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 자전거 세계 여행을 끝내는 걸로 계획 잡은 뒤 ‘DMZ 평화 자전거 세계 여행’을 8월 26일에 개최하기로 했다. 세계 여행 6개 대륙 자전거 여행에 성공하면 꼭 육로로 귀국하겠다는 꿈을 꿨는데 세계 여행은 성공했지만, 육로 입국은 불가능했다. 아쉬운 마음에 중국에서 압록강, 백두산, 두만강을 따라 자전거를 탔었다. 그래도 여전히 아쉬워서 이런 행사를 개최하게 되었다.
시간이 굉장히 촉박했는데 운 좋게 하루 만에 독도를 보는 데 성공하고 바로 배를 타고 오후 늦게 강릉시로 돌아왔는데 펑크난 자전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8월 말이었지만 날이 무더워서 땀을 뻘뻘 흘리며 자전거를 수리하고 뒤늦게 길 위에 올랐다.
내일 고성까지 도착해야 했기에 밤늦게까지 자전거를 타게 되었다. 한국에 13년 만에 처음 돌아와서 자전거를 탔던 곳이 동해였다. 10월에 자전거를 탔었을 땐 동네가 조용했었다. 이번엔 피서철과 겹쳐서 엄청난 인파를 느낄 수 있었다. 밤늦게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하다는 양양을 자전거로 지나가는데 사람들이 많아 차들이 잘 다니질 못할 정도였다. 1년 전에 우동을 먹었던 휴게소는 클럽 파티 장소로 변해서 경찰들이 교통정리하고 있었다. 이번에 느낀 것은 호주에 골드코스트가 있다면 한국엔 동해가 있다는 것이다! 피서철이다 보니 숙소가 너무 비싸서 피서지를 벗어나 한참을 달리다가 길옆에 데크가 보여서 텐트를 치고 잤다.
고요히 하룻밤 편히 잤던 곳. 새벽에 일찍 일어나 정리하고 다시 길 위에 올랐다. 오늘은 혼자서 자전거 여행하는 마지막 날이다.
1년 전 이맘때쯤 여기서 자전거를 탔던 기억이 난다. 등산에서 가장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하산하는 구간이라고 한다. 세계 여행 12년 만에 한국에 안전하게 들어왔었지만, 세계 여행 마지막 목적지인 한국에서 혹시 사고가 날까 봐 나름 조심히 다녔기에 여행이 무사히 끝나가는 거 같아서 감사했다.
고성에 시간 맞춰 도착해 주변에 숙소를 잡고 짐을 정리하다가 가방이 심하게 뜯어진 걸 발견하게 되었다. 임시방편으로 테이프를 붙였다. 딱 일주일만 버텨주길 간절히 바라본다.
DMZ 평화 자전거 세계 여행 경로는 고성에서 시작 인제, 양구, 화천, 철원, 연천을 지나 파주에서 끝이나며, 8월 26일 월요일에 시작해서 9월 1일일 일요일에 끝나는 일정이다.
이전 중국 포스팅에 올렸던 내용인데 다시 한번 여기에 적어보려 한다. 최근 이런 질문을 받았다. “도대체 왜 이런 것에 집착하시나요?”
내 대답은 이랬다.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로운 한반도를 꿈꾸는 것입니다. 세계 여행을 하며 전 세계 사람을 만나서 실제로 겪어보니 아무리 남한이 BTS, 기생충, 노벨 문학상 등으로 이름을 널리 알려도 영원히 북한의 그늘에 가려서 전쟁 중인 국가의 이미지를 못 벗어나는 게 안타깝더라고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아프리카 사람들도 김정은을 알지만, 대한민국 대통령을 모르는 것이 현실이고,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김정은 아냐며 끊임없이 놀림당하며 북한의 그늘에 가려진 한반도의 안타까운 현실을 직접 경험해보니 한반도 평화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에 살았을 땐 몰랐는데 전 세계 사람들을 만나 보니 한국이 아무리 잘 나가도 북한의 어두운 그늘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아직도 100년 전 그 비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반도에 불어오는 평화일 뿐이다. 이것은 100년 전에 몰락했던 조선과 일본 식민 지배의 비극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식민 지배를 겪은 나라들은 시간이 지나도 그 상처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 이후에는 분단, 내전, 독재, 기아, 빈곤, 치안 붕괴 등의 문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미 벌어진 과거의 일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미래만큼은 우리가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 하는 말이 추상적인 것처럼 보인다면 남북 평화의 중요성을 구글 지도를 통해 현실적으로 설명해 보려 한다.
왼쪽은 중국에서 본 지도이고 오른쪽은 해외에서 본 지도이다. 왼쪽 지도를 보면 북한 땅이 중국에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북한과의 평화를 포기하는 순간 이것이 현실로 될 수도 있다.
구글은 중국에서 금지되어 있는데 중국에 있을 당시 VPN으로 구글 지도를 켜면 북한이 실선으로 중국 땅에 포함되어 나왔다. 구글 AI에 물어보니 중국이 구글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측이 원하는 식으로 해준다고 한다. 실제로 구글 검색창에 압록강을 영어나 한글로 치면 아주 크게 Yalu 강이라고 뜬다.
