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지바르에서 일과는 길 잃어버리기다. 좁은 골목길을 돌다 보면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미로 속에서 헤어나오기 힘든 곳. 그곳에서 반가운 인연을 만나니 잔지바르에서의 하루하루가 더욱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2013년 7월 26일
잔지바르 섬에 오후 4시 정도에 도착하니 삐끼들이 달라붙는다. 인터넷에서 미리 알아본 숙소를 찾으려는데 그것조차 쉽지 않다. 아프리카에서 언제나 그렇듯 길거리 남자들은 날 귀찮게 굴고, 심지어 어떤 남자는 내 등을 찰싹 때리기까지 했다. 지 딴엔 반가워서 그랬는지 몰라도 내 딴엔 엄청 열 받아서 따지려고 했는데, 뒤에 수많은 차들이 내 자전거를 향해 경적을 울려 뒤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참 정신없는 곳이다.
막상 골목길에 들어서니 어디가 어디인지도 모르겠다. 결국은 어쩔 수 없이 삐끼 도움을 받아 숙소를 잡았다.
난 내가 길치에서 벗어난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잔지바르 도착하는 순간부터 끊임없이 길 잃고 잃고 잃고 또 잃고 그냥 길 잃는 게 내 일과인 거 같다. 짐풀고 정리하다 보니 벌써 밤이다.

잔지바르에서 가장 큰 도시는 스톤타운(Stone town)이다. 스톤타운 공원에는 야시장이 매일밤 열린다. 미로 같은 골목길을 헤매며 사람들에게 겨우 물어 물어 야시장을 찾았다.

들어서자마자 삐기들이 막 뭐라뭐라한다. 내가 요즘 배운 단어가 하나 있다. ‘하쿠나마타타’. 의미상으로 해석하자면 ‘문제 없어! (No problem)’이지만 실질적으로 따져 보자면 TIA (This Is Afirca)의 동의어 혹은 하위어라 보면 된다. 나에게 접근하는 삐끼들에게 하쿠나마타타 하면 자기네들도 나 따라 외치더니 다른 곳으로 간다.
잔지바르는 혼자 조용히 있을 수 있는 섬이 아니다. 끊임없이 현지인들이 말을 걸어 온다.
그런 복잡한 속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밤의 불빛을 즐겨 본다.

잔지바르에는 참 고양이가 많다. 예전엔 개들이 좋았는데, 요즘엔 개들보다 고양이가 더 좋다. 왠지 나를 닮은 거 같아서??

야시장 먹거리들. 그동안 탄자니아에서 먹었던 길거리 음식에 비해 가격이 좀 비싼 거 같다. 물론 한국식으로 따지자면 비싼 가격은 아니다.

야시장엔 잔지바르 피자가 유명하다. 물론 내 생각엔 이 피자는 관광객을 위한 것 같다. 현지인이 현지인을 상대로 파는 이런 피자를 본 적이 없다. 밀가루 반죽에 고기와 야채를 속에 넣고 바싹 하게 튀긴다. 가격은 2,000 Tsh (1.3$)
인터넷에서 정보 찾아보다가 이 것에 대한 설명을 봤었는데, 맛이 별로라고 했었다. 그래서 기대 없이 먹었는데, 내 입맛엔 너무 맛있다!!

여러 과일들도 파는데, 관광객들을 상대로 해서 그런지 내가 평소에 길거리에서 먹던 것에 비해 가격이 두 배이다.



아까 밤의 불빛을 구경했던 장소에서 요란스러운 소리가 들려 가보니 다이빙 대회를 자기네들끼리 하고 있다. 누가 더 멋진 포즈로 다이빙 하나 경기를 하는 거 같다. 아무튼 아프리카 사람들은 참 유쾌하게들 잘들 노는 거 같다.
Zanzibar


포즈들이 너무나도 멋진데, 저러다가 잘 못 떨어져 배나 등이라도 다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된다. 배로 떨어져도 안 아픈 건가? 아니면 물에 닿는 0.1초 순간 포즈를 바꾸는 건가?

