서 넘어온 동방교회를 믿는데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고기를 안 먹는 날이라 이렇게 여러 가지를 섞어 먹는다고 한다.

다른 대도시에 가서 부품을 찾으려고 했는데 수리가 쉽지가 않았다. 한 수리공이 자전거를 고칠 수 있다고 걱정 말라고 그러더니, 두 시간이 넘고 밤이 돼가도록 못 고쳤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다른 수리공에 맡겨 뒷변속기를 교체 했다. 근데 싸구려 중국 제품이라 그런가 제대로 작동을 안 한다. 우선은 수도까지만 좀 버텨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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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여행 중 에티오피아가 가장 힘들게 사는 것처럼 보였다. 어린아이들이 나무를 옮기고, 심지어 3살도 안 돼 보이는 꼬마 아이가 장마 빗 속에서 물통을 옮기는 것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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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에서 본격적인 힘든 시간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나만 보면 소리 지르고, 쫓아오고 둘러싸고, 가끔 돌도 던지고, 게다가 무엇보다 모든 사람이 나를 보고 소리친다. “You”. 탄자니아, 케냐에서는 무중구라고(외국인) 소리치더니, 에티오피아 오니 유라고 소리친다.
생각해 보면 이렇다. 대략 매일 같이 몇천 명의 사람이 나에게 소리 지르고 일부는 쫓아오고 일부는 괴롭힌다고 생각하면 굉장히 버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짐 쏠린 걸 정리하기 위해 전봇대에 자전거 세웠는데 몇 분도 안 돼서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날 둘러싼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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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자주 와서 고생을 했다. 우기인 거 같다. 자전거 앞 바퀴는 닳고 닳아 파란색을 보였다. 뒷 변속기 교체한지 3일만에 고장나서 히치하이킹 해서 수도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에티오피아에서 이 부품을 찾을 수 있을지는 나도 잘 모르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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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천만 명이 사는 에티오피아에 제대로 된 자전거가게가 전혀 없었다. 수도에 와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에티오피아 수도에서 굉장히 특별한 인연을 만났다. 웜 샤워 (자전거 호스팅 사이트)를 통해서 스위스 가족을 알 게 되었다. 원래는 삼사일만 이들 집에서 머물려고 했는데, 호스트가 자전거 부품 배송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호스트가 대사관에서 일하기 때문에 세관을 통과하지 않고 물건을 받을 수 있어서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이 주간 지내면서 정이 많이 들었다. 헤어질 때는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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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를 떠나는 날 마음이 매우 무거웠다. 가족 같던 인연을 떠나려니 마음이 아렸다. 수도를 빠져나오는데 저 멀리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프리카 대도시들은 사진처럼 참 복잡하다.

에티오피아에서 3주 정도밖에 머물 수 없었다. 원래 한 달 비자를 신청했는데 비자 신청하자마자 시간이 흐르는지라 국경에 도착했을 땐 3주란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2주를 자전거 고치는 데 소비했던지라 남은 시간은 5일 정도밖에 안 남았고 국경까지는 900km였다. 결국, 히치하이킹을 병행하기로 했다. 남쪽과는 달리 북쪽은 인구수가 조금 적어서 그런가 자전거 타기가 조금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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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자들에게 가장 힘든 나라를 뽑으라 하면 아마 에티오피아를 말할 것이다. 그만큼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곳인데, 나를 힘들게 한 나라이지만 난 에티오피아가 정말 좋았다. 그들의 음식 문화, 커피 문화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음식은 매번 시킬 때마다 형태를 달리해서 나왔다. 호기심 많은 나에게 있어서 에티오피아 음식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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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가 좋았던 이유 중 또 다른 하나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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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에 여러 부족이 사는 건 아프리카 특징 중 하나인 거 같다. 인사법도 다르고 옷 입는 형태도 다르다. 이런 거 구경하는 것도 참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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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이 너무 멋있어서 자전거를 더 타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아침에 주로 자전거를 타고 점심을 먹은 뒤 오후에 히치하이킹을 했다. Gondar라는 도시를 지나칠 때 옛 궁전들을 보기도 했다.