ChatGPT에 압록강 관련 번역 부탁하면 압록강이란 단어 자체를 지워버리고 중국 단어인 Yalu 강으로 번역해 버린다. Chat GPT는 인간이 만들어 냈기에 인간의 편견이 섞여 있을 수밖에 없다. 식민지 혹은 전쟁 관련해서 물어보면 식민지는 도움이 되었다, 한국 여성들이 위안부에 자원해서 갔다라는 강대국 입장을 대변한 결과를 보여준다.
강대국이 만들어낸 편견에 찬 Chat GPT일지라 동해 관련 번역을 부탁하면 Sea of Japan이라고 바꾸지 않고 East Sea로 보여줬는데 압록강 번역만큼은 달랐다. 압록강은 우리 한반도 평화 통일의 상징으로 자주 사용되는데 ChatGPT는 역사상 Yalu가 맞다며 아예 압록강 단어 자체를 번역에서 지워버리고 Yalu로 대체해 버리면서 Yalu가 맞다고 우긴다. 각 나라마다 사용하는 고유 명칭이 있는데 그걸 무시해 버리는 이 현상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누가 어떻게 작업을 하고 있는걸까라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점점 한반도의 반을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해야지 이 땅을 지켜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8월 26일 아침 다 같이 고성 통일 전망대에서 만나기로 했다. 자전거 세계 여행 중 직접 행사를 개최하는 건 처음이었기에 걱정과 고민이 많았는데 점점 만나기로 한 장소가 가까워지자, 이 행사가 진짜 일어나고 있다는 게 현실로 느껴졌다.
일주일이라는 긴 행사 시간, 초보자는 참여하기 어려운 산악 지대, 충분하지 않았던 공지 기간 등 여러 가지가 겹쳐서 소규모 인원이 참여하게 되었는데 오히려 인원이 적으니 의견을 조율하기가 편했다. 차로 참석하시는 두 분, 자전거 타는 사람 3명, 그리고 첫날 고성통일전망대만 참석하는 사람 총 6명이 함께 하게 되었다. 다들 개인 일정이 있어서 중간에 인원이 빠지거나 새로 추가 되거나 하는 등의 변동도 있었다.
제주도에서 함께 며칠 자전거를 탔던 재희님이 이번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재희님의 지인 아영님은 직접 만든 캠핑카로 참여하였다.
정말 재밌는 점은 아영님을 9년 전인 2015년에 파미르 여행 중 만났다는 것이다. 서로 가는 방향이 정반대여서 사진만 찍고 헤어졌었다. 사진에서 맨 왼쪽에 계신 분이 아영님. 여행을 좋아하고 자전거를 좋아하다 보니 이렇게 서로 다시 연결되었다.
고성 통일 전망대에 도착해서 출입 신고서를 작성한 후 통일 안보 교육 영상을 짧게 시청 후 통일 전망대로 향했다. 아쉽게도 이륜차로는 입장이 불가능해서 차를 타고 들어갔다.
통일 전망대에는 남북 역사와 통일로 가는 지난 발자취들이 담겨 있어서 굉장히 유익했다. 이곳을 DMZ 평화 자전거 세계 여행 출발점으로 잡은 건 행사 의도와 굉장히 잘 맞았다고 생각했다. 망원경을 통해 한반도의 반인 북한 땅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창문 너머에 무엇이 보이는지 자세히 쓰여 있었다. 중국 국경선에서 봤던 북한 땅을 한국에서 이렇게 다시 보게 되었다.
통일 전망대 시설이 굉장히 좋았는데 다 같이 관람을 마친 후 단체 사진을 찍었다.
이후 점심 먹으러 가는 길. 아영님의 캠핑카. 직접 그림도 그리셨다는데 캠핑카와 잘 어우러져 제법 멋졌다.
이후 통일 전망대 근처에서 다 같이 현지 음식을 먹었다. 사진에서 맨 위쪽에 계신 분은 재희님 지인이셨는데, 이전 갈치 마을에 들렀을 때 뵈었던 분이기도 하다. 공연 일정 때문에 바쁘셔서 점심 식사 후 헤어져야 했다. 재희님은 무릎 부상이 있으셔서 이날 함께 달리지 못했고 다른 두 분은 차로 이동을 했기에, 맨 왼쪽에 계신 태규님과 함께 첫날 달리게 되었다.
첫날 특별 게스트가 있었다. 한국 자전거 여행을 유튜브에 올린 Nick K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짧게 함께 달린 후 각자 가는 길이 달라서 헤어졌다.
DMZ 평화 자전거 세계 여행은 매일 같이 산과 산으로 이어졌었다. 첫날 넘어야 했던 곳은 바로 진부령 고개. 내가 짐이 꽤 있다 보니 속도가 좀 느린데 감사하게도 태규님께서 내 속도에 맞춰 자전거를 타 주셔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자전거를 탈 수 있어 재밌었다.
DMZ 평화 자전거 여행의 첫 고개를 성공적으로 넘었다.