한참 지역주민의 다이빙 경기를 구경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인사를 걸어 온다. 누구지.. 누구더라.. 상대방은 내 이름까지 안다. 이 커플 누구더라…
아 맞다! 마르코와 클라우디아! 미쿠미 사파리 통과하기 전 하룻밤 머물맀던 이탈리안 여의사 집에서 만난 여의사의 사촌 이탈리안 연인이다!
처음엔 조금 서먹서먹. 근데 얘기하다 보니 어느새 밤 11시가 넘었다. 다음날 뭐 할지 서로가 일정을 정하지 못해서 다음날 밤에 야시장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밤 11시에 숙소로 돌아가다니? 아프리카에서? 근데 깜짝 놀란 게 골목에 현지 사람들이 넘쳐 났다.

2013년 7월 27일
잔지바르는 역사가 복잡한 곳이다. 잔지바르는 16세기에서 17세기까지 포르투칼 제국에게 점령당했다. 이후 18세기에는 오만에게 점령당했다. 이 때부터 아랍 문화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라의 왕을 술탄이었다. 포루투칼 제국 시절부터 노예거래가 시작되었으며, 오만 제국 시절 당시 노예 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1856년 오만이 사망하면서 영국에게 점령당했다. 이후, 1873년 영국에 의해 노예 무역이 폐지되었다. 1963년 영국에게 독립을 인정받았고 탄자니아 내륙과 잔지바르를 하나로 합쳐 탄자니아 공화국이 탄생 되었다.
잔지바르는 노예무역의 슬픈 역사를 안고 있다. 그래서 직접 노예 무역이 일어났던 곳을 가려고 하는데, 도대체 어디있는걸까? 아침부터 또 길을 잃기 시작

한 번도 아랍문화권에 가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아랍 영향을 많이 받은 잔지바르의 건축양식이 너무 신기하다.

인도에 가본적은 없지만 잔지바르는 인도랑 담지 않았을까 한다. 골목길을 헤매고 다니다 보니 묘한 매력들이 느껴지면서, 왜 사람들이 인도를 좋아하는 지 알 거 같다. 어제 저녁에 만났던 클라우디아는 인도에 가본적이 있다기에 인도와 잔지바르는 닮았냐고 물어 보니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든다.

우선 잔지바르 골목길은 너무 깨끗하고, 잔지바르 골목에는 동물들이 없고, 잔지바르는 인도에 비해 사람들이 덜 몰려 든다는 것이다.

잔지바르는 95%이상이 무슬림이다. 그리고 현재 라마단 기간이다. 라마단이란 아침 6시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음식은커녕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는 것이다. 매년 라마단 기간은 다르다고 한다. 2013년은 7월 8일에 시작해서 8월 7일에 끝난다. 아이들, 임산부, 여행 중은 예외라고 한다. 여자는 10살이 되면 라마단을 시작하고, 남자는 15살이 되면 시작한다고 한다. 여자는 일찍 성숙해져서 남자보다 훨씬 먼저 시작하는 거라 한다.

공공장소에서 물 마시는 것 조차 금지(제한? 자제 부탁?)하고 있다. 어제 숙소에 짐풀고 옆에서 물을 사는데, 주인이 길거리에서 (공공장소에서) 물 마시면 날 혼내겠다며 농담식 하지만 진담으로 경고한다.
이렇게 안내문을 붙여 놓은 식당도 있다. 라마단 기간이라 밤 6시 30분에서 밤 10시까지만 열겠다고 한다. 좀 좋은 관광객들을 겨냥한 식당들은 낮에 열지만, 나 같은 가난한 여행자에게는 너무나도 부담스럽다. 물이나 빵 같은 걸 사서 숙소에 들어가서 먹어야 되는데 왠지 그게 쉽지 않다.