이후 서둘러서 이동해 야했다. 비자 마지막 날 히치하이킹이 너무 안 되었다. 운 좋게 국경 닫히기 10분 전에 도착했다. 좀만 늦었다면 수도로 돌아가서 벌금 낼 뻔했다.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환전하다가 좀 손해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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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은 두 나라로 쪼개져서 남수단, 수단으로 불린다. 남수단은 내전이 너무 심각해져서 가면 안 되는 곳이었다. 수단에 오면서부터 날이 엄청나게 더워졌다. 마치 헤어드라이어 3대를 켜 놓고 달리는 기분이랄까 나? 너무 덥다 보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기까지 했다. 현지인 집에 들어가서 하룻밤 텐트 쳐도 되냐고 물어보니 그물침대를 내주었다. 그 위에 텐트를 치고 하루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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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으로 넘어오니 확실히 풍경이 달라졌다. 낙타가 자주 보이고 사막 모래도 계속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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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선 차 한 대에 어떻게서든 여러 사람이 탔다. 수단의 대부분 교통 표지판은 아랍어로 되어 있었다. 수단은 언어 장벽이 가장 높은 나라로 기억에 남는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오래전에 영어 교육을 했었는데, 미국과의 관계가 나빠진 이후 정부가 영어 교육을 금지했기 때문에 내 또래 사람들은 영어로 숫자 같은 것 등을 말할 줄 몰랐다. 지금은 다시 영어 교육을 시작했다.

미국이 수단의 국제 금융을 제재했기 때문에 수단에선 외국인들이 돈을 뽑을 수 있는 ATM이 없다. 그래서 사전에 미리 미국 달러를 들고 와야 했다. 수단에서 실수로 Paypal과 캐나다 인터넷뱅킹 로그인하려다가 계정을 정지당하기까지 했다. (다행히 다음 나라 가서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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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은 사람들이 친절하기로 소문난 곳이다. 마당에 텐트 쳐도 되냐고 하면 항상 그물 침대를 주고 차를 대접해줬다.

길에서 만나는 현지인과 개인적으로 만나는 현지인은 너무 달랐다. 자전거 타고 가다 만난 수단 현지 남자들은 다른 아프리카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나에게 추파를 던지거나 소리 지르며 장난을 쳐서 나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줬다. 반대로 개인적으로 그들의 집에서 수단인을 만날 땐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해줘서 진정 아프리카의 문화를 느끼며 존중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의 좋은 점만 보면 참 좋을 텐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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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던 중 이상한 게 느껴졌다. 바퀴를 빼서 보니 바퀴 중심에 있는 허브가 덜렁거렸다. 현지인이 고칠 줄 안 데서 맡겨놨더니 몇 시간을 붙잡고만 있었다. 날이 더웠던지라 나는 비 오듯이 땀을 흘렸다. 황당하게도 허브 나사를 가운데라고 옮겨놓고는 다 고쳤다고 했다. 다음날 자전거 타고 가던 도중 허브는 두 동강으로 났다. 아프리카에서는 제대로 된 수리공을 만나기가 어렵다.

운 좋게도 에티오피아에서 만났던 다른 스위스 대사관 직원이 수단 수도에 일하고 있었던 터라, 그 직원 덕분에 유럽에서 물건 주문을 쉽게 할 수 있었다. 에티오피아에 있을 당시 한국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었는데 거절을 당했었다. 다행이 다른 나라 대사관 직원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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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고쳤으니 본격적으로 사막 횡단을 시작했다. 수도에서부터 국경 근처까지는 황량한 사막이 지속 되었다. 매일 같이 역풍이 불어서 힘들었다. 사막 중간중간에 있는 상점 및 도시에 대한 정보가 담긴 걸 인터넷에서 얻었기에 사막 한 중간에서 홀로 잠 잘 일은 없었다. 조그마한 상점들이 매 20~30km마다 있었는데 단 한 번도 여성이 일하는 걸 못 봤다. 요리 하는 사람도, 음식을 나르는 사람도 다 남자였다. 그런 곳에 매번 텐트를 치고 잤는데 다행히도 아무 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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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골 마을 주변에는 날파리가 너무 많아서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없어서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먹었다. 에티오피아 음식은 정말 아름답고 다양했는데, 수단 음식은 매번 똑같았다. 콩 ..콩..콩.. 수단 여자들은 키가 참 컸는데, 콩을 먹어서 그렇게 큰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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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사진은 시골 마을 옆에서 발견한 모스크인데, 매표소도 안 보이고 사람도 없다. 서성거리는데 한 할아버지가 나오시더니 안내해줬다. 모스크가 1779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외관보다 실내가 더 웅장했다. 사진으로는, 글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신성함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할아버지께 주변에 있는 Sai Island에 간다고 했더니 이웃의 뱃사공이 있다면서 소개해주시더니 함께 배를 타고 가서는 하룻밤 텐트 칠 곳을 안내해주시기도 했다. 헤어질 때 할아버지께서 손을 잡아 주시면서 다음에 또 보자고 하는데 눈물이 울컥했다. 함께 있었던 시간은 고작해야 오후 반나절인데, 왜 이렇게 그 순간에 정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할아버지는 내가 만난 아프리카 사람 중에 가장 온화하고 인자한 분이셨다.