인원이 적다 보니 숙소는 다수결로 진행하게 되었는데 노지 캠핑+캠핑장을 섞게 되었다. 이날 차로 먼저 갔던 분들이 감사하게도 노지 캠핑 장소를 먼저 찾아주셔서 태규님과 여유 있게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었다. 다들 피곤했던지라 근처 식당에서 현지 음식인 황태구이와 황태해장국을 먹으며 피로를 풀었다.
다음 날 아침은 라면으로 가볍게 시작했다. 캠핑에서 다 같이 먹는 라면이 제일 맛있다!
둘째 날도 태규님과 둘이 함께 달리게 되었는데, 태규님이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스타일이라서 재밌게 자전거를 탈 수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산으로 점점 들어갈수록 주변엔 군부대가 나오기 시작했고 DMZ 이름을 건 간판들도 보이기 시작했으며 무엇보다 ‘평화’라는 글씨가 계속해서 보였다. 평화 공원, 평화 생태계, 심지어 이번 행사 이름도 DMZ 평화 자전거 세계 여행이다. 전쟁을 막기 위한 가장 큰 무기는 평화이고, 전쟁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는 것도 평화이니 이 모든 지역의 테마는 평화로 맞춰져 있다.
이날 군사 훈련이 있어서 장갑차 등을 보게 되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선 군대가 필요하기에 군부대 훈련을 볼 수 있었던 건 이번 DMZ 평화 자전거 세계 여행에 의미 있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이 주변은 인삼밭이 많았는데 풍경이 굉장히 고요로웠다.
풍경이 너무 멋졌던 마을
태규님이 핸드폰 스크린샷을 남기셨는데 지도를 보면 최전방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심지어 군사 훈련 총소리도 간간이 들렸다. DMZ 평화 자전거 세계 여행이면 평화로운 것만 봐야 할 것 같지만, 현실은 총소리를 들으며 전차를 보며 군부대를 보며 달려야 했다. 서울이나 수도권에 있을 땐 전혀 경험한 적 없던 것인데 최전방에 오니 남북한이 휴전 중이라는 게 직접 피부에 와닿게 되었다.
나중에 참여한 분들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군대 나오신 분들, 심지어 수색대였던 분도 최전방 분위기가 상당히 낯설다고 하셨다. 이번 행사 덕분에 남북한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한반도 평화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하셨던 분들이 여러 계셔서 이번 행사를 매년 열어서 남북한 평화의 필요성을 상기시키는 게 어떨까란 생각이 들었다.
해가 질 녘 길옆에 어떤 분이 박수를 쳐주며 응원을 해주셔서 잠시 멈췄는데 알고 보니 내 유튜브를 며칠 전에 보셨다고 했다. 이 마을이 고향이라고 하시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어렸을 때는 대남 방송을 들으면서 자라셨다고 하셨는데 지금 보이는 산 너머가 바로 북한 땅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오늘 오후 내내 북한 바로 옆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 마을 이름이 펀치볼인데 한국에서 마을 이름으로 영어는 잘 쓰지 않는 데 이곳만큼은 예외였다. 이유는 6.25 전쟁 당시 여기서 전투가 벌어졌는데 여기를 둘러본 미군들이 이곳을 펀치 볼이라 부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펀치 볼은 화채 그릇을 담는 미국 영어 단어인데, 이곳이 분지 지형이라 화채 그릇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기 시작되었다고 한다.
산 정상에 올라가 보면 마을이 굉장히 멋져 보인다고 해서 꼭 자전거로 올라가고 싶었다. 그런데 해가 지고 있어 서둘러야 해서 터널로 지나가야 했다.
다행히 어두워지기 전에 캠핑장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재희님이 오늘 하루 어땠냐고 물으셨는데 둘 다 보람차고 재밌게 하루를 보냈던지라 웃음이 가득했다.
저녁엔 다 같이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입에서 살살 녹는 삼겹살! 역시 캠핑은 함께할수록 더욱더 재밌다!
이번 여행에서 세 군데 캠핑 장소를 예약해 놨는데 모두다 지방 정부에서 운영하는 캠핑장이었다. 가격도 사설 캠핑장에 비해 무척이나 저렴했고, 한 동에 텐트를 여러 개 쳐도 추가 요금이 없어 너무 좋았다. 글램핑도 있었는데 시설도 좋아 보였다. 다만 한 가지 아쉽고 걱정되는 게 있었다면 캠핑장이 가는 데마다 텅텅 비었다는 것이다. 근데 한편으로 이해되는 점이 이날 아침 군사 훈련 총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이번 여행은 단순 여행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분단국가에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둘러보며 평화를 갈망하는 동기부여를 얻는 것이지만, 단순 조용히 힐링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망설여지게 되는 장소가 아닌가 싶다.
셋째 날은 무릎 부상이 있으셨던 재희님도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강원도는 어딜 가든 자연이 너무 아름답다. 특히 시냇물과 강물이 너무 맑아서 중간에 서서 다 같이 강물에 더위를 식혔다.