오후 2시 정도가 되면 길거리에서 서서히 사람들이 뭔가를 팔기 시작한다. 하지만 라마다 기간인지라 그들을 배려해서 음식을 들고 쾌쾌한 곰팡이 냄새 나는 숙소에서 먹어야 한다. 물론 그들 또한 라마단 시간에는 음식을 바로 주지 않고 종이로 둘둘 말아서 ‘포장해서’ 준다.

노릇노릇 익은 짜파티를 들고 숙소로 돌아갔다. 아침 11시쯤에 노예시장 박물관을 향했으나 2시간을 길을 헤맸다.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근데 어머나 세상에!!! 알고 보니 숙소 바로 앞에 아까 내가 차 사진을 찍던 곳이 박물관이었다고 한다!!!!!!!!!!!!!
이놈의 길치!!!!! 매일 고속도로 일직선으로만 달리다 보니 나는 내가 길치에서 벗어났다고 착각을 했다!!

숙소에서 물과 길에서 산 음식을 먹고 난 후 다시 박물관으로 향한다. 16세기 포르투갈에게 지배 당했을 때 노예제도가 시작되고, 오만 제국 시절 노예시장이 활발했다고 한다. 이 좁은 곳에 70명의 사람을 가둬 놓았다고 한다. 이전에는 여러 섬으로 나눠 져 있었기에 밑에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이들은 쇠사슬로 묶여 있었고, 볼일을 바닷물이 흘러 가는 밑에서 봐야 했다고 한다.

이곳은 남자들이 갇혀있었던 곳이라 조금 크다. 이렇게 지하 수용소에 가둬 놓고 빛도 들어오지 않게 하며 며칠간 음식을 제공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곳에서 살아남는 자만이 노예로 팔려 나갔다고 한다. 노예무역을 주도하던 사람들은 이들이 죽건 말건 상관도 않고 동물처럼 대했다. 한 푼이라도 더 노예값을 받기 위해 이렇게 잔인하게 그들을 실험했고, 돈이 되지 않을 거 같은 사람은 그냥 죽게 내버려 뒀다. 사람을 거래로 돈을 더 받고 싶어서, 이들에게 극한 환경 넣고서는 강인함을 실험한 잔인한 곳이다.
같은 종족끼리 어떻게 이리 잔인할 수 있단 말인가?

당시 노예로 팔려 나갔던 그들의 모습을 본떠 만든 모습. 일부러 서로 다른 종족을 하나로 엮었다고 한다. 혹시라도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으면 서로 탈출을 도모할까 봐 말 통하지 않게 다른 종족들을 섞어 무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잔인하게 인간의 인권을 유린하던 노예무역이 1873년 영국에 의해 금지되었다고 한다.
솔직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어서 가이드에게 물어봤다.
“영국이 노예 거래를 금지했다고요? 왜요? 영국이야말로 아프리카를 가장 잔인하게 이용한 나라잖아요?”
“영국은 한참 그때 당시 산업혁명이 일어나던 시기였기에 더 이상 노예가 절실히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 이것이 바로.. 사다리 걷어차기군. 자기네들은 사라리를 이용해서 높은 곳에 올라가 놓고서는, 다른 사람들이 같은 곳에 올라올 까봐 사다리를 걷어 차버리는 것.
아쉽게도 노예무역 박물관에는 노예 지하 수용소, 그리고 노예상, 이 두 개 말고는 볼 게 없었다. 4$라는 입장료 너무 비싸게 받는 거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