저녁엔 무서움을 물리치고 유적지를 배경으로 별 궤적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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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까지 90km를 두고 아무것도 없는 허허 벌판이었다. 선택의 순간이 왔다. 히치하이킹을 할 것이냐 자전거 여행 이래 처음으로 와일드 캠핑을 할 것이냐? 차로 이동하는 게 싫었던 지라 결국은 생애 첫 와일드 캠핑을 아프리카에서 하기로 결심했다. 고속도로 옆으로 빠지는데 사막 모래라 자전거를 미는 게 힘들었다.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언덕에 텐트를 쳤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서 사람이 올 거라곤 믿지 않았지만, 혹여나 차가 이곳으로 올까 봐 무서워서 간밤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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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수단에서 이집트로 가는 육로 국경은 막혀서 국경을 넘으려면 페리를 타고 나일 강을 따라 올라가야 했다. 페리가 태울 수 있는 인원은 훨씬 넘은 거 같고 사람들은 갑판 위, 구명보트 등 어디에든 자리를 깔고 앉았기 때문에 마치 페리는 피난민들로 가득 찬 배 같았다.
12시간이 넘는 거리였는데 페리에서 다른 여행자를 만나서 심심할 겨를은 없었다. 대기실은 남녀가 나뉘긴 했는데 너무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우연히 지하에 빈 곳을 발견해서 페리에서 만난 아냐라는 친구와 침낭 깔고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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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또한 아프리카 횡단 중이었는데 이집트에 도착하자마자 아냐와 함께 환호성을 질렀다. 아프리카의 마지막 나라 이집트까지 무사히 왔다는 사실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아냐와 작별인사를 하고 자전거에 올랐는데 기쁨도 잠시 안타깝게도 이집트에 도착하자마자 성희롱을 당했다. 항구에서 도시로 가는 길에 오토바이 타고 가던 현지인이 내 엉덩이를 만졌다. 난 페달링 중이었고, 그 현지인은 오토바이 타고 이동 중이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길거리 현지인들의 괴롭힘 때문에 에티오피아 못지않게 이집트에서도 자전거 타기 힘들다고는 들었는데, 설마 도착하자마자 자전거 탄 지 30분도 안 돼서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했다.
도시로 가는 길에 아이들은 나한테 막 돌 던지고, 남자 현지인들은 끊임없이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근데 신기한 게 이집트 아이들은 에티오피아, 수단 애들 뺨치는 돌 던지는 실력을 보여줬다.

Egypt and the Sexual Harassment of Women
http://www.huffingtonpost.com/engy-abdelkader/99-percent-of-egyptian-women-girls-have-been-sexually-harassed_b_3373366.html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이집트 여자 99%가 성희롱에 시달린다고 한다. 탄자니아에서 만난 자전거 여행자 커플은 이집트 여행이 꽤 힘들었다고 했다. 남자 친구가 잠시 사진 찍다가 뒤처져 있으면 어김없이 현지인이 여자 친구에게 다가가서 수작을 부리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한시도 여자 친구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나는 어찌 혼자 자전거를 탈지 막막하기만 했다.

페리에서 만난 아냐가 지낼 곳이 없게 되자, 나에게 잠잘 곳을 제공해준 호스트가 아냐까지 초대해줬다. 그 친구는 항구에서 미니 봉고 버스 타고 가던 중에 이상한 일을 겪었다. 차 창밖에서 아냐에아냐에게 구걸하던 사람이, 아냐가 못 본채 하자 칼을 들고선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죽이겠다고 창밖에서 겁을 줬다. 아냐와 나는 호스트 집에 재회해서는 서로 신세 한탄을 하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느냐 혼이 났다.