이후 한 시골 마을에서 점심으로 먹은 한식 뷔페. 한국에 13년 만에 들어온 후 한식 뷔페라는 걸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검색해 보니까 2010년대 초반부터 생기기 시작한 거라고 한다. 특히, 제주도 공유 사무실에서 2개월 반 있을 동안 매일 갔던 ‘탐나는 한끼’란 한식 뷔페가 있었는데 거기가 한국에서 먹은 한식 뷔페 최고 맛집이었다. 한식 뷔페 가격대는 8천 원~9천 원 대인데 고기, 튀김, 반찬, 야채, 국 등 없는 게 없어서 자전거 여행자에게 있어서 최고의 가성비 식당이었다.
이후 힘겨운 오르막을 올라가야 했는데 해바라기 꽃이 너무 예쁘게 피어 있어서 다 같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
오르막 정상에서 아영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전날 산 황태포를 뜯어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터널이 좁았는데 다행히 지나가는 차량이 없었고 무엇보다 감사하게도 아영님이 뒤에서 차로 천천히 따라와 주셔서 굉장히 편하게 터널을 지나갈 수 있었다.
터널 이후에는 내리막이 이어져서 신나게 하루를 마감할 수 있었다. 오늘 머물 곳은 평화의 댐 캠핑장이다.
캠핑장 들어가기 전에 전시된 탱크. 역시나 ‘평화’라는 글씨가 들어가 있다.
이번에도 캠핑장은 텅텅 비었었다. 시골이다 보니 수많은 별이 보여 저녁 식사 후 다 같이 데크에 누워서 별을 감상했다.
20살 때부터 별 보러 다니는 걸 참 좋아했었다. 그래서 천문 동호회 활동도 했었다. 세계 여행 중에 여러 별 사진을 찍곤 했었고 무엇보다 수많은 별똥별을 구경하려고 깊은 밤에 나와서 밤하늘을 구경하곤 했다. 별똥별에 소원 비는 것을 좋아했었는데, 첫 번째로 빌었던 소원은 안전하게 세계 여행하는 것, 두 번째로 빌었던 소원은 안전하게 건강하게 세계 여행하는 것, 세 번째로 빌었던 것은 안전하게 건강하게 즐겁게 별 탈 없이 세계 여행에서 살아남는 것, 네 번째, 다섯 번째, 등등 그렇게 내 모든 소원은 안전과 관련되어 있었다. 전 세계 밤하늘에서 별똥별을 보며 빌었던 ‘무사히 안전히 건강하게 별 탈 없이 즐겁게 세계 여행 끝내기’ 소원이 이뤄지기까지 며칠 안 남았다는 생각에 설렜다.
고요한 안개 속에서 아침을 시작했다. 함께 3일간 자전거를 탔던 태규님은 개인 일정이 있으셔서 가시고 넷째 날은 재희님과 둘이 자전거를 타게 되었다.
시작부터 엄청난 오르막이 이어졌다.
너무 지쳐서 중간에 좀 쉬었다. 아침부터 시작된 오르막은 점심이 될 때까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재희님은 최근 자전거로 전국 일주를 했었는데 이렇게 오르막이 길게 이어지는 건 처음이라고 하셨다. 점점 배는 고픈데, 중간에 식당이 안 보여서 황태포를 간식으로 먹어야 했다.
오르막 끝에서 마주한 식당은 천국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맛있는 산채 비빔밥과 감자전으로 든든히 배를 채웠다.
점심 식사를 끝마치고 다시 자전거에 올랐는데 곧바로 시원한 터널이 나왔다.
최북단, 최고봉, 최장터널! 이후에는 신나는 내리막이 이어졌다.
내리막 후에는 평지가 이어졌는데 풍경이 정말 멋졌다. 이때까지 참 평온하고 즐겁고 재밌었는데 오후 늦게 어려움이 닥쳐올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잠시 쉬기 위해 편의점에 들렀는데 사장님께서 위로 좀만 더 올라가면 민간인 통제 구역이라 이륜차로는 못 들어간다고 했다. 그 일정 구간 이후에는 다시 자전거로 지나갈 수 있다고 했다. 네이버 지도와 카카오 지도에는 자전거로 올라갈 수 있다고 나왔고, 이쪽 DMZ 분야에 계신 분도 별말 없으셨었기에 이런 일이 발생할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나를 따라 묵묵히 자전거 여행에 참여해 준 재희님에게 너무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분에게 이 지역에 관해 물어봤었는데 우연히도 군인분이셨다. 이 지역 일대가 전부 군부대였기에 군인을 만날 확률이 높았던 게 아닌가 싶다. 그분이 민간인 통제 구역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해주시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하시더니 큰 차를 몰고 오셔서 감사하게도 캠핑장까지 데려다주셨다.
그분 차에서 보는 노을이 참으로 슬프게 느껴졌다. 갑자기 멀쩡하게 잘 가다가 일정 부분이 막혀서 못 간다는 게 참으로 답답하게 느껴졌다. 전 세계 6개 대륙 13년 여행하며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이런 일을 처음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우리나라는 전 세계 유일 분단국가이기 때문이다. 분단국가에 태어난 서러움은 압록강에서 두만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백두산과 한라산을 올라도 풀리지 않았다. 이런 서러움을 다음 세대에까지 물려줘야 한다는 것은 정말 큰 죄가 아닐지?