잔지바르에 있는 몇 개 안 되는 성당 중 하나가 박물관에 속해 있다. 당시 노예제대를 금지 하던 영국인의 의해 세워진 성당. 혹시 이 사진이 우리가 일반 보던 것과 다르다는 걸 느끼는 사람이 있을까? 일반 살색이 아닌 검정색으로 상이 만들어 졌다.
갑자기 또 뭔가가 궁금해져서 관광 지역 안내원에게 물었다.
“왜 잔지바르 인구 대부분은 무슬림인가요? 제가 라틴아메키라를 여행다니면서 보니까 그곳은 대부분 카톨릭이던데. 원주민에게 선교활동을 활발히 하면은 종교를 주입시키기 쉽지 않나요? 그렇게 되면 그 대륙은 지배 당하던 나라의 종교로 바뀌게 되잖아요.”
“술탄이 지배하던 시절에 대부분 무슬림으로 바뀌었습니다. 또한 노예무역이 활발하던 시기가 아랍문화권 영역이었기에, 자신의 인생을 결정지을 권리가 없던 원주민에게는 이미 이슬람 종교가 강하게 입힌 것입니다. 이후 영국이 선교활동을 시작하기에는 이미 늦었던 거죠.”
여행다니면서 느낀 건데, 태양, 별, 달과 같은 자연을 믿는 원주민의 상태를 비유하자면 백지와 마찬가지인 거 같다. 이 백지에는 어떤 종교든 심어 넣을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에는 카톨릭이라는 색이 칠해졌고, 잔지바르에는 이슬람의 색이 칠해진 것이다. 세대에 세대로 이어져 나가면 결국 그 색은 자연스럽게 그 지역전체에 스며들게 된다.


박물관에 있던 성당.

당시 아프리칸 사람들을 노예로 잡아서 사슬로 하나로 엮었다고 한다. 육체적으로 힘이 더 쎈 탈출가능성이 높은 남자들은 더욱 잔인한 방법으로 묶었다고 한다.

좁은 배에 최대한 많은 노예를 실어 넣은 모습이다. 움직일 공간도 없을 거 같은 모습. 비위생적인 상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배에서 죽었다고 한다. 또한 비위생적인 환경에 노예들을 실어 날랐기에, 8km 떨어진 곳에서 조차도 노예들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박물관을 나와 또 다시 골목길로 들어선다.

숙소 바로 앞에 있던 길거리 꼬치 장사. 꼬치 한 개에 500 실링 (30cents) 밖에 안 한다. 오후 5시 정도 되니 서서히 길거리 장사가 시작된다. 물론 길거리에서 못 먹게 포장해서 준다. 꼬치 몇 개 들고 와서 숙소에서 먹었다.
이후 저녁에 야시장에 가서 이탈리안 커플을 만났다. 8시 정도에 만났는데, 수다 떨다 보니 금세 밤 12시가 되었다. 밤 12시가 넘었지만 여전히 공원엔 사람이 제법 있었다. 다음날 같이 원주민이 타는 달라달라 버스를 타고 해안가로 가기로 하고 헤어졌다.
허걱 밤 12시에 아프리카 골목길을 걷다니 내가 미친 것인가라는 생각도 잠시, 골목길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가득하다.
라마단 기간이라 낮동안 참았던 음식도 밤에 먹고 신에게 늦게 기도를 올리고 자느냐고 밤 12시가 넘었는데도 길에 사람이 가득한 거 같다.

2013년 7월 28일
아침 10시에 광장에서 이탈리안 커플을 만나 달라달라 버스를 타러 갔다. 원래는 동쪽 해안 중심에 있는 Jambiani를 먼저 가려고 했는데 버스를 고르다 보니 계획이 바뀌어서, Michamvi 라는 동쪽 해안 가장 위에 있는 곳에 갔다.

Michamvi 해변에는 의외로 관광객이 한 명도 안 보였다. 현지인도 별로 없었고, 정말 조용한 곳이었다.

해안가를 계속 걷다 보니 비싼 리조트들이 나온다. 현지인 한 명이 나에게 와서 말을 걸어 온다. 아프리카에서는 현지인이 말을 걸어오면 무섭다. 나를 해칠까 봐 무서운 게 아니라, 나에게 돈을 달라고 혹은 구걸을 하려고 오는 경우가 너무 많은지라 조금 꺼려진다.
그런데 사진 속 여인은 나에게 뭔가를 요구하거나 뭘 파려고 온 게 아니라 그냥 나랑 말을 하고 싶어 온 거 같다. 해변가에서 그녀와 얘기하다 보니 다음 해변으로 떠날 시간이 왔다.

이후 30분 정도 버스를 탄 후 Jambiani 해변으로 갔다.