미국인 부부의 친구가 보트를 갖고 있다면서 나일 강 주변에서 보트를 타자고 했다. 전날의 충격은 서서히 나아지고 있었다. 나일 강 위에서 여유롭게 보트 타며 점심 먹고 차 마시니, 아 이런 게 여행이란 거 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한 건 여행이 아니라 생존과의 싸움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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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를 여행할 당시 정치 상황이 굉장히 복잡했다. 미국 및 여러 나라에서는 이집트를 방문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실제로 당시에 정치 상황은 복잡할지 모르겠지만 관광하기에는 이전과 별다를 바 없었다.

유명한 아부심벨을 보기 위해 투어 회사를 찾았으나, 다들 손님이 없다고 차량을 대절 못하겠다고 했다. 인터넷에서 검색했을 땐 차들이 줄지어서 아부심벨로 새벽에 출발하는 거 같던데, 정치 상황이 안정적이지 못하니 관광객의 발길이 확 줄었나 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찾아가 봤는데 신기한 현상을 목격했다. 관광객은 나 혼자밖에 없었다. 인터넷에서 아부심벨 사진을 보면 관광객들로 가득 찬 것을 볼 수 있는데, 난 이 멋진 관광지를 혼자서 독차지했다.

성희롱을 당한 뒤 이집트에서 자전거 타는 게 두려워졌다. 그래서 같이 자전거 탈 동행자를 이집트 페이스북 여러 그룹에 올려봤는데 뜻밖에 GBI EGYPT 자전거 팀에서 연락이 왔다. 아스완에서 룩소르까지 3박 4일 자전거 여행을 하는 일정이 있다고 했다. 실제로 자전거 타는 날은 이틀뿐이라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숙소를 크루즈에서 해결한다고 했다. 비용이 내 한달 경비라서 어쩔 수 없이 포기를 했는데, GBI EGYPT 멤버들이 나를 위해서 돈을 모아서 내 참가비를 마련해 주겠다면서 나를 초대해주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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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 중 가장 아름다운 동행이 아니었나 싶다. 생에 처음 크루즈 배에서 지내기도 하고 무엇보다 가장 특별했던 건 현지인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함께 달릴 수 있다는 거였다. 여행 중 가장 특별한 경로로 기억에 남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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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신전 및 유적지들을 구경하는 것또한 굉장히 큰 재밋거리였다. 이집트 신의 계보를 살펴 보며 그림안에 담긴 내용을 이해하면서 보니 고대 이집트에 대해서 신비감이 느껴졌다.

GBI Egypt 팀과 3박 4일 자전거 여행을 함께 한 후 후르가다라는 도시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후르가다라는 해변부터 카이로까지는 좀 조용하다고 들었기에 거기서부터는 자전거를 탔다. 카이로 진입 전에 때마침 GBI Egypt 팀에서 만난 친구의 도움을 받아 도시에 진입했다. 이들 덕분에 이집트 케이블 티비에 출연해서 인터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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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를 마지막으로 아프리카 자전거 여행을 무사히 끝 맞췄다. 아프리카에서 자전거를 타는 게 오히려 중남미에서 자전거 타는 것보다 육체적으론 쉬웠다. 아무래도 자전거 여행 2년 차라 그런 것도 있고, 중남미에 비하면 사건 사고도 적었던 거 같다. 그래서 중남미보다 아프리카에서 자전거를 타고 이동한 거리가 더 길었고 중남미와는 달리 아프리카에서는 히치하이킹하거나 버스를 타는 건 극히 드물었다. 운이 좋았던 게 아프리카 자전거 여행 중 생명에 위협을 받거나 강도를 만나는 등의 일은 전혀 없었다. 다만, 아프리카를 여자 혼자서 자전거 탄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꽤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었던 거 같다. 길에서 남자 현지인들이 너무나도 추파를 많이 보내고, 인종차별적인 언어나 행동을 매일 같이 봐야 했으며, 어딜 가든 시선을 받아서 혼자 편히 쉴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어서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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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총 10,615km를 자전거로 탔다. 위 사진은 매 천 km 마다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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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총 10개의 나라를 지나쳤으며 364일 동안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지출 4백 4십만 원정도다. 브라질에서 남아공 가는 비행기가 140 만원. 비행기표를 포함하면 총 580만원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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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다양한 음식들을 먹었다. 그중 에티오피아 음식이 가장 아름답고 독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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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자전거를 타고 가는 동안 길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어둠을 무서워하는 내가 두려움에 떨 때 자기네 집 앞마당에 텐트를 치게 해주거나 그들의 집 안에서 자게 허락해준 많은 고마운 이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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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이동한 경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자전거 여행을 시작했을 당시 사람들에게 아프리카도 갈 거라고 했었다. 사실은 아프리카 자전거 여행이 가능한지 전혀 몰랐었다. 세계 여행한다고 했으니까, 아프리카도 세계의 한 부분이니까 아프리카도 간다고 했었던 것뿐이지 그것이 실천 가능한 꿈인지는 몰랐다. 그런데 막상 와서 보니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아프리카를 무사히 횡단할 수 있게 도움 준 많은 현지인, 외국인들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여행 후원금을 넣어줌으로써 장기 여행의 가능성을 열어준 후원자분들에게도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싶다. 여행기 올릴 때 실시간으로 응원을 해주신 분들 및 개인적으로 메일을 주신 분들 등등 모든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다.