그래서 이런 작은 몸부림이라도 쳐보려 하는데 이상하게 남북한 평화 관련 일만 추진하려면 무언가에 걸려 힘든 일들이 생겼던 트라우마가 생각나 결국 텐트에서 펑펑 울다 잠이 들었다.
다섯째 날이 밝았다. 텐트 밖에선 먼저 일어난 분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주저앉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다잡고 텐트 밖으로 나와 사람들에게 아침 인사를 건넨 후 다시 자전거 탈 준비를 했다.
어제 경사가 너무 심했던지라 무릎 부상이 있으신 재희님은 쉬시고, 오늘 새로운 두 분과 함께 자전거를 탄다.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세상 무너질 듯 슬퍼했는데, 다음 날 아침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금세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해맑게 웃게 되었다.
아침 날씨도 상쾌했고 국도에 갓길도 넓고 차량도 별로 없어서 자전거 타기가 수월했다.
철원 노동당사에도 들렀는데 공사 중이었다. 전광판엔 분단국가 된 지 692,893시간이 보였다.
이번 DMZ 여행에서 이 건축물을 계속 봤었는데 같이 달리시는 분들이 얘기를 해주셔서 이것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전시 상황이 발생하면 구멍에 폭탄을 넣어서 위 네모난 건축물을 길로 떨어트려 적군의 경로를 차단하는 용도라고 한다. 이번 DMZ 여행에서 정말 자주 봤던 건축물인데 어떤 곳은 예쁘게 페인트칠을 해 놓은 곳도 있었다.
길 중간에 보였던 표지판. 어디서부터가 민간인 통제구역이라는 건지 모르겠다. 만약 여기서부터 민간인 통제구역이라면 이렇게 아무나 쉽게 들어가도 되는 곳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뢰 표지판을 본 건 전 세계 여행 중 이번이 두 번째이다. 제일 처음으로 본 곳은 보스니아였다. 지뢰 표지판을 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나라가 바로 내 나라 대한민국이란 사실에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점심 식사로 들른 곳인데 사장님이 굉장히 독특하셨다. 닭 날개도 서비스로 주시고 육수와 면도 추가로 서비스로 주셔서 굉장히 친절한 분이기도 했다.
오늘은 대부분이 평지라서 달리기가 정말 수월했다.
세계 여행에서 제일 처음 쓴 텐트는 미국에서 8만 원 주고 산 텐트였다. 2년 뒤 독일에서 만난 분이 자기는 새 텐트를 샀다며 본인이 쓰던 텐트를 내게 선물로 주셨다. 그 텐트가 지금 사진에 보이는 텐트인데 무려 10년 가까이 썼다. 지퍼가 언제부턴가 자주 고장이 나서 매번 수리하고, 텐트 폴을 잃어버려서 여러 번 새로 사서 직접 다시 만들고, 구멍이 나면 테이프로 수리하고, 비가 좀 많이 오면 텐트 바닥에 물이 흥건했었는데, 그래도 이 텐트로 세계 여행을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저녁엔 치킨과 피자를 시켜 먹고 이후엔 모닥불을 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잠에 들었다.
셜리 자전거만 무려 4대! 지난 일주일 가까이 함께 했던 아영님과 재희님과 어제 합류하셨던 한 분은 일정이 있으셔서 오늘 빠지게 되었다.
오늘 새롭게 합류한 분과 지난 여행 함께 했던 분들과 함께 다 같이 하나가 되어 사진을 찍었다.
오늘은 토요일이라서 새롭게 합류한 분이 다섯 명 정도 되었다. 아침 초반엔 자전거 길이 쉽게 이어져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평화롭게 자전거를 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 가지 않았다. 곧 있어 오르막이 나왔는데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오늘은 세계 여행에서 자전거를 타는 마지막 날인데 마지막 날이라고 엄청난 오르막들이 선물로 쏟아져 나왔다.
지난 일주일간 계속 봤던 DMZ 최전방 건축물.
경사가 너무 심하게 지면 뒤에 차량을 없을 때 자전거를 지그재그로 밖에 탈 수 없다. 내가 너무 힘들어하자 함께 뒤에서 자전거를 타 주셨던 홍권님
몸은 힘들지만, 마음만은 즐거웠던 순간이다. 이런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 특히 중앙아시아 파미르 여행이 그랬다. 고산, 모래와 자갈길, 울퉁불퉁 길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자전거 여행 중 최고로 힘든 구간이었는데 당시 여러 명이 함께 자전거를 탔던지라 즐거운 기억이 오히려 가득했다. 자전거 세계여행의 마지막 날은 파미르처럼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만큼은 매 순간이 즐거웠다.
든든하게 점심 식사! 세계 여행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을 꼽으라면 바로 점심시간! 그렇다! 매일매일 점심을 먹어야 했기에 매일 매일이 즐거웠다!