3일 내내 잔지바르 섬에서 계속 봐온 이탈리안 커플. 이들과 함께 다니니까 너무 즐겁고 여러모로 편하다.
특히나 나 혼자 있으면 현지 사람들이 치나(China) 혹은 니하오 막 소리치면서 기분을 상하게 하는데, 이들과 있으까 나에게 치나라고 소리치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하루에 백 번도 넘게 치나 혹은 니하오 소리 들을 걸, 오늘은 서너 번도 듣지 않은 거 같다.

해변가에서도 머리에 뭔가를 이고 다니는 여인들이 보인다.

남아공에 처음 도착했을 때 바다를 보고는 8개월 동안 내륙에서만 자전거를 타서 바다를 못 봤었다. 오랜만에 본 바다, 너무 좋다. 무엇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누구랑 함께 하느냐도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탈리안 커플들과 함께 한 덕분에 바다가 더욱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스톤타운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중간에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데, 혹시 몰라 손을 흔들어 보니 차 한 대가 선다. 얼마 줘야 되냐고 물어 보니, 그냥 공짜로 태워주겠다고 한다. 허걱. 아프리카에서 공짜라니? 아프리카에서는 길을 알려 주고도 돈을 달라는 사람이 종종 있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에게 친절히 대하면 나에게 돈을 요구하려고 저러나 경계 하게 되는데, 이렇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도움을 주니 살짝 놀랍다.
트럭에는 큰 생선이 있었다. 구석에 한 명씩 자리 잡아 15분 정도 생선과 함께 갔다. 이후 버스를 타고 오후 늦게 스톤타운으로 돌아 왔다.

어제 종일 바로 코앞에 있는 박물관 찾지 못해 길을 헤매느냐고 시간을 다 보냈다. 마르코와 클라우디아는 이미 현지 시장을 방문했었는데, 내가 방문하지 못했다고 하자 같이 둘러 보자고 한다.

건물 안에 들어가니 한쪽에선 이렇게 생선을 판다.

바로 반대편에서는 이렇게 고기를 판다.

건물에서 나와서 아래로 내려오니 온갖 향신료를 판다. 직원이 마르코에게 냄새를 맡아 보라며 향신료의 봉투를 열어 가까이 한다.
아프리카에 온지 8개월이 다 되가는데 여태까지 단 한 번도 편지를 주변에 보낸 적이 없다. 아메리카 대륙에 있을 때는 가끔 편지를 보냈었는데, 아프리카에서는 아무래도 정신적으로 사람들에게 시달려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시내로 나가는 게 꺼려져서 편지를 못 보낸 거 같다.
이번 기회에 나도 향신료 몇 개를 사서 편지봉투에 넣어 함께 보내려고 하는데, 보내는 과정에서 압수당하는 거 아닌가 내심 걱정이 된다. 어쨌든 선물용으로 나도 몇 개 샀다.

바나나가 엄청 크다. 맛은 있긴 있는 걸까?

라마다 기간이라 현지인을 배려하다 보니 종일 먹은 게 없다. 샤워 후에 다시 만나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무슬림 지역이라 술을 슈퍼에서 안 파는데, 과연 이 맥주의 정체는???
고급 에티오피아 식당을 갔는데, 맥주를 판다. 셋 다 목말랐던 지라 바로 맥주부터 시키고 본다.

에티오피아 음식이라고 한다. 원래는 그릇에 갖고 왔는데 갑자기 쟁반에 음식을 쏟는다. 으악. 종업원님아 왜 음식을 다 엎어버리고 그러세요!!! 알고 보니 쟁반에 깔려 있는 건 얇게 저민 부침개 같은 것인데, 그것에 싸서 먹는 거라 한다. 물론 손으로 ㅋ

후식으론 에티오피아 커피를. 옆에 숯이 있기에 장난치다가 손가락을 데어 버렸다. 이래 봬도 아프리카 시골마을에서 숯으로 매일 같이 장난 친, 불장난 전문가인데!! 숯에다가 설탕을 장난으로 막 뿌렸었는데, 그것 때문에 온도가 올라서 손을 데인 게 아닌가 싶다. 마르코가 숙소에 연고가 있다면서 가져다 줘서 응급처치를 할 수 있었다.