 

아프리카 여행 비디오
(화질이 안 좋습니다. 당시 안 좋은 캠코더를 썼고 찍은 영상이 별로 없어서 부족한 점이 많네요. 아래 오른쪽 cc를 클릭하면 한글자막이 뜹니다!)

불가능할 거 같아 보였지만 실은 가능했던 아프리카의 대장정 자전거 여행은 여기서 끝이 났다.

아프리카에서 배 타고 터키로 넘어가려 했으나 페리가 더는 운행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스페인으로 비행기를 타고 넘어가기로 했다.

과연 유럽 자전거 여행은 어떨까?

 

캐나다 워홀 당시 봤던 오로라가 너무 그리워서 핀란드에서 자전거를 타고 북으로 올라가서 오로라를 보려고 하는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Africa100

에필로그…

1년 후 나는 핀란드에서 결국 겨울을 보내게 되었다. -21도에서 자전거를 타는 굉장히 추운 기록도 세웠다. 과연 핀란드에서 오로라 보기 대작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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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Comments
  1. 오우!~ 일빠 ㅎㅎ 복되고 즐거운 여행되기 바래요^^

  2. 마지막에 캠핑장소, 음식 모은 사진은~~ 정말 멋지네요 ~~^^

    • 앗.. 사진이 너무 많지 않나 걱정했었는데, 재밌게 보셨다니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3. Reply
    41세 여자사람 March 10, 2016 at 3:28 am

    오랜만에 업뎃하시네요… 너무 좋아용 !!
    예전에 그 “41세 오도방여행하고싶다는 여자 사람” 여요

    오만에서 한달짜리 룸렌트한 생활은 어떤지 궁금네요… 호스텔생활보다는 자유로우나 고립감 느끼실까 걱정되요.

    30년 대가족과 부딪끼며 살다가 혼자사니 ..넘 쾌적하고 자유로우나 “고립감”을 느끼거든요 외로움과는 별개로요..
    서울이면서도 낯선 동네에 주변에 아는 이 단 한명도 없다보니… 흑흑흑 -.- ;;

    원래 오도방여행을 계획했는데 비용문제로 … 자전거여행으로 바꿔서라도 한달씩 짧게 끊어서 나가보믄 어떨까하는 생각중예요

    암턴 늘 즐라+안라 하시길 기원해요

    후원 좀 하고싶은데 갑자기 이 일 저일 들이 터져서 상황이 안 좋아서 어쩔 수가 없네요

    • 잘 계셨나요?ㅎ 오래 된 여행기인데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ㅎ

      오만에서의 생활은 사실 좀 지루하네요.ㅠㅠ 날도 더워서 낮에는 나가기 싫고, 시내는 30km 멀리 떨어져 있고.ㅎㅎㅎ
      무슬림 국가라 슈퍼에서 술도 안 팔고.ㅋㅋ

      여행 초반엔 어떤 체력적인 싸움, 끊임없이 생기는 문제들과의 싸움이었는데.. 장기 여행이 되니.. 이젠 외로움과의 싸움이네요.ㅋ
      룸 렌트라서 외롭다기 보단.. 항상 낯선이들 밖에 없다는.. 만나서 술 먹자고 할 사람도 없는 이 외로움이랄까나요.ㅎ
      언제까지 이 외로움과 싸울 수 있을지..ㅋㅋ

      자전거 여행이 초반엔 돈이 많이 들죠.ㅠ.. 근데 한 번 투자하면 계속 쓸만하죠.ㅎ

      후원은 안 해주셔도 되요.ㅎ 리플을 항상 열심히 달아주시잖아요.ㅎㅎ

      즐거운 봄날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화이팅!