오늘따라 자전거 길이 정말 이상하게 이어졌다. 비포장은 기본이고 엄청나게 심한 경사가 여러 번이나 나왔다. 짐이 전혀 없는 분들도 자전거를 끌어야 했을 정도였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내 자전거는 다른 분이 끄시고 나는 그분의 자전거를 끌고 있다. 내 자전거가 너무 무겁다며 직접 도와주시겠다고 해서 정말 감사했다! 여행 마지막 날에 이런 행운을 누려본다!
특히 포장도로에서 경사가 심하게 졌던 부분이 있는데 그때 다른 두 분이 뒤에서 내 자전거를 한 손으로 각각 밀어주시며 함께 이동해서 날개를 얻어 날아는 기분이 들었던 순간도 있었다.
오후 늦게 날이 뜨거워졌는데 잠시 쉬려고 들른 슈퍼에서 사장님이 시원한 지하수가 있다며 머리를 헹구라고 하셨다. 물은 얼음장같이 차가워서 무더운 오후를 식힐 수 있었다. 곧 있으면 우리의 목적지 파주 숙소에 도착하는데 카톡 익명 다수결 투표에 들어가게 되었다.
한적하고 조용한 도로이지만 돌아가야 해서 1시간 걸리는 경로 vs 시내를 가로질러서 30분 만에 도착하는 경로
이날 날도 무더웠고, 경사진 오르막도 많이 나오고, 자전거 도로가 잘 안되어있어서 비포장도로에서 고생들이 심했기에 당연히 후자가 선택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마지막 날이라 아쉬운 마음이 있어서 전자를 선택했는데 놀랍게도 투표 결과는 6:1
익명 투표다 보니 30분 경로를 선택한 한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없었다. 다들 내가 짐이 많아서 얼른 끝내고 싶어 거기에 투표한 게 아니냐며 나를 의심 했고 나는 절대 아니라고 하며 순간 마피아 게임과 흡사한 일이 벌어져 다들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나중에 숙소에 도착하고 나서 그 한 명이 너무 힘들어서 빨리 끝내고 싶었는데 다들 돌아가는 길을 선택해서 좌절스러웠다고 고백해서 다들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정말 재밌었던 기억 중 하나로 남은 투표였다.
자전거 타는 걸 끝내는 게 아쉬워 오히려 돌아가는 길을 선택한 우리 DMZ 라이더들!
아름다운 논밭을 함께 달렸는데 그 모습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참으로 아름다웠다.
마지막 날은 DMZ 숲 문화공간에서 끝내기로 되어 있는데 DMZ 숲은 민통선 안에 있어서 자전거로는 못 들어간다. 그렇기에 아쉬운 마음에 최대한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미친 듯한 속도를 치고 나가는 사람 나와서 “진정! 진정!가지마!” 하며 소리쳤는데 알고 보니 우리 DMZ 라이더 그룹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분은 얼마나 황당할까 싶어 웃음이 터져버렸다.
아프리카, 중동, 라틴 아메리카 등 전 세계를 다 돌아다녔지만 정작 내가 태어난 한반도의 반은 가보지 못하는 분단국가의 서러움은 극복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함께 웃으며 달릴 수 있을 때까지 끝까지 달렸던 이 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언젠가는 이 너머로 다 같이 달릴 수 있는 날이 우리 생에 꼭 왔으면 좋겠다.
통일 대교에서 3km 정도 떨어진 곳에 펜션을 잡아놨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자전거 페달에서 발을 떼는 순간 세계 여행이 안전하게 끝났다는 게 느껴졌다. 전 세계 여행을 하며 밤하늘의 별똥별을 보며 빌었던 “안전하게 무사히 재밌게 세계 여행 끝내기”라는 꿈이 실현되는 감격의 순간이었다.
사진 맨 왼쪽 두 분은 먼저 와서 감사하게도 이것저것 준비해 주셨는데 지난번 캠핑에서 함께 해주셨던 분들이기도 하다. 맨 오른쪽은 바로 DMZ 숲 임미려 대표님이시다. 이날 저녁에 함께 해주셨는데 와인을 선물로 들고 와주셔서 세계 여행을 무사히 마친 것을 축하해 주셨다. 미리 장을 보셨던 두 분이 케익을 준비하셔서 깜짝 놀랐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라 당황해서 소감을 아주 짧게 감사한다고만 했었는데, 개인적으로 굉장히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세계여행의 마지막 날 밤은 이렇게 행복하게 감사하게 보내게 되었다.
드디어 2024년 9월 1일. 세계 여행의 마지막 날이 밝아왔다.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 아침을 간단히 사 먹으러 들렀는데 엄청나게 많은 관광버스와 수많은 인파에 깜짝 놀랐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특히나 많았다. 이것을 다크 투어리즘이라고 하는데, 재해 피해지, 전쟁 철거지 등 인류의 죽음이나 슬픔을 대상으로 한 관광을 하는 것이다.