에티오피아 식사를 마르코와 클라우디아가 사겠다고 한다. 마르코가 야시장에 물담배 (shisha) 파는 곳을 봤다고 하기에, 내가 그럼 물담배를 사겠다고 카페에 가자고 했다. 한 개에 5,000 실링 (3$)도 안 한다. 이들이랑 놀다 보니 오늘도 또 밤 12시가 넘어 숙소에 돌아간다. 여전히 골목길엔 사람이 가득하다.

2013년 7월 29일
이탈리안 커플을 아침 10시 정도에 만나 버스를 타고 북쪽에 있는 능귀(Nungwi) 해변가로 갔다. 현지인들이 함께 그물로 물고기를 잡고 있는 거 같다.

사실 이탈리안 커플들은 무거운 짐은 숙소에 맡겨두고, 가벼운 배낭을 들고 능귀 해변으로 왔다. 능귀에서 이틀 정도 머문다고 한다. 나는 스톤타운이 좋아서 스톤타운에서 하루나 이틀 더 머물기로 했다.

혹시 주변에 싼 숙소가 없나 살펴 보려 하는데, 허걱 비싼 리조트밖에 안 보인다. 이탈리안 친구들은 하루에 30$하는 방에 묵기로 했다. 이제는 헤어질 시간. 이탈리안 친구들은 3주 짧게 아프리카에 휴가 왔다고 한다. 어쩌면 밀라노에 가면 이들을 다시 볼 수 있을지도?
고작 삼 사일 밖에 함께 하지 못했는데, 헤어지려니 섭섭하고 아쉽다. 그동안 혼자 다니느냐고 온갖 날파리들이 꼬여 고생했었는데, 이들과 함께하니 주변에서 귀찮게 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너무나도 좋았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함께 해줘서 너무 고마웠고, 덕분에 편하게 여행 했고, 혼자 다니다가 이렇게 함께 있으니 너무나도 든든했다며 이별인사를 전하려는데, 목이 메여서 고맙다는 말 이후에는 아무 말도 건네지 못했다.
다시 혼자가 되어 길을 나선다.

능귀 해변에서 한 시간 떨어진 선착장에서 육지로 가는 배가 있다고 해서 출발요일과 시간대를 확인하고 스톤타운으로 돌아오니 벌써 어두워졌다. 오늘도 종일 먹은 게 없다. 라마단 때문에 현지 식당은 다 문 닫았고, 관광객들이 가는 식당은 부담스러워서 못 가겠고, 결국 쫄쫄 굶었다.
스톤타운에 도착하자마자 현지 시장에서 이것저것 막 사 먹었다. 가격도 관광객이 가는 야시장에 비해 훨씬 싸다.

숙소에서 휴식 좀 취하다가 밤 11시가 넘어 밖에 나와 골목길을 서성댄다. 잔지바르는 안전한 편에 속하고, 더군다나 현재 라마단 기간이라 밤늦은 시간까지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다.
현지인들이 하는 게임인데, 왼쪽에 있는 분이 어떻게 하는지 설명해 줬는데, 직접 게임을 하지를 않아서 이해가 되지 않았ㄷ.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왼쪽에 있는 분의 형제라고 하는데 다음 달에 한국엘 간다고 한다. 한국에 가서 페리 한 대를 사서 직접 그 페리를 타고 잔지바르로 온다고 한다. 내년에는 한국 페리가 잔지바르 섬에서 운행한다고 한다!