  4. 이전 아프리카 여행기를 보면서 기억에 많이 남는 것이
    꼬맹이들의 돌맹이 환영식 ㅋㅋㅋ
    아부심벨 석상을 저 지경을 만들고도 인증샷을 찍는 대범함^^
    그리고 저 복면달호의 식사 사진~~~~~

    부자 한 명이 나오려면 가난한 자 수 백명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죠~
    부유한 국가는 필연적으로 가난한 국가가 필요하죠. 절대 가난에서 벗어나면 안되죠~
    요즘 케이블 방송을 보면 광고의 상당 수가 ‘이 아이에게 한 달 3만원이면~’ 식의 구호단체의
    광고가 참 많습니다. 물론 도움이 필요한 곳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 단체가 난립한다는 것은
    그만큼 돈되는 일이니, 먹고 살 수 있는 평생기업이 될 수 있으니 덤비는 단체나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아닐까도 싶습니다.

    • 중간 중간 재밌는 사진들이 있죻ㅎ

      구호단체는 정말 아이러니 하죠… 저 또한 그렇고 많은 사람들 또한 그들을 도우면 뭔가 내 삶을 제대로 사는 거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들에게 돈을 보내게 되고, 구호 단체는 그게 장사도 되고 다른 사람도 돕고 겸사 겸사 좋으니까 계속 하는거죠.

      나중에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아프리카에 투자를 하는 그런 회사를 설립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구호단체 말고, 투자 회사를 설립해서 그들을 독립적으로 성장시키는거죠! 그들이 돈을 벌면 결국 지역사회에 투자를 하게 되는 거고, 그런식으로 조금씩 현지인들이 직접 부를 늘리는 거죠. 기부는 솔직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닌가 싶네요. 이미 몇십 년 동안 구호단체가 있었지만 변한게 아무 것도 없잖아요. 제 생각엔 아프리카에 대한 투자가 잘 이뤄지면 아프리카가 변하지 않을까라는..ㅎㅎ 너무 이상주의적인 생각일까요?ㅎ

      암튼 나중에 함 언젠가 기회가 생기길 빌어야죠.ㅎㅎ

  5. 아프리카에서의 여행기를 이렇게 올려주시고 많은 정보를 공유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길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과의 이야기, 봉사활동에서 느낀 점을 공유할수 있어서 감사하고요-
    자그마한 사건사고도 있었지만 무사히 아프리카 여행 마무리할수 있었던것도 감사합니다 !!

    • 진작 올렸어야 했는데 이제서야 올렸네요.ㅎ
      사건 사고도 있었지만 무사히 살아서 아프리카를 빠져 나왔으니 이 만큼 큰 감사할 일이 어딨을까 싶네요.ㅎ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6. 님의 여행 블로그들을 보면서..몇번씩이나 가슴이 설레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용기를 내서 이번년도에 장기 여행을 준비 중입니다. 항상 몸 건강하시고..기회가 되면..어디선가 맥주 한잔 하면 좋을것 같네요. 화이팅입니다 ^^

    • 제 블로그를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준비하시는 여행 잘 되시길 바랍니다! 그럼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날까지 화이팅!!! ^0^

  7. Reply
    그 41세여지사람 March 14, 2016 at 2:29 pm

    효진씨. 부러워요…. 낼 알파고와. 이세돌9단 마지막 대국. 볼 수있자나요. 저는. 일해야해서 못 본다능 -..- ;;
    님이나 나나 죽고나믄 우리. 후세들은. 터미네이터 영화같은 상황서 살게 되겠지요 …. 참 무섭지요?
    근데 님이 좀. 식겁할 만한. 얘기하나 들려줄까요?
    저의. 놋북바탕화면이요…….재작년..혹은. 재재작년부터 바로 님의 여행사진들이랍니다. 좀 기분이상하지않나요? 저라면 좀 신기두하고. 기분좋기구하면서
    좀 부담스럽고식겁스러울듯해요 ㅋ
    현재 사진은 자전거에 앉은 상태로 오만 머시기라고쓰인 표지판을 가리키고 있는 거랍니다. 양팔에. 줄무늬 팔토시끼고 있는….
    그렇죠…저는 님을 숭배하고 있는 겁니다(?)
    암튼 늘 안라해주세요
    굿나잇