어떤 외국 친구가 판문점 관광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어서 당시 사건이 일어나서 잠시 중단되었다고 하니 엄청나게 아쉬워했었다. 다른 이의 비극을 못 보는 게 아쉬운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한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나 또한 다른 나라에서 다크 투어리즘을 여러 번 했었지만 이게 막상 직접 당하는 입장이 되니 굉장히 씁쓸했다. 이렇게나 씁쓸했던 가장 큰 이유는 우리는 이 전쟁의 피해와 분단의 비극 속에서 계속해서 살고 있기 때문에 현재 진행형 중인 비극인데 이게 남들에겐 구경거리로밖에 안 된다는 게 마음을 무겁게 했다.
마지막 일정에 참여하는 추가 인원이 꽤 되었었는데 임진강역에 다 같이 모여서 DMZ 숲의 임미려 대표님의 설명을 들었다. DMZ 숲은 민간인 통제 구역에 있는데 통일 대교에서 2km 떨어진 곳에 있다. 민간인 통제 구역이기에 들어가기 전에 차량번호, 탑승자, 생년월일, 전화번호, 성별 정보를 미리 제출해야 했다. 이륜차로는 못 들어가기에 자차를 갖고 오신 분들의 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모든 방문객은 신분증을 반드시 들고 와야 하며 운전자의 신분증은 통일 대교 출입 검문소에 맡겨야 한다.
또한, 한 차에 함께 들어간 인원은 반드시 같은 인원으로 나와야 했다. 예를 들어 3명이 A란 차를 탔는데 그중 한 명이 나중에 가겠다고 해서 2명이 A란 차를 타고 나오게 되면 문제가 된다. 그래서 자차를 갖고 오신 분들께 일일이 상황 설명을 하고 동승이 가능한지 물어보고 함께 탈 인원을 정리해서 엑셀 파일로 제출했다. 여기서 걱정되었던 게 만약에 동승을 허락했던 분이 갑자기 당일날 취소를 하게 될 경우엔 상황이 굉장히 복잡해지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감사하게도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DMZ 숲 입장에서는 버스를 빌려서 오라고 했으면 관리하는 측면에서 훨씬 편하셨을 텐데, 우리의 편의를 봐주셔서 자차를 허용해 주셔 굉장히 감사했다.
DMZ와 민간인 통제 구역을 헷갈리는 분들이 있을 수 있기에 여기서 용어 설명을 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DMZ(비무장지대, Demilitarized Zone)는 대한민국과 북한 사이에 설정된 군사적 중립 지역으로, 1953년 정전 협정에 따라 설치되었다. 폭은 약 4km(남북 각각 2km), 길이는 약 250km에 이르며,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완충 지대이다. 원칙적으로 군 병력과 무기는 배치되지 않으며, 민간인의 출입도 제한된다. 다만, 판문점에 있는 공동 경비 구역(JSA, Joint Security Area)에는 예외적으로 한국과 북한 양측의 군인이 상주하고 있다.
*민간인 통제 구역(Civilian Control Zone, CCZ)은 DMZ 외곽에 위치한 구역으로, 군사적 보안을 위해 일반인의 자유로운 출입이 제한된다. 이 지역은 군 작전이나 경계 활동을 위한 보호 목적이 있으며, 출입 시에는 군의 허가가 필요하다.
즉, 민간인 통제 구역은 군사적 보안을 위해 일반인의 자유로운 출입이 제한된 곳인데, 이곳에 임미려 대표님은 최초로 숲 문화 복합 공간을 연 것이다.
대표님과는 이전에 이메일로만 얘기를 주고받다가, 서울에 방문했을 때 짧게 만난 적이 있다. 그때 대표님과 나눴던 얘기가 너무나도 인상 깊었고 대표님이 남북 평화를 바라보고 있는 시야가 우리 일반인들과는 달리 굉장히 넓다는 걸 깨달아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많은 분들과 함께 DMZ 숲에 가서 여행을 끝내고 싶었는데 DMZ 숲 대표님과 팀원분들이 흔쾌히 초대해 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했다.
위 지도를 보면 민간인 통제구역에는 도로 정보가 안 나온다. 대표님께서 임진강역에 먼저 와서 통솔해 주시는 이유 중 하나가 민간인 통제 구역에 들어가는 순간 GPS가 작동 안 되기 때문에 DMZ 숲에 들어가는 약도를 프린트해서 미리 나눠주셔야 했기 때문이다.
어제 자전거로 가지 못해 돌아가야 했던 통일 대교에 드디어 들어가게 되었다.
검문소를 지나 통일 대교를 건너자 보이는 표지판에는 개성과 판문점이 보였다.
이후 DMZ 숲으로 들어가기 위해 오른쪽으로 빠졌는데 거기서부터는 대표님이 얘기해주신 것처럼 표지판이 없었다. DMZ 숲으로 가는 길은 일반 도로처럼 평범했지만, 핸드폰에 있는 네이버 지도, 카카오톡 지도, 구글 지도의 모든 GPS가 작동하지 않았다. 가는 길은 단순했지만, 은근히 긴장이 되었다. 함께 움직였던 운전자분께 ‘GPS가 안 된 적은 처음이라 이거 은근히 긴장되네요.’라고 했더니 ‘사실 저도 긴장돼요. 전 심지어 직접 운전하잖아요’라고 해서 서로 웃음을 터트렸다.