밤 12시가 넘었는데, 숙소 앞 꼬치 장수는 계속 꼬치를 굽고 있다. 라마단 기간이다 보니 다들 밤을 잊은 거 같다.
나 또한 밤을 잊고 늦은 시간에 골목길을 서성서성. 히잡을 두른 젊은 소녀와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그 소녀가 자기네 집을 보여주겠다며 올라 오라고 한다.
그녀의 집에서 바라본 잔지바르 골목. 골목길에서 본 건물들은 낡아 보였는데, 막상 들어 가보니 제법 집이 좋다. 그녀가 너무 영어를 잘하기에, 어디서 영어를 배웠냐고 물어보니 사립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국립학교는 너무 수준이 떨어져서, 사립학교에서 배워서 이렇게 영어를 하는 거라 한다.
그녀는 새벽 2시에 기도를 하고 잔다고 한다. 나는 새벽 1시 30분 정도에 졸음을 참지 못하고 먼저 인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서 1분도 안 되는 바로 옆 골목길이었고, 새벽 1시 30분이 넘었는데도 골목길엔 여전히 사람들이 있어서 돌아오는 길이 위험하다고 느끼진 못했다.
며칠간 이탈리안 친구들과 함께 다니다 보니 잔지바르 여행이 더욱더 즐거웠던 거 같다. 그러고 보니 너무 혼자서 오랫동안 여행한 거 같다. 기회가 된다면 나도 다른 여행자들과 장기간 함께 여행하고 싶다.


우와 잔지바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시장들도 그렇고 건축양식도 그렇고 해변도 그렇고요~ 그리고 해변가 사진들을 봤더니.. 헉~ 너무 가고싶어!라는 느낌이 드네요.
아무튼 이탈리아에서 오는 그렇게 좋은 분들이랑 몇일동안 여행을 다니실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그 짜증남 쪽쪽 소리를 더 이상 안 들리길… 화이팅!
넵, 이탈리아 친구들과 함께 다녀서 너무너무 너무너무 너무너무 좋았어요.ㅎ
이탈리아 친구 말에 의하면 잔지바르는 아프리카라는 느낌 보다는 다른 대륙의 느낌이 난다고 하더군요…^^
중동+아프리카=잔지바르?^^
LIDL이 저기까지있네 어허허허헣허헣
LIDL이 뭔지 몰라 검색했넹.. 슈퍼마켓? 써 본적이 없엉… 대도시가 별로 없어서 맨날 구멍가게 이용..ㅋㅋ아ㅏㅏ 혹시 해변가에서 여성이 이고 가는 포대자루 보고 하는 말?????
아프리카는 전세계적으로 물건을 지원 받다 보니 별의별 브랜드가 다 있어.
한 번은 한국의 뭐대학교 티셔츠를 입은 사람도 받고, 한국 학원 가방도 많이 보이고..
잔지바르는 밤의 도시네요- 야시장이 저렇게 발전한걸보니 신기하기도 하고요.
효진님 여행기에서는 보기 힘든 야경사진도 볼수 있어 신선하하네요 ㅎㅎ
말씀대로 오랜만에 푸른 바다도 보시고 그동안 아프리카에서 받으신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리셨을꺼 같네요.
낮에는 불편하셨겠지만 밤마다 맛있는거 실컷드시고 ㅎㅎㅎ
기회가 된다면 누군가와 여행하시고 싶으신 계획이 꼭- 이루어지셨으면 좋겠네요 ^^
생각해보니 야시장 사진은 첨이던가요?ㅎㅎ
꿈은 이뤄진다! 아자! 화이팅 🙂
너무 아름답네요
꼭 가보세요.ㅋ 좋음.
아프리카의 노예무역을 보고있다보면, 유럽인 역사의 추악한 이면을 들여다 보게 되어서
유럽의 중세 근대 문화재를 보면 항상 노예의 희생과 착취라는 점이 항상 생각납니다.
결국 18-19세기 유럽의 부흥은 식민지에 대한 착취 덕분이라는 거죠.
그당시엔 노예를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고 아프리카의 유인원, 원숭이 = 결국 상품 이라는 생각을 갖었다는 것에 놀랍기도 하고요.
조금만 들여보면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는 똑같은 사람이라는걸 알았을텐데 말이죠.