    • 바둑을 둘지 몰라서 대국을 본적이 없네요.ㅎ 그리고 여기 인터넷 용량 제한 땜에 라이브 못 봐요.ㅠㅠ

      터미네이터 같은 상황은 아직 멀지 않을까요.ㅋ 그리고 생각해보면 구글 별로 안 똑똑한 거 같아요.. 스팸메일만 봐도..어케 저렇게 매번 똑같은, 제목부터 스팸스러운 메일을 차단을 못하는지 원.ㅋㅋ

      저는 Nasa에서 다운 받은 사진이 바탕화면인데.ㅋㅋ..

      그럼 오늘 하루도 수고하세요! 화이팅!ㅎㅎ

  8. 아프리카 여행기 너무 재밌게봤어요..ㅎㅎ
    저도 세계일주를 준비하고 있는데.. 아프리카가 가장 기대됩니다!
    많은 정보를 잘 정리해 두셔서
    여행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너무 큰 도움이 됩니다.
    덤으로 용기까지 얻었네요^^
    사진한장, 여행기 한글자 한글자.. 놓치지 않고 보고있습니다.
    앞으로도 안전한 여행하시고 좋은 여행기 부탁드려요 🙂

    • 이건 여행이 아니라 탐험기 입니다 혼자서 대단한 경험을 하셔서 부럽습니다 도전해 보고 싶은데 용기가 없네요 유럽 여행기 기대됩니다

    • 안녕하세요,
      좋은 정보를 좀 더 체계적으로 분류해서 보여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앞으로도 좋은 여행기 쓸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감사합니다..^^

  9. 아프리카가 자전거 여행이 가능한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어요 ㄷㄷ

    • 전 최근에 아프카니스탄 여행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곳이 여행 가능하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ㅎ 세상에 못 갈 곳은 없나봐요.ㅎ

  10. 대단하시네요^^!!
    남아공 헤르마누스라는 곳에서 4-5개월 살았었는데
    자전거로 여행이 가능할거라곤 생각못했네요
    자동차 타고 다니면서도 범죄의 위협을 많이 느꼈거든요.
    아직도 여행중이신가요?
    요즘 여행기 보면 여행하면서 어떻게 저 많은 정보를 세세하게 수집했을까? 여행은 한 건가? 라는 의문이 드는데
    님 글과 사진을 보면 순간순간을 진심으로 즐기시는것 같애요.^^ 좀 달라요 ㅎ
    앞으로도 화이팅 하시고요
    저도 한 번 해보고 싶네요^^ 기회가 오겠지요…

    • 남아공 여행하면서 위험했던 순간은 없었지만, 심리적으로 좀 무서웠던 거 같아요. 사람들 만나면서 각종 범죄 소식을 듣고, 길가에 하이잭킹 조심하라는 표지판 보면 막 갑자기 온갖 무서움이 몰려오죠.ㅎ 운이 좋아서 무사히 좋은 추억만 만들 수 있었음에 참 감사해요.

      아직도 자전거 여행중입니다..^^
      정보 같은 거는 스마트폰에 메모 이용해서 실시간으로 저장한다음에 나중에 붙여넣어서 작성하는 경우도 있죠.ㅎ

      나중에 기회 되시면 즐거운 여행하시기 바랍니다..^^
      리플 감사합니다~

  11. 자전거 여행을 계획하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열정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경외감이 드네요.
    위험한 순간순간을 어떻게 넘기며 수만 킬로미터를 여행하셨는지 궁금하네요.

    • 중간에 쉬엄쉬엄 쉬며 천천히 가서 가능했던 거 같아요.. 제대로 된 휴식 없이 매일 같이 달리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네요.ㅎ

  12. 잘 사는 삶이라 사춘기 아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인생이네요. 스스에게 충실하고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삶, 존경합니다.

  13. 여행이 아니라 차라리 대단한 모험이었군요!
    야생동물을 자주 볼 수 있어서 좋았겠지만,
    멋진 자연풍경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 것이 좀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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