통일 대교에서 2k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아서 금방 도착했는데 DMZ 숲은 사진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DMZ 숲은 이끼 정원, 버섯 재배 단지, 유리 온실 등을 조성하고 있으며 체험형 관광과 임업을 접목해 새로운 평화 관광 거점으로 발전시키고 있는 곳이다. 2021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해서 2023년에 인프라를 완성했고 2024년부터 방문객을 받기 시작했다. 한참 남북 관계가 경색되었을 때 이 일을 진행해서 완성했다는 게 정말 대단해 보였다. (자세한 설명은 여기서)
오늘 일정은 대표님께서 DMZ 숲을 보여주시면서 이곳이 어떤 곳인지 설명해 주시고, 이후에는 자전거 세계 여행 토크 및 질문 등을 받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자전거를 차에 싣고 와서 토크가 진행되는 곳으로 이동하는 중. 숲이 너무 예쁘다 보니 화보처럼 사진이 예쁘게 나왔다.
9월이었지만 여전히 한낮 열기가 뜨거웠는데 DMZ 숲 팀에서 혹시 열사병을 겪으시는 분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 되셔서 얼음물 등을 준비해 주셨다. 라이브 카메라 팀도 있었는데, 굉장히 많이 신경 써주신 게 보여서 너무나도 감사했고 한편으론 죄송한 마음도 들었다.
메인 언론에 주목받는 게 부담스러워서 아프리카 여행할 때 촬영팀이 함께하고 싶다는 걸 거절한 적도 있고, YTN 등 뉴스 인터뷰 요청도 거절했었다. 이후에 10년 넘는 장기 여행으로 흘러가자 더 이상 방송 취재 요청하는 곳이 없었다. 그런데 DMZ 숲에서 초대해 주신 게 너무 감사했고 DMZ 자전거 세계 평화 여행의 의도를 널리 알리고 싶어서 여러 방송국에 취재 요청을 직접 해봤지만, 어느 곳에서도 답장을 주지 않았다. 만약 방송국에서 촬영을 왔다면 DMZ 숲을 알릴 기회가 되어 보답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 DMZ 숲 팀에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부족한 점이 많은 나지만 그럼에도 환하게 환영해 주시는 임미려 대표님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무엇보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개척해 가시는 임미려 대표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DMZ 숲에서 한 스탭분과 얘기하면서 “저는 꼭 이 남북한 평화 관련 일만 추진하려면 이것저것에 다 걸려서 상처를 입고, 심지어 며칠 전엔 텐트 안에서 펑펑 울기도 했어요”라고 했더니 “우리 임미려 대표도 울어요.”라고 해서 순간 서로 웃음을 터트렸다.
민간인 통제 구역은 군사 지역이다 보니 엄청나게 많은 규칙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해가 있는 낮에만 머물 수 있는 등 여러 가지 제약이 존재하는데 거기서 민간인 최초 문화 공간을 열어 남북 평화의 장을 직접 주도해 이끄시는 대표님이 대단해 보였다. 일반 사업을 하는 것도 힘들 텐데 민간인 통제 구역에서 사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정신적으로 강해야지만 추진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강한 사람이란, 울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면서도 묵묵히 원하는 바를 향해서 가는 것, 그것이 강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점점 세계 여행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난 13년 간의 여행 이야기를 풀며 사람들과 질문을 주고받았다.
이후 참석자 한분 한분과 기념사진도 찍었다.
임미려 대표님과도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13년의 세계 여행이 마무리되었다. 어떻게 보면 ’13년의 세계 여행이 여기서 이렇게 중단되었다’라는 표현이 맞을 거 같다. 내가 태어난 한반도의 반을 못 갔기에 내 자전거 세계 여행은 DMZ에서 이렇게 멈춰버린 것이다. 내 세계 여행은 이렇게 평생 DMZ에서 중단된 체 끝이 나는 것일지, 혹은 언젠가는 이 세계 여행의 진정한 끝을 이루게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절대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다.
DMZ에서 중단된 자전거 세계 여행의 끝을 직접 실현할 날이 오거나 혹은 누군가가 내 꿈을 대신 이뤄준다면 비로소 이 세계 여행은 마무리될 것이다. 그날이 꼭 오기를 바라본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2011년 9월 1일에 시작된 여행은 2024년 9월 1일에 마침내 끝났다. 인생 제1막이 마무리된 것이다. 이제는 인생 제2막을 향해 가야 한다.
무엇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울고 좌절하면서도 묵묵히 가려 애쓸 것이다.
지난 13년의 세계 여행을 함께 하며 도움을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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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밀린 블로그 글들을 끝까지 다 올릴 수 있을지 정말 의심스러웠습니다. 13년간 여행하면서 두 가지 언어로 글을 쓰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고, 유튜브에 더 집중하게 된 이후로는 블로그 업데이트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 글까지 올릴 수 있었다는 사실이 정말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 이 블로그를 완성한 기쁨은 세계 일주를 마쳤을 때 느꼈던 감동과 다를 바 없습니다.
저의 긴 여정을 끝까지 함께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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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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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평화 자전거 세계 여행 브